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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우유’를 아시나요

2018-02-01 2018년 2월호


‘인천우유’를 아시나요

글 배성수(인천도시역사관장)


 
대학 시절 학교에 가려면 주안역에서 전철을 내려 41번 버스를 타야만 했다. 버스가 신기시장 지나 야트막한 고개를 넘어설 때면 왼편 차창 밖으로 ‘인천우유’라 적힌 높다란 굴뚝이 서 있었다. 주위의 집들과 좀처럼 어울리지 않던 풍경이어서일까? 기억 속의 인천우유는 맛이나 병 생김새보다는 공장 굴뚝으로 남아있다.
인천우유는 인천 소재 낙농업자들이 결성한 인천축산협동조합에서 생산했던 우유다. 1963년 정부가 건설한 우유 살균처리장을 인천시로부터 위탁받아 우유 생산을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가공 처리 과정을 거쳐 장기간 보관과 유통이 가능한 분유, 연유와 달리 우유는 유통기간이 짧아 냉장보관과 살균처리 시설이 필요했다. 1960년대 들어 정부는 국민 식생활 개선과 축산농가 지원을 위해 도마다 1~2개의 우유 살균처리장을 두고, 이 시설의 운영을 해당 지역의 축협에서 맡아 보도록 했다. 지금도 판매되고 있는 부산우유와 제주우유는 인천과 마찬가지로 당시 살균처리장을 위탁받았던 지역 축협에서 생산했던 우유 브랜드다.
초창기 인천축협은 살균 처리된 우유를 간단한 포장 과정만 거쳐 다방이나 제과점 등으로 유통시켰으나, 1960년대 말 신기촌 언덕배기에 공장을 마련한 뒤 병과 비닐 등으로 개별 포장한 우유에 ‘인천우유’라는 상표를 붙여 판매하기 시작했다. 개별 포장이 가능해지면서 유통 시장도 다변화되어 인천우유는 상점과 다방은 물론 인천 시내 각 가정으로 배달되었고, 학교 급식에도 포함되었다. 전국적으로 우유 소비가 급증하자 각 지역의 축협과 축산학과가 있는 대학을 위주로 형성되었던 우유시장에 기업이 뛰어들었고, 소자본의 지역 축협에서 생산하던 우유는 최신 시설과 전국 유통망을 갖춘 기업 제품과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다. 인천의 상황도 별반 다를 게 없어 그간 인천우유가 독점하다시피 했던 우유 시장은 자본력을 앞세운 기업 제품에 잠식당해 갔다. 이런 상황에서 인천우유는 신상품 개발과 유통망 확대를 통해 자생력을 확보하고자 노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1970년대 말 유산균 음료가 유행을 타자 ‘요굴사와’라는 신제품을 출시했으며, ‘자연우유’로 이름을 바꿔 인천에 한정되어 있던 시장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등 지역 브랜드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했다.
이것이 독이 되었던 것일까. 결국 실적 부진을 이겨내지 못하고 1987년 커피 가공업체인 동서식품에 합병되어 ‘동서우유’라는 새로운 상표를 달게 되었다. 그마저도 오래 버티지 못해 1996년 동서식품이 우유 시장에서 철수를 선언하면서 30년 넘게 이어온 인천우유의 맥은 완전히 끊어지고 말았다. 지나친 상상이겠지만, 당시 인천우유가 유통망을 전국으로 확대하려는 노력 대신 인천의 소비 시장에 조금 더 집중해서 ‘인천’이라는 지역 브랜드를 지켜냈더라면, 지금 우리는 마트 진열대나 집 냉장고의 우유팩에서도 인천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인천 시민의 출근길을 친절하게 안내해주던 인천교통방송의 이름이 올해 들어 경인교통방송으로 바뀌었다. 인천 지역에 한정되어 있던 방송권역을 경기도 일원으로 확대하기 위해서란다. 방송에 제 지역 이름을 달고 있는 부산, 대구, 울산, 광주 등의 도시에 비해 차량 대수나 교통량이 적지는 않을 터인데, 어쨌든 또 하나의 인천 브랜드가 사라지게 되었다. 인구를 비롯해서 도시의 각종 지표는 높아져만 가는데 인천이라는 이름이 갖는 가치는 자꾸 낮아지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내 가슴에 새긴 한 구절

인천박물관의 근본 사명의 하나인 인천향토사의 완성은
인천 부근에 산재하고 있는 고적 조사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고 믿는다” - 석남 이경성

 
철부지 학예사 시절, 박물관 서고에서 우연히 발견한 ‘인천고적조사보고’에 적혀있던 초대 관장 이경성 선생의 글이다. 선생이 직접 펜으로 휘갈겨 쓴 이 구절을 보면서 무언가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조사보고의 한 구절이 아니라 늘 말로만 읊조려 왔던 인천시립박물관의 살아있는 전통이었다. 20년 넘게 박물관 학예사로 살아가고 있는 나를 끊임없이 되돌아보게 하는 반사경이자 후배들에게 전해줘야 할 무거운 책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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