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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익은 시간 깊어지는 색色

2018-05-01 2018년 5월호

 
농익은 시간

깊어지는 색

 
 
때론 오래된 것이 더 새롭고 아름답다.
인천은 과거와 미래가 조화로운 도시, 최초와 최고가 공존하는 도시다.
시간의 흔적을 온전히 보듬어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탄생시킨 공간으로
들어가 본다. 그 다섯 번째로 개항장 100년 된 건물에서 새 숨을 틔운
고진오 작가의 화실을 찾았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사진 류창현 포토디렉터


 



100년 된 일본식 목조 주택이
문화예술 공간으로 새 숨을 틔웠다.
본연의 모습을 살려둔 채
비우고 채우는 과정이 이어졌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다
 
중구 관동 일대에는 일제강점기에 지은 일본식 목조 주택들이 시간을 거스르며 무심히 서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세월의 덧옷을 입고 변한 모습에 옛 가옥인줄 모르고 스쳐 지나곤 한다. 그 거리에 창 너머 풍경이 자못 궁금해지는 건물 하나가 생겨났다. 서양화가인 고진오(56) 작가의 작업실이자 ‘갤러리지오(GO)’에 이은 그의 두 번째 전시공간이다.
시간이 흐르고 옛 건축물은 동네에서 흔히 보는 낡은 다세대주택이 되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애정 어린 손길이 닿으면서 문화예술이 꽃처럼 피어났다. 뭉게뭉게 쌓인 세월이 자그마치 100년이다. 색을 겹겹이 입힌 나무 기둥, 콘크리트 안에 감춰진 울퉁불퉁한 흙벽을 쓰다듬으며 그 시간을 가늠해 본다. 한 지붕 아래 다섯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던 집. 고만고만한 형편이었지만 집주인 눈치 보지 않고 자식들 키우고 살림을 불리며 희망을 키웠으리라. 작가는 버려진 공간에 남겨진 삶의 자취를 소중히 그러모았다. “이 공간을 거쳐 간 수많은 사람의 사연을 그냥 묻어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손때 묻은 벽면과 기둥, 빛바랜 목조 장식 등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겨 두었습니다. 누군가의 잃어버린 시간을 다시 찾은 기분이었어요.”
 

작품에 둘러싸인 고진오 작가.
그는 오는 8월 30일부터 신세계백화점 인천점에서 열리는
‘20회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아름다움을 좇는 작가의 손




10년 넘게 함께한 작가와 제자.
이젠 가까운 친구 사이 같다.


수채화처럼 삶을 물들이다
 
망치질을 거듭할수록 시간의 증거들이 쏟아져 나왔다. 평범했던 건물이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자 집주인도 ‘이렇게 멋스럽고 고풍스러운줄 몰랐다’며 놀라워했다. 단순히 건물을 새로 올린 게 아니다. 추억을 짓고 기억을 세웠다. “건물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작품입니다. 하나하나 손으로 가다듬고 어루만지며 작품을 완성하고 싶었어요. 원형 그대로를 남겨둔 채 비우고 채우는 과정이 이어졌습니다.”
정성스레 새 숨을 불어넣은 후엔, 작가 한 사람이 아닌 모두의 공간으로 열어두었다. 정오가 되자 붓과 물감을 든 사람들이 하나둘 화실로 모여든다. 백기흠(78) 어르신은 캔버스를 물들이며 노년의 삶을 풍요롭게 채우고 있다. “내 어릴 적 학교에 다닐 때, 그림 대회 나가면 전교 1등도 하고 그랬어. 먹고살기 바쁘다 보니 잊고 살았지. 선생님 만나면서 다시 그림 그리고 전시도 하니, 여한이 없어.” 박인미(63) 씨는 작품에 반해 고 작가와 인연을 맺었다. “풍경을 그리기에서 인천에 선생님을 따라갈 사람이 없어요. 표현력이 뛰어나고 색감도 풍부하지요.” 그림이 좋았다지만 외모에 반한 건 아니냐고, 작가가 농을 던지니 ‘노코멘트’라며 긍정도 부정도 아닌 미소를 보낸다. 함께한 세월이 10여 년이다. 이젠 제자라기보다 가까운 친구 사이 같다.
 


건물 옥상에 오르면,
‘인천’이라는 거대한 작품이 펼쳐진다.


예술 일상에 스며들다
 
이 일대의 나이 든 주민 대부분은 부둣가 공장지대에서 땀 흘리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그저 열심히 일할 줄만 알았던 우리 아버지들에게 예술은 사치일 뿐이었다. 지금이라도 그들의 고단한 삶에 작은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 작품을 갤러리 밖에 전시해 놓은 것도, 평범한 사람 누구나 예술을 누릴 수 있도록 한 그의 따듯한 배려다. “‘여기가 뭐하는 데냐’고 동네 주민께서 불쑥 들어오곤 하세요. 그럼 참 반가워요. 아직 어려워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냥 편하게 들러서 그림 보고 차 한잔 하고 가시면 돼요.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4년 전, 작가가 개항장에 문을 연 ‘갤러리지오(GO)’는 지금껏 단 하루도 전시를 쉰 적이 없다. 삶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작가와 대중의 거리를 좁히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화창한 오월, 커피 한잔 들고 개항장 거리에서 예술과 일상 사이를 거닐어 보자.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누리는 평범하지만 소중한 시간. 행복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information
고진오 화실 & 갤러리
제물량로206번길 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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