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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과 보존 의미
기록과 보존 의미
글 박현주
(화도진도서관 독서문화과장)
화도진도서관이 인천의 근대 개항기 자료를 비롯한 향토 자료를 수집해 온 지도 벌써 17년이 흘렀다. 물론 개관 당시에도 향토 자료를 수집했지만, 그 본격적인 시작은 2000년 문화체육관광부의 특화 도서관으로 지정되어 1억 원의 자료 구입비를 지원 받은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1988년 개관한 화도진도서관과 인천일보의 창간이 비슷한 시기였으니, 내년이면 벌써 30년이 된다. 화도진도서관에는 인천일보 창간호부터 현재까지 제본된 신문을 소장하고 있다. 인천일보뿐만 아니라, 기호일보와 경인일보, 폐간된 인천신문까지 모두 소장하고 있음을 아는 이들이 많지 않다. 디지털 시대의 도래를 예고하며 종이 책이나 종이 신문이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무용론을 이야기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만약 종이 자료를 소홀히 여겨 보존 공간의 부족을 이유로 폐기했더라면, 현재 종이 신문을 보존하지 못했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내게 신문에 대한 기록 보존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 것은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발행됐던 ‘조선신보’와 ‘조선신문’이었다. 발행 기록만 있을 뿐 신문의 실체를 만나기 어려웠던 어느 날, 우리나라 최초의 도선사 유항렬 선생 댁을 보수 공사 중에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일본식 미닫이문 안쪽에 두텁게 배지로 쓰인 조선신보 원본들을 발견하고 그 궁금증과 호기심이 더 커졌다, 수소문 끝에 ‘조선신보’와 ‘조선신문’을 소장한 일본국립국회도서관에 문의해 화도진도서관에서 마이크로 필름을 구입했고, 디지털화를 거쳐 영인본을 발간하기도 했다. 이후 신문의 가치를 알아 본 연구자와 연구 단체에 디지털화된 신문을 제공했고, 현재도 근대 역사 연구의 기초 자료로 잘 활용되고 있다. 지역 신문은 그 지역의 일일 기록지다. 우리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왜곡되기도 하고 소멸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록지로서 신문의 역할은 중요하다.
화도진도서관에는 신문 외에도 많은 종류의 도서와 비도서 향토 자료들이 수집·보존되고 있다. 1940년 일본인들이 발행했던 ‘월간 인천’이란 잡지 속엔 경인 운하 건설 관련 토론회, 월미 관광 특구 관련 대담 등도 수록되어 있다. 이렇게 인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주는 역사 기록과 이야기가 책과 신문, 사진과 엽서, 필름 속에 담겨 있다. 수집된 개항기 자료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일본인들의 기록에 대한 습성의 대단함이다. 역사와 기록을 대하는 우리들의 현재를 반성하게 한다. 지금도 화도진도서관은 과거 기록의 수집·보존과 더불어 현재의 ‘무엇을’ ‘어떻게’ 보존해 갈 것인가를 항상 고민하고 있다.
내 가슴에 새긴 한 구절
“역사 공부를 하다 보면 어느 시대의 상황을 똑바로 이해하고, 포착하는 데 있어 조정에서 적은 공식 기록이라는 정사(正史)만으로는 부족하기 이를 데 없음을 실감케 된다. 그래서 정사가 아닌 야사(野史)를 뒤지게 되고, 그 야사로 정사를 조명시키고 보유(補遺)하면 상황의 진실이 떠오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야사의 기록은 아무리 값지게 평가한다 해도 지나치다는 법이 없을 것이다.” - 신태범 박사의 ‘인천 한세기’ 서문(부분 발췌)
개항 100년이 되던 해 출간된 신태범 박사의 책이다. 조선일보 논설위원 이규태 선생이 쓰신 서문을 보면, 우리가 역사의 기록을 중요하게 여겨야 할 이유를 명확히 알려준다. 역사 연구자는 아니지만, ‘인천 한세기’ 초판본을 들여다보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고 종종 되짚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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