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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문화유산

2018-03-02 2018년 3월호


우리 시대의 문화유산
 
글 손장원 인천재능대학교 교수


 
최근 몇 년간 외국에 나갈 일이 없다가 올해 무슨 복이 터졌는지 연달아 두 나라를 다녀오는 바쁜 일정을 보냈다. 일본에 이어 떠난 호주는 두 번째 여행지로, 시드니행 비행기에서 얼핏 셈해보니 22년 하고도 2개월 만이었다. 첫 번째 여행은 박물관 전시기법 연수가 목적이었고, 이번에는 해외현장실습에 참여한 학생들의 격려와 실습실태 점검을 위해 나선 길이었다.
그동안 문헌으로만 접했던 근대문화유산 활용사례를 직접 볼 수 있다는 기대가 컸지만, 해당 기관이나 회사의 업무시간을 피해 살펴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다행히 서머타임이 적용되고 있어 시간에 비해 늦게 어둠이 내렸고, 옛 건물이 밀집한 도심에 위치한 숙소 덕을 봤다.
시드니는 잘 알려진 것처럼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반에 세워져 헤리티지 빌딩(Heritage Building)이라고 불리는 건물이 많고, 이를 제대로 보존·활용하는 도시로 유명하다. 호주박물관이나 세인트 메리 성당처럼 건립 초기의 용도가 지금까지 유지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아 보였다. 호주은행으로 세워진 건물이 퍼브(pub)로 쓰이는 등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는 사례를 시내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어 부러웠다. 특히 호주 정부가 주도하는 문화유산정책의 융통성과 엄격성을 함께 보여주는 사례인 퀸 빅토리아 빌딩을 둘러본 것은 큰 행운이었다. 관광코스로도 유명한 이 건물은 99년간 장기임대를 통해 싱가포르 투자회사가 보수하여 쇼핑센터로 쓸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도 건축물의 특성은 유지하고 있다.
이제 인천으로 눈을 돌려보자. 인천의 근대건축물도 건립 초기와는 사뭇 다른 용도로 쓰이는 경우가 많지만, 활용방식은 천편일률적이다. 관이 소유한 건물은 박물관이 되고, 민간이 손을 대면 카페가 된다. 문화유산의 특성과 장소에 맞는 활용방법을 찾으려는 진지한 고민 없이 선행 사례 모방에 급급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원도심이 온전히 살아나기 위해서는 주말이나 휴일에만 반짝하는 관광을 넘어 일상문화가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창고를 개조한 수제 맥주집이 들어서는 등 조금씩 변화의 움직임이 보인다는 점이다.
시드니 문화유산은 시민의식과 수준 높은 정책으로 유지된다. 시민은 문화유산 보존에 필요한 규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정책은 경제성과 보존이라는 대립되는 두 가치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배려한다. 우리나라도 등록문화재 제도를 두어 근대문화유산의 활용도를 높이려 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주민은 사유재산 침해를 이유로 문화재 지정 해제 요청 서명부를 만들고, 지자체는 유서 깊은 건물 철거를 반복한다. 마침 인천시가 문화유산 중장기종합발전 5개년계획과 건축자산 기초조사 및 진흥시행계획 수립 연구용역을 추진한다고 하니 여기에 기대를 걸어본다.
시드니 체류 기간 묵었던 호텔 1층 엘리베이터 옆에 걸려있던 패널이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패널에는 호텔이 세워질 당시의 평면도와 입면도, 건물의 역사가 자세히 담겨있었다. 지금 우리가 세우는 건물도 100년 뒤에는 문화유산이 될 수 있다. 호주 도심에 위치한 근대건축물이 살아남은 이유는 당국의 보호정책도 한몫을 했겠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건물들이 그 시대의 문화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껍데기만 흉내 내 지은 건물에 역사와 문화가 담길 수 없다. 건축물이 갖고 있는 상징성을 간과한 채 짝퉁을 세우는 정성(?)을 이 시대의 가치가 담긴 최고의 건축물을 짓는 동력으로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 가슴에 새긴 한 구절
신은 디테일 안에 있다.(God is in the details) - Ludwig Mies van der Rohe
루트비히 미스 반데어로에는 독일 바우하우스의 3대 교장으로 나치의 압박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가 자신의 건축세계를 펼친 대표적인 모더니즘 건축가이다.
‘더 적은 것이 더 많다’는 말로도 유명한 그는 ‘미니멀리즘(minimalism)’ 건축을 대표하기도 한다.
‘신은 디테일 안에 있다’는 말은 ‘무엇을 명작이라고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유명 브랜드가 붙었다고 모두 명품은 아니다. 겉모습만 흉내 낸 물건은 결코 명품이 될 수 없다. 건물이든 물건이든 고객이 만든 사람의 세심한 배려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 진정한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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