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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녹는 온도, 인정人情
우리가 녹는 온도, 인정人情
글 금희(시인)
개의 체온과 맥박이 인간보다 높고 빠르다고 한다. 그러니까 체온은 38~39℃정도 된다는 말이다. 기다리던 첫눈이라도 오는 날이면 이유 불문하고 좋아하는 나에게 옆에서 하는 말들이 ‘개띠라서 그런다’라는 말이다. 개가 정말 눈을 좋아하나? 알 수 없다. 그러나 눈밭에 뛰어나가 겅중겅중 함부로 발자국을 남기는 것을 보면 발이 시려서인 것만은 아닌 것을 알겠다.
인천에서 타향살이를 한 지 20여 년이 지났다. 문학을 꿈꾸던 시절 내 안의 좁은 상상력에서 매번 오독을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 덕분에 제대로 짚어내려던 의욕이 진짜 글공부로 이어지기도 했지만 오독은 그 후로도 일상이었다.
글에서뿐이었을까? 도시 유목민이었던 내게 인천에 대해서도 오독의 시절이 있었다. 이방인의 편협한 시각을 가진 내게 인천의 첫인상을 결정지은 것은 ‘덤프트럭’이었다. 역시 타향살이였던 서울살이를 막 마치고 온 터라 도로를 질주하는 덤프트럭의 잦은 출몰 또한 삭막한 도시 외곽으로 몰려나온 서러움을 부채질하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잠시 신도시인 H시로 이사 갔다. H도시는 도시 정원을 실현한 듯이 아름드리 수목들과 적당한 높이의 집들, 반듯한 도시 구획들이 세련된 이미지를 부각했다. 그렇게 잘 정돈되고 풍요로워 보이는 도시였음에도 결국 나는 그 도시에 정을 주지 못했다. 투박하고 거칠었지만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인천이 그리웠다. H시는 도시 외관과 사람들의 세련된 모습에는 빈틈이 없었지만 사람들 마음에는 커다란 구멍이 있어 바람이 슝슝 드나드는 것 같았다. 허깨비들 같았다. 어쩌면 말벗이 없는 곳에서 느끼는 외로움이 과장된 것일 수도 있겠다.
돌아온 인천에서 언니들을 따라 북성포구를 다시 찾고 수봉산 자락 골목을 사랑하게 되었다. 한참 뒤에 알게 된 사실로 내가 인천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가 했던 사건도 있었다. 이름이 도화동인 동네인데 어떻게 복숭아나무 한 그루가 없을까 아쉽고 섭섭해하던 즈음이었다. 집 앞 팔각정을 복숭아나무 정자라 이름붙이고 나름 뿌듯해했다. 그러다가 새로 인사드린 이웃 어르신을 알게 됐다. 인천 토박이로 살면서 40여 년을 택시운전사로 일했다고 하셨다.
“아, 여기 도화는 길 도道 자에 벼화禾 자인걸. 당연히 복숭아나무가 있을 턱이 없지. 진짜 복사골은 요 옆 도원동이잖아.”
‘아! 길도 자에 벼화 자라면… 그렇다 벼와 관련된 동네였던 게로구나.’
시까지 지어 야단법석을 떨었던 마음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처음 인천은 삭막하고 메마른 콘크리트 덩어리처럼 다가왔다. 그 단단하게 잘못 편집된 시각에 균열이 가고 먼지가 앉아 작은 풀씨들이 꽃을 피웠다. 짠내 나는 메마른 가슴에 와서 핀 그 작은 풀꽃들의 이름이 ‘인정’이었다.
사람이 체온을 1℃ 높이면 면역력이 높아진다고 한다. 바라건대 서로의 체온이 좀 달라도 다가가 춥고 시린 곳을 덥혀 줄 수 있는 거리만큼 다가가는 한 해가 되길 빌어본다.
가장 세련되고 오래된 따뜻한 언어는 인정 아니더냐고 살림살이가 밀물과 썰물로 들고 나도, 바닷가 낭만이 보이지 않는 곳을 채우고 비우는 동안 우리 언 가슴도 조금 따뜻해지지 않겠는가 하고. *정이현 작가의 에세이 제목에서 빌려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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