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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 계단만큼, 그 너머 세상이 보인다
오른 계단만큼, 그 너머 세상이 보인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7살 어린 나이에 어머니마저 잃었다. 원치 않던 기술자의 길로 들어섰지만, 이대로 포기할 순 없었다. 악착같이 자격증을 따고 남들보다 열심히 일했다. 자기개발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은 실력과 기술은 결국 ‘대한민국 명장’ 타이틀을 거머쥐게 했다.
2011년, 38살의 나이로 대한민국 최연소 명장이 된 원용기 명장은 “오르는 계단의 수만큼, 그 너머의 세상이 보이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
글 김윤경 본지 편집위원 사진 김성환 포토저널리스트
국내 뿌리산업의 핵심, ‘금형’을 이끌어 온 기술자
“우리 생활 속 모든 부분에 금형이 있습니다. 볼펜, 화장품 용기, 카메라 케이스, 휴대폰, 가전제품 등 핸드메이드 제품이 아닌 것은 모두 금형으로 제작했다고 봐야합니다. 금형 덕분에 생활이 풍족해지고 편리해졌죠.”
사출금형 분야 명장인 비즈엔몰드 원용기 대표(44)는 단순한 엔지니어가 아니다. ‘사출금형은 이 세상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한다’는 철학과 사명감으로 하루하루 매진하고 있다. 사출금형이 제품의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하고, 그 덕에 많은 사람들이 차별 없이 똑같은 상품을 구입해 이용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금속을 깎아 부품의 틀을 만드는 금형 작업은 ‘제조업의 승부처’라 불릴 만큼 중요한 기간산업이다. 그만큼 고도의 정밀성과 숙련성이 뒤따른다. 원용기 명장은 세계 최고의 금형 강국을 꿈꾸는 우리나라 금형산업 성장이 기술자들의 끊임없는 노력 덕에 이뤄진 것이라고 강조한다. “대한민국을 발전시킨 원동력은 바로 사람의 기술입니다. 기름 때 묻은 손이 자랑스러울 수 있도록, 기술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처우가 달라졌으면 합니다.”
생계를 위한 선택이 인생을 바꾸다
원용기 명장은 지독한 가난이 준 상처를 끊임없는 노력으로 떨쳐낸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다. 원 명장은 부친의 잇따른 사업 실패로 어려운 환경에서 지내다, 7살 때 어머니마저 여의면서 극도로 힘든 유년 시절을 보내야 했다. 3형제 중 막내인 그는 중·고교 진학이 어려울 정도로 가난한 형편이었지만, 형들의 양보로 유일하게 고교까지 진학할 수 있었다. 그는 고교 진학을 앞두고 학비 걱정 없는 공군기술고등학교나 구미전자공업고등학교 같은 국립고등학교를 희망했지만, 초등학교 4학년 때 감전 사고로 왼쪽 검지 일부가 절단되고 휘어지는 바람에 번번이 신체검사에서 떨어졌다. 결국, 그는 돈을 빨리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탓에 특별한 꿈을 꿀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설상가상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마저 돌아가시자 돈을 벌겠다는 삶의 목표마저 잃고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담임선생님이 붙잡았다. “너는 머리가 좋으니 기술을 한번 배워보라.”는 선생님의 권유로 1992년 2년제인 인천기능대(현 한국폴리텍대학교) CAD&CAM과에 입학했다. 이후, 군 입대를 앞두고 병역특례로 서구의 한 금형공장에 취직했고, 이 회사에서 17년 6개월을 근무하며 현장 엔지니어에서 관리자로 성장했다.
38세, 대한민국 최연소 명장이 되다
“지난 20년 동안 쉬어본 적이 거의 없을 만큼 자기개발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그는 바쁜 업무 중에도 2000년에는 기계가공 기능장을 취득해 현장에서 최고의 기술력을 인정받았고, 2003년엔 기술지도사 자격을 취득했다. 그 외에도 ISO(국제표준화기구) 국제심사원, 창업지도사, 기술거래사 등 수많은 자격증을 따냈다. 이를 활용해 2004년엔 ‘학점은행제’로 기계공학 학사학위를 받았고, 창업대학원을 졸업한 2007년부터는 주말에 컨설팅 일을 병행했다. 2007년에는 금형기술을 인정받아 국가기술표준 개발과정에 참여했으며, 같은 해 우수기능인으로 이듬해에는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이 수여하는 ‘이달의 엔지니어상’에 선정됐다. 이후 그가 실무와 이론에 모두 능통하다는 것이 업계에 알려지면서, 국가직무능력표준(NCS) 작성 작업에 선발됐고, 백서를 만들던 과정의 세부 지식들을 모아 ‘사출성형해석’이란 책을 펴냈다. 현재 이 책은 금형 분야 최고의 교과서로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탄탄한 실력을 바탕으로 2009년 관련 분야 업체를 설립해 중소기업 CEO가 된 원 명장은 마침내 2011년 당시 38세라 는 최연소 나이로 사출금형 분야 대한민국 명장에 올랐다.
40년 재능기부 약속으로 인재양성에 힘쓰다
다른 사람들보다 20년 앞서 대한민국 명장에 선정된 그의 목표는 ‘40년 재능기부’다. “명장이 되면 다른 분들보다 두 배 더 활동하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했습니다. 저 같은 기술자들이 학
업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도록 먼저 그 길을 걸어간 사람으로서 도움을 줄 수 있어야죠.” 배움에 목말랐던 그는 청년들이 일과 학업을 포기하지 않도록 사내 일·학습병행제를 실시하고 있다. 또 미래를 고민하는 학생들을 위한 진로특강도 꾸준히 참여하는 등 기술인재 양성에도 열심이다.
“수학영재 소리를 들었던 아들이 저의 뒤를 잇겠다고 인천기계공고에 진학했습니다. 기능올림픽이 목표라고 하는 아들이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내가 이 길을 더 잘 걸어가야겠
구나’라는 막중한 책임감도 느낍니다.”원용기 명장은 그동안 기술자가 적어 산업현장에서 기술단절 현상 우려가 컸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기술을 배우겠다는 청년들이 늘어나 그나마 희망을 품어본다고 말한다. “기술만큼 투명하고 정직한 것은 없습니다. 땀 흘리고 노력한 만큼 쌓입니다. 그 산증인이 바로 접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기술을 연마한다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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