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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채울 빈 방 있습니다.

2018-03-02 2018년 3월호



마음 채울 빈 방 있습니다

때론 오래된 것이 더 새롭고 아름답다.
인천은 과거와 미래가 조화로운 도시, 최초와 최고가 공존하는 도시다. 시간의 흔적을 온전히 보듬어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탄생시킨 공간으로 들어가 본다. 그 세 번째로, 골목 깊숙이 방 한 칸 내어 주고 지친 마음 어루만지는 ‘인천여관×루비살롱’을 찾았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사진 류창현 포토디렉터
 

 
삶이 고단할 때
‘몸 누이러 오세요’
 

중구 관동 후미진 골목, 낡고 오래된 여관의 문을 살며시 연다. 눅진하고 고단하지만 따스한 공기가 맴돈다. 호텔도 게스트하우스도 아닌, ‘여관’이란 이름에서 전해지는 남루하면서도 친근한 정서. 무수한 인생의 곡절과 사연이 쌓이고 쌓인 공간엔 지금,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건물은 1965년 처음 ‘인천여관’이라는 간판을 달았다. 1970년대 활동한 가수 이숙이 주인이었다. 미군부대 무대에서 데뷔한 그는 한창때 ‘눈이 내리네’ ‘우정’ 등의 노래를 부르며 이름을 떨쳤다. 1990년대에는 노부부가 여관을 넘겨받지만, 큰길가에 있는 번듯한 숙박업소와의 경쟁에 밀려 결국 문을 닫고 만다. 사람들이 떠나고 덩그러니 남은 공간은, 10년 후 고치고 다듬어져 ‘인천여관×루비살롱’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렇게 세월 따라 주인 따라 건물의 운명도 바뀌었다.
“처음 이곳을 발견했을 때, 인천의 상징적인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골목 깊숙이 숨겨져 세상의 관심 밖에 있지만 의미 있는 공간이지요. 속도에 아랑곳 않고 낡고 오래된 것들이 나름의 이야기를 지켜가는, 이 도시와 닮았어요. 이름부터 ‘인천’여관이잖아요.” ‘인천여관×루비살롱’의 주인장 이규영(43) 씨는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랐다. 서울에서 이름난 인디 레이블을 운영하고 있지만, 가속도 붙은 인생길에서 잠시 쉬었다 가는 안식처는 고향 인천이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명확해요. ‘인천여관’이 여기 있으니까요.” 서울에 가보니 별게 없어 다시 동네로 왔다며, 그가 환하게 웃는다.
 
 
 
돈이 되고 안 되고는 중요하지 않다.
“돈은 서울에서 벌지만, 인천에서 쉬고,
살아가고 싶다”는 이규영 대표.



 

‘춒먕횺백화점’ 전, 원종은(좌), 상아하(우) 작가의 방.
다듬어지지 않은 공간 구조는 작가들에게
상상력을 불어넣고 새로운 시도를 하게 한다.




여유가 필요할 때
‘마음 누이러 오세요’

오래된 흑백 사진 같던 공간은, 이 순간 다채로운 빛으로 채워지고 있다. 혼자만의 사연이 깃든 비밀스러운 방은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 됐다. 그 첫 번째로 음악 도시 인천의 이야기가 담긴 ‘비욘드 레코드(Beyond Record)’ 전이 열렸다. 전시를 기획한 고경표(36) 큐레이터는 6년 전 오석근 사진작가와 결혼하면서 인천과 연을 맺었다. 지역을 알기 위해 재즈클럽 ‘버텀라인’에 몸담으면서 자연스럽게 인천 음악사에 젖어들었다. 2년여에 걸쳐 전성기 때 인천에서 활동한 밴드와 옛 음악 공간을 찾아 정리하는 작업이 이어졌다. “1980년대 후반부터 관교동 일대에 머리 긴 오빠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어요. 서울보다 연습실 대여료가 싸면서도 접근성이 뛰어났기 때문이지요. 당시 시대상과 지역의 고유한 색깔을 엿볼 수 있어요.”
현재 이곳엔 세 번째 전시 ‘춒먕횺백화점’ 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를 기획한 원종은 씨를 비롯해 6명의 개성 넘치는 작가들이 뜻을 모았다. 이미지적으로 예쁜 자음과 모음을 결합한 ‘춒먕횺’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그 어떤 뜻이나 이념도 담고 있지 않다. 뜨개, 가죽, 패브릭 공예 등 예술과 일상의 벽을 넘나드는 작품이 전시장을 가득 메운다. 원 작가의 방은 한 땀 한 땀 뜨개를 이으며 마음의 평안에 이르는 만다라의 과정을 그렸다.
50여 년 시간이 고인 공간엔,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기다란 복도를 따라 이어진 좁은 방, 옛날식 타일을 투박하게 붙인 욕실은 이곳이 여관으로 살아온 세월을 보여준다. 오래되어 광택을 잃은 자개장과 낡은 책상 같은 소품은 재개발 지역에서 거둬들인 보물이다. 사라져간다고 해서 잊을 수는 없다. “버려진 물건을 다시 쓰는 행위 자체가, 지나온 상처를 어루만지고 새로운 안식을 찾아가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인천여관×루비살롱’에서 팟 캐스트
‘부둣가 라디오’를 진행하는 배영수 씨.
앞으로 인천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을 소개하고,
인천의 문화 정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인천여관’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 이의중 작가.
그는 ‘결국 공간을 살리는 건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골목 한편에서
‘추억이 기다려요’


오래된 골목, 그만큼 오래된 여관은 여전히 세상 사람들을 품에 안는다. 지나간 기억을 붙잡아 풀어놓은 이는 ‘건축재생공방’의 이의중(39) 작가, 그리고 동네 사람들이다. 단순히 낡은 건물을 다시 살리려 한 게 아니다. 자욱이 쌓인 먼지를 털어 본연의 가치를 찾아내고, 오늘 그리고 내일 더 빛나게 하려는 것이다. 그 한가운데는 사람이 있다. “공간을 되살리는 것보다, 앞으로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하느냐가 중요해요. 이는 지역이 가지고 있는 힘, 바로 사람에 따라 좌우됩니다. 그런 면에서 이 대표는 지역에 대한 애정으로 여러 시도를 하며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에요.”
이 작가는 ‘인천여관’의 가치를 사람들이 채워가는 현실이 기쁘고, 또 앞으로 어떤 의미가 덧입혀질지 기대에 차있다. 그리고 더 이상 재생될 수 없는 한계점에 이르더라도 또 다른 형태의 의미를 찾으리라 믿는다. “그저 ‘여관’이었다면 쉽게 허물어졌겠지요. 하지만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은 공간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지금 이 시간을 깊게 새겨 놓으면, 내일 소중한 역사가 되겠지요.”
가난한 사람들이 하룻밤 따듯하게 묵어갈 수 있는 방을 내어주던 곳. 오늘 이 안엔, 차 한잔 추억 한 모금 그리운 이들이 저마다 속내를 내려놓고 잠시 숨을 고른다. ‘인천여관’에 오래도록 머무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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