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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천은 아프리카 초원이다
아프리카 목공소·철공소 대표 김영수
사진 김보섭 │ 글 유동현
흡사 로커(rocker) 같았다. 홍예문 길을 오르내리며 슬쩍슬쩍 봤던 그의 첫인상이다. 빡빡머리, 착 붙는 민소매, 시커먼 선글라스, 팔뚝 위 커다란 문신, 게다가 담배까지 물고 있던 그 모양새는 ‘야생’ 그 자체였다. 그 품새에 눌려 말도 못 붙이고 내부를 둘러보는 둥 마는 둥 나온 게 두어 번이다. 이번 취재를 위해 그곳을 다시 찾아 그를 대했을 때 그가 아닌 줄 알았다. 페인트로 얼룩진 검은 작업복에 낡은 모자 그리고 뿔테 안경을 쓴 그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아프리카 목공소·철공소 대표 김영수(46) 씨는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부산 다대포에서 성장했다. 부산해양고에 입학해 3학년 때부터 배를 탔다. 15개월 정도 뱃일을 하고 방황하다가 해병대에 입대했고 제대 후 노가다판에서 일했다. 이후 농산물도매시장에서 총각무 중매인으로 일하며 집을 장만할 만큼 돈을 모았다. 다른 사업에 눈을 돌렸다가 수억 원을 빚지고 다시 노가다 판을 떠돌았다.
4년 전 동인천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이곳에 왔을 때 그는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었다. 사회의 온갖 ‘쓴물’은 다 뒤집어쓰고 냉랭하고 거친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내뿜는 상태였다. 월세 싼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동인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웬일인지 마음이 점점 편해졌다. 기를 죽이는 큰 빌딩도, 윽박지르는 큰길도 없었다. 무엇보다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안온했다.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옛 축현초교) 위쪽 길가 낡은 상가에 거처를 마련했다. 전동 골짜기의 키 작은 집들과 인일여고 언덕배기 그리고 멀리 화수동 공장들이 보이는 ‘뷰’가 맘에 들었다. 그는 캠핑하는 셈 치고 짐을 풀었다.
심심해서 이것저것 만들고 있는데 어느 날 아주머니 한 분이 불쑥 들어왔다. “6인용 테이블 하나 만들어줘요.” “여긴 목공소가 아니….” “30만원 줄 테니 하나 만들어줘요.” 목공 일을 제대로 한 적이 없는 그였지만 한 달치 방값을 치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덜컥 수락했다. 아프리카(Afrika) 목공소의 시작이었다. 간판으로 ‘아프리카’를 내건 이유는 단순하다. 그곳에서는 자신과 같은 사람도 몸으로 때우면 쓸모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그 자신만큼이나 상처 받은 그 땅에서 남을 위해 일하다 보면 치유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아프리카를 늘 동경해왔다. 간판의 아프리카 철자가 이상하다는 물음에 “K가 멋있잖아요”라며 씩 웃는다. 사실은 이메일 주소로 아프리카(Africa)를 쓰려고 했는데 이미 사용 중이라 살짝 바꾼 것이란다.
아프리카는 언제부턴가 아이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인근 학교 학생들은 물론 지나가던 아이들이 부담 없이 들어와 합판 조각에 그림을 그리며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편하게 ‘노는 공간’이 되었다. 매년 핼러윈데이에는 ‘구미호데이 여우야 놀자’라는 파티를 직접 기획하고 진행하는 등 함께 놀아준 것뿐인데, 지역 교육계에서는 이제 김 대표를 아이들의 멘토로 모셔간다. 꾸물꾸물문화학교 동네예술대학의 목공 수업, 인천문화재단의 동네방네 아지트 활동 등 다양한 재능 나눔을 하면서 지역 문화계와도 끈끈한 사이가 되었다.
몇 년 전 그는 지인의 소개로 진짜 아프리카와 인연이 닿았다. ‘아프리카가 아프리카를 만나다’라는 주제로 지난해 7월 아트플랫폼 칠통마당 갤러리 디딤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수익금 전액을 짐바브웨 아트센터에 기부했다. 어쩌면 그는 이미 아프리카에 가있는지도 모른다. 동인천이 그를 ‘사람’ 만들었다. 그것도 ‘착한 사람’ ‘멋진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에게 동인천은 아프리카의 푸른 초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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