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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꽃게만을 건지랴… 아버지, 바다에서 ‘희망’을 낚다
어찌 꽃게만을 건지랴…
아버지, 바다에서 ‘희망’을 낚다
이른 새벽, 배를 탄다. 서쪽 바다 깊숙이 숨은 꽃게를 찾아.
아버지는 파도가 파랗게 달려드는 바다 한가운데 버티고 섰다.
펄럭이는 깃대에 만선을 꿈꾸며 꽃게를 잡아 올린다. 건지는 것이 어찌 꽃게뿐이랴.
거칠고 투박한 손으로 억척스럽게 그물을 올리며, 뭍에 있는 아내와 자식을 떠올린다.
그가 낚아 올리는 건 삶의 ‘희망’이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 사진 류창현 포토디렉터
새벽 세 시, 비 내리는 포구
사월의 새벽 밤바다는 매섭다. 육지엔 벌써 봄이 무르익었건만, 바닷가엔 비릿한 해기를 품은 바람이 사정없이 들이 분다. 비까지 부슬부슬 내린다. 대자연은 고된 항해를 앞둔 사람이라고 해서 특별히 봐주는 법이 없다.
새벽 세 시, 소래포구에 도착했다. 모두 잠든 새벽길을 지나 다다른 육지의 끝. 출항을 기다리는 크고 작은 배들 사이에 분주함이 새어 나온다. 징검다리를 건너듯 정박해 있는 배들을 건너고 건너 ‘삼영호’에 오른다. 바닥엔 아직 갯벌이 훤히 드러나 있다. ‘언제쯤 출항할 수 있을까.’ 생각하기 무섭게, 물이 차오른다. 뭍사람의 괜한 염려였다. 컴컴한 하늘 아래 어느새 검은 물결이 출렁거린다.
“오늘 하루 종일 비가 온다는데 괜찮겠어요?” “비 오는 게 뭐 하루 이틀 일인가. 비 온다고 물고기가 젖나. 우리야 항상 물 맞으면서 하는 일이니 상관없어요.” 비를 맞나 파도에 맞나 물 젖기는 매한가지다. 비바람과 안개를 헤치고 필사적으로 고기를 잡아 온 세월이 아니던가.
이윽고 새벽 네 시, 꽃게잡이 배가 밤의 정적을 깨고 바다를 가로지른다. 근처에 있던 어선들도 하나둘 뱃고동을 울리며 불빛을 더한다. 여러 대가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니, 어둠 한가운데서도 외롭지 않다.
견디기 힘든 건, 비바람이 아니다
배는 포구를 빠져나가 파도를 넘으며 먼 바다로 나아간다. 하늘엔 별이 총총하다. 삼영호 사람들이 하나둘 배 아래로 내려가 잠을 청한다. 그 틈에 껴 엔진 소리 가득한 선내에 몸을 기댄다. 쉴 새 없이 그물을 내리고 올릴 바다 사내들이 한숨 돌리는 유일한 시간이다.
어느덧 수면 위로 새벽 여명이 스민다. 배 한편에서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주방을 맡은 선원이 밥과 찌개, 밑반찬을 갑판 위에 정갈하게 올려놓는다. 하나둘 둘러앉아 이른 식사를 한다. 어색한 기운이 감돈다. 뱃사람들과 그들이 뜻하지 않은 방문객들은 아직 서로가 낯설다. 배를 얻어 탄 데다 밥까지 얻어먹는 게 미안하여 묵묵히 젓가락질을 하다, 음식 맛이 좋다며 칭찬을 건넨다. 그가 환히 웃으며 답한다. “그럼 음식 맛 좋지. 반찬도 매일 달라. 먹은 건 또 안 먹거든. 우리 선원들 입맛이 굉장히 ‘하이클래스’야”
배는 열두 시간을 바다에 떠있는다고 했다. 파도가 요동치기라도 하면 인근 섬으로 들어가 며칠이고 더 머물 수도 있다고 지레 겁을 준 터였다. 밥알을 씹어 삼키며 생각에 사로잡힌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높다란 파도, 쏟아지는 비, 뱃멀미…. 하지만 이제서 어디로 물러설 것인가. 또 바다 위 ‘극한직업’이 이들에겐 일상이 아니던가. 갑자기 머릿속에 맴돌던 걱정이 하찮고 부끄러워진다.
배를 두둑이 채운 선원들이 제자리로 가 때를 기다린다. 굴업도 개머리 언덕에서 20분쯤 더 갔을까. 드디어 ‘때’가 왔다.
오전 여덟 시경 그들이 뿌려놓은, 첫 번째 그물을 끌어올 렸다. 아뿔싸. 건져낸 그물에서 쓰레기가 와르르 쏟아져 내린다. 기다렸던 꽃게는 고작 네 마리가 걸려들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당혹스럽다.
“한강에서 흘러들어온 쓰레기가 엄청나요. 바다가 깨끗하지 않으니 물건도 없고. 이럴 때마다 힘이 빠져요.” 17년째 뱃일을 한 베테랑 선원 최영철(57) 씨는 바다일이나 육지일이나 힘든 건 같지 않냐며, 몸 쓰는 건 아무렇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꽃게가 잡히지 않아 무작정 기다려야 할 때는 견디기 힘들다.
아버지, 다시 바다에 나가다
이후로도 삼영호 사람들은 쉬지 않고 그물을 걷어 올리고 내리고를 반복했다. 큰 시곗바늘이 네 바퀴 돌때까지 길고도 지루한 시간이 이어졌다. 작업은 철저하게 분업화돼 있다. 한 사람이 도르래를 돌려 그물을 올리면 누군가는 갑판 위로 쏟아내고 또 누군가는 꽃게들을 일일이 그물에서 떼어낸다. 정리한 그물은 바다로 내려 다시 고기 잡을 준비를 한다.
꽃게만 잡히는 게 아니다. 갯가재, 아귀, 농어 별게 다 걸려 올라온다. 갑판에 모여 앉아 온갖 바다 것들을 일일이 구분하는 작업이 이어진다. 그럴 때면 ‘뭐 건질 것이 없나’, 갈매기들이 귀신같이 몰려든다. 선원들이 바다로 던지는 잡어들을 낚아채기도 하는데, 새우과자 맛에 못 미치는지 그대로 뱉어 내기도 한다.
삼영호의 선장 이춘우(50) 씨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그물을 던지고 있다. 연안부두에서 큰 배를 몰던 아버지는 돈이 된다는 말에 온 가족을 데리고 포구로 흘러들어왔다. 숭의동에서 소래까지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를 달리며, 외할머니는 어부의 아내로 살아갈 딸 걱정에 눈물을 흘리셨다.
세상에 절실하지 않은 삶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거친 파도와 바람이 생명을 위협해도 기어코 배를 타야 하는 것이 바닷사람들의 운명이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배 한가득 싱싱한 꽃게가 차오르고 만선이 되어 집으로 돌아간다는 기대감, 자식 키우는 재미가 없었다면 버티기 힘들었으리라.
이제 귀항이다. 새벽 네 시에 닻을 올렸던 배는, 꼬박 열두 시간이 지나서야 다시 포구에 다다랐다. 태양은 야속하게도 뭍에 다 이르고 나서야, 배가 나아가는 길에 빛을 내어주기 시작한다. 아직 끝이 아니다. 새벽바람 맞아가며 먼 바다에서 건져온 꽃게를 배에서 내려 경매장으로 옮기는 작업이 이어진다. 뱃고동소리와 가격을 흥정하는 목소리에 포구가 활기를 띤다. ‘1킬로그램에 3만 5천 원’. 진달래가 만개하면 꽂게 철이
라고 했다. 아직 성수기가 아니라 어획량이 적지만 꽃게가 실해서 가격이 잘 나왔다.
햇살이 비추기 전부터 시작된 삼영호 사람들의 고된 하루에, 이제야 쉼표가 찍힌다.
어부의 검게 그을린 얼굴에 끈끈한 바닷바람이 스친다. 몇 시간 후면 아버지는 다시 바다에 나갈 채비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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