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지난호 보기

2.5 킬로미터의 바다, 다가오는 다가가는

2018-06-05 2018년 6월호

2.5 킬로미터의 바다

다가오는 다가가는


섬과 육지가 끊긴 게 바다 탓은 아니다. 2.5km 바다를 사이에 둔

황해도 연백과 교동도는 전쟁으로 철책이 둘러쳐지면서

남북으로 갈라섰다. 유배의 섬 강화도에서 또 유배된 섬 교동도.

그 안에는 고향 땅과 가족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아온 사람들이 있다.

한반도에 평화의 바람이 부는 지금, 그들의 마음에도 겨울이 가고 봄이 오기를.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사진 류창현 포토디렉터


확성기 꺼진

민통선 섬마을

 

20184240. 거짓말처럼 온 마을이 조용해졌다. 강화도 해안에서 북서쪽으로 1.5km 떨어진 교동도는 민간인 통제 구역에 자리 잡고 있다. 지난 4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대북·대남 방송을 쏟아내던 확성기가 말문을 닫았다. 55년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울리던 소음이 멈추자, 바람소리와 파도소리가 새삼 또렷이 들린다. 날선 이념의 소리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섬의 적막이 낯설기까지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민은 이제야 살 만하다고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놓는다.

전에는 밤낮 없이 귀에 대고 소리를 질러대니, 내 병이 났었어. 그래서 마을 친구들에게 나 아무래도 고향으로 가야 할 것 같아하면, ‘죽으면 혼자 죽어? 같이 죽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거야. 허허. 내 교동도에 뼈를 묻으려고 왔는데, 이제 맘 편히 살 수 있겠어.”

대룡시장에서 교동다방을 운영하는 전남수(60) 할머니는 15년 전 경상도에서 교동도로 왔다. 여기 사람이 아니다 보니 적응이 힘들었다. 연평도 포격사건 때는 공포에 사로잡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한밤중에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다. 이제 마음이 한결 편하다. “남북이 가까워지고, 동네가 더 살기 좋아질 거라는 생각이 들어.”

 


교동다방 전남수 할머니와 실향민 유득호 할아버지.

따듯한 쌍화차 한잔과
이웃의 정으로 버티는 타향살이.



​"가족 다 두고 온 거 아닙니까….”
6·25 전쟁 때 월남한 어르신의 이야기를 듣고
눈물짓는 교동다방 할머니.



멈춘 시간 속의

사람들

 

2.5의 바다를 사이에 둔 아픈 역사의 간극. 북의 황해도 연백과 남의 교동도는 원래 가까운 이웃이었다. 하지만 6·25 전쟁으로 한반도가 두 동강 나면서, 다다를 수 없는 머나먼 땅이 됐다. 교동도에는 실향민 30여 명이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잠시 머물다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세월은 흐르고 흘러 강산이 여섯 번 변했다.

한 백발의 노신사가 다방 문을 열고 들어선다. 황해도 개풍군이 고향인 유득호(88) 할아버지. 1·4 후퇴 때 한국군을 따라 남쪽으로 왔다. 열여덟이나 됐을까, 쏟아지는 포탄을 피해 낯선 땅으로 떠밀려온 소년은 한겨울 추위보다 더 혹독한 두려움을 견뎌야 했다. 난리 통에 신발을 잃어버려 맨발로 얼어붙은 땅을 걷고 또 걸었다. 인민군이 버린 신을 주워신고 겨우 산을 넘어 살아남았다. 어르신이 그 뼈아픈 기억을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옆에서 듣고 있던 다방 할머니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가족 다 두고 온 거 아닙니까. 그 어린 나이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안타까운 탄식에 할아버지가 빙그레 미소 짓더니 나직이 말을 잇는다. “보고 싶은 거야 이루 말할 수 없었지. 하지만 시간이 많이 지났어. 이제 괜찮아.”

교동이발관의 지광식(78) 할아버지는 열 살 때 목선을 타고 황해도 연백에서 교동도로 왔다. 젊은 시절 잠시 외항선을 탔을 때 말고는 섬을 벗어난 적이 없다. 바다 건너 바로 눈앞에 살던 집과 동네가 보였다. 고향이 그리워, 고향에서 가장 가까운 이 땅을 떠날 수가 없었다. 얼마 전에는 함께 피란 온 친구가 저세상으로 갔다. “이제 함께 막걸리 마실 친구도 없어. 쓸쓸해.”

 

 

오월 햇살 아래, 맑은 눈망울의
교동초등학교 아이들.
‘실향’민의 아이들에겐 교동도가
‘고향’이다.



망향대에서 고향 땅을 그리는 유득호 어르신.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러기엔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 버리고, 몸은 너무 늙었다.



교동도의 봄

 

지석리 북쪽 바닷가 언덕에는 망향대가 있다. 유득호 할아버지는 고향이 그리울 때면 이곳을 찾곤 한다. 가깝고도 먼 북녘 땅이 망원경 안으로 들어온다. 연백 너른 땅에서 누군가는 땀 흘려 밭을 일구고, 누군가는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강가에서 숭어를 잡는 사람들도 보인다. 그 옆으로 할아버지의 고향이 펼쳐진다. “저쪽이 내 살던 동네야. 지금은 개성공단이 들어섰지. 맘만 먹으면 헤엄쳐서도 건널 수 있지 뭐야. 참 가깝지?” 할아버지의 눈빛에 진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고향과 가족을 가슴에 품고 살아온 기나긴 세월, 어느덧 기대는 체념이 되어 갔다. 하지만 오늘, 한반도에 평화의 바람이 불면서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있다. 죽기 전에 고향 땅 한번 밟아보려 했던, 할아버지의 소원은 이뤄질 수 있을까. 그러기엔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 버리고, 몸은 너무 늙었다.

세상이 검기울 무렵, 다시 육지로 간다. 다리를 건널수록 점점 작아지는 섬. 철조망이 둘러쳐진 차가운 밤바다에, 섬은 홀로 남았다. 머무른 시간이 깊어질수록 고향을 그리는 마음은 짙어져만 갔다. 이제 쉽사리 기대를 품지는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념의 파도가 달려들던 섬마을에도 봄이 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첨부파일
OPEN 공공누리 출처표시 상업용금지 변경금지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이 게시물은 "공공누리"의 자유이용허락 표시제도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자료관리담당자
  • 담당부서 콘텐츠기획관
  • 문의처 032-440-8302
  • 최종업데이트 2025-03-12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인천광역시 아이디나 소셜 계정을 이용하여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
계정선택
인천시 로그인
0/250

전체 댓글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