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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를 지키는, 뜨거운 심장

2018-06-05 2018년 6월호

배다리를 지키는,

뜨거운 심장

 

때론 오래된 것이 더 새롭고 아름답다. 인천은 과거와 미래가 조화로운 도시, 최초와 최고가 공존하는 도시다. 시간의 흔적을 온전히 보듬어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탄생시킨 공간으로 들어가 본다. 그 여섯 번째로 뜨거운 심장을 가슴에 품고, 한결같이 배다리를 지키는 스페이스 빔을 찾았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사진 류창현 포토디렉터

 

 

한 초등학생이 엄마와 함께
고사리손으로 의수를 만들어
달아주면서,‘고뇌하는 깡통 로봇’은
외팔이 신세를 면했다.



소중한,

배다리

 

강원도 산골에서 온 열여섯 소년에게 회색빛 도시는 낯설고 막막한 존재였다. 인천에서 처음 터를 잡은 곳은 답동, 형편이 녹록지 않아 이곳저곳 이사를 다녔다. 갈수록 숨 막히고 주눅이 들었다. 그러다 배다리로 흘러들었다. 세월의 때가 덕지덕지 묻은 낡은 풍경이 오래전 기억을 붙잡고 있는 곳. 고향으로 돌아온 것처럼 편안했다. 낯선 도시가 처음으로 건네는 따듯한 위로에, 떠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동네가 됐다.

도시문화 기획자이자 공간 운영자인 민운기 씨는 배다리에서 문화예술 공간 스페이스 빔을 꾸려가고 있다. 이곳은 배다리의 상징적인 존재다. 10년 전, 마을을 관통하는 도로를 만든다고 했을 때 반대 목소리를 내며 주민과 한길을 걸었다. “배다리는 거친 세상 한복판에서 떠밀려온 사람들이 뒤엉켜 사는 동네입니다. 그만큼 생존력이 강하고 독립적이지요. 주민이 힘을 모아 시대적 과제를 스스로 풀어가고 있습니다.”

 

 스페이스 빔은 1995년 ‘지역미술연구모임’에서 출발해,
2007년 배다리 옛 인천양조장 자리로 옮겨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아직,

머무르는 이유

 

한쪽 팔을 잃은 대신, 근사한 의수를 얻었다. 수년째 스페이스 빔 문 앞을 지키는 고뇌하는 깡통 로봇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외팔이 신세였다. 고물을 수집하는 어르신이 한쪽 팔을 떼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하루하루의 고단함이 밥이 되는 삶이 헤아려지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로봇은 아무 죄가 없다.

스페이스 빔이 있는 자리엔 그 옛날 인천의 술 소성주를 만들던 인천양조장이 있었다. 1926년 황해도에서 온 최병두 선생이 세워, 1927년부터 1995년까지 근 70년간 술을 빚었다. “자욱한 먼지와 쓰레기 더미 속에서도 건물의 골격이 돋보였습니다. 잘만 다듬으면 멋진 공간이 되겠다는 생각에,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스페이스 빔을 만들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치열하게 삶을 일구던, 투박하고 거친 공장의 정체성을 살리고 싶었다. 미로 같은 공간을 따라가면 그때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공장 한가운데서 땀 흘리는 노동자들을 지켜보던 품질향상문구, ‘고두밥실’ ‘주모실’ ‘발효실’ ‘숙성실’ ‘취음실등의 표지에서 시금털털한 막걸리 냄새가 풍겨 나오는 것만 같다.

동네 어르신들은 아직도 저를 양조장 사람이라고 부른답니다. 옛이야기를 하며 지켜줘서 고맙다고들 하세요.” 인생의 쓴맛이 깊을수록 술맛은 달다. 가끔 허기지고 엇박자가 나는 인생, 이보다 더 배부른 위로가 어디 있으랴. ‘여전히존재하는 인천양조장을 보며, 나이 든 사람들은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지난 삶을 떠올릴 것이다. 그것이, 남들이 살기 힘들다고 떠난 이곳에 그들이 여전히 머무르는 이유인지 모른다.

 

 


 

 보물창고’에서 발견한 1980년대 ‘보물’.
새마을운동 당시, 화가들이 그 과정을
그림으로 그려 전시했던 흔적이 담겨 있다.



내일은 또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창밖의 신록처럼, 푸르고 더 빛나길.
민운기 대표는 말한다. “시민이 스스로 인천의
어제와 오늘을 지키고, 내일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내일,

더 나은 세상

 

어른들은 텃밭을 가꾸고 아이들은 흙으로 된 놀이터에서 고추잠자리를 잡으면서 놀았어요. ‘아파트 단지라는 세상밖에 모르던 제게 동네라는 공간이 낯설고도 신선하게 다가 왔습니다.” 스페이스 빔의 활동가 정지은(26) 씨가 배다리와의 첫 만남을 떠올린다. 그에게 배다리는 사람 냄새 풀풀 나는 좋은 동네. 그는, 사람들이 그런 배다리의 진정한 모습을 외면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시간이 느릿느릿 흐르던 배다리는, 드라마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한동안 복닥복닥했었다. 브라운관에서 본 노란 서점을 찾아 전국에서 사람이 모여들었다. 하지만 드라마 속 환상과 현실 사이에는 닿을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낡은 담장 안에 숨어 평생을 살아온 주민들에게 갑작스러운 세상의 관심은 감당하기 버거울 수 있다. 민 대표는 획일화된 기준에 맞춰 배다리를 관광지화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사람이 살고 있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곳이 아닌, 주민을 위한, 주민이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들어야 한다. “도시 공간이 자본주의적인 욕망과 일방적인 권력에 휘둘려서는 안돼요. 주민 스스로 문제의식을 갖고 지역이 바로 설 수 있도록 새로운 변화와 가능성을 열어가야 합니다.”

심장을 갖고 싶어.’ ‘오즈의 마법사의 양철나무꾼은 텅 빈 가슴에 온기를 불어넣고 싶어 긴 여행에 나섰다. 하지만 길의 끝에서 깨달았다. 이미 뜨거운 심장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을. 저마다 가슴속 뜨거운 심장으로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더 나은 세상을 열어가길, 어두컴컴한 옛 양조장을 지키는 양철 로봇은 꿈꾼다.

 

 

 

information

스페이스 빔

동구 서해대로513번길 15

422-8630

www.spacebea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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