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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City 인천!
글 조현정
TBN 경인매거진 MC. 프리랜서 방송인
대구가 고향인 남편은 식도락이 취미다. 50년을 넘게 인천에서 살아온 우리 부모님도 그의 식당 선택을 100% 신뢰한다. 하루는 좋아하는 음식점이 어디인지 묻는 장인에게 “저는 신포주점에서 친구들과 고추장찌개에 소주 한잔 하는 것이 좋습니다. 술값 대신 그림을 그리고 시를 써주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또 그것들이 수놓아진 벽을 보고 있으면 신기한 기분이 들어요”라고 대답하는 남편. 그가 스마트폰에 저장해 둔 100곳 가까운 인천 맛집들은 모두 골목에 숨어 있는 유서 깊은 노포다. 1946년부터 자리를 지켜온 평양냉면 전문점 신포동 경인식당, 콩비지와 무청시래기가 맛있어 어르신들이 많이 찾는다는 숭의동 태양식당, 설렁탕 바탕에 배추를 넣어 해장에 일품이라는 송림동 해장국집(지금은 선화동으로 이전), 라드유에 튀겨내듯이 볶아낸 볶음밥이 일품인 경동 용화반점 등등. 온갖 설명이 귀에 딱지처럼 앉아 이젠 내가 술술 풀어낼 정도다.
연애할 때부터 이끌려 간 곳은 대부분 내가 잘 알지 못했던 곳이었다. 그러면 그는, 인천에 이렇게 좋은 곳이 많은데 지금까지 무얼 하고 놀았느냐며 농을 던진다. 그러게, 나는 어떻게 이런 것들을 모르고 살았을까. 그가 많이 알고 있구나 하는 생각보다는 내가 인천을 너무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을 인천에서 살면서도 이곳의 가장 큰 장점은 서울과 가까운 것이라고 여겨왔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되도록 서울로 놀러 갔고, 그나마 수도권에 살아 이것들을 누릴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선배 세대는 대단히 발전하고 북적이는 인천을 기억하겠지만, 86년생 내 또래는 죽어가는 도시를 먼저 경험했다고 할 수 있다.
스무 살에 처음으로 다양한 지역 출신의 친구들을 만나게 됐고, 그 때마다 이런 말을 듣곤 했다. “인천 사람 같지 않아.” 나는 당황했다. 인천 사람 같지 않은 것은 무엇이고, 인천 사람 같은 것은 어떤 거지?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사람들이 말하는 ‘인천 사람’은 정작 풍문을 통해 들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네가 아는 인천 사람은 어떤데?” “응? 글쎄… 그러고 보니 네가 처음이야.”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억울함은 마찬가지였다. 인천은 왠지 살기에 무섭고 운전도 험하다던데, 차를 끌고 온갖 곳을 돌아다녀야 하는 프리랜서 방송인 조현정이 느끼는 바와는 전혀 다른 감상이다.
위와 같은 말을 듣기 전까진 인천이란 공간에 굳이 의미를 부여해본 적이 없다. 그저 다양한 인종이 어우러진 미국의 도시 버전 정도로만 생각했다. 어려서 어른들한테 “인천엔 모든 지역의 사람들이 섞여 있으니 지역 차별 발언을 하면 안 된다”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방송인으로 마이크를 잡고 나서는 “야구 얘기를 할 때 SK 와이번스만 옹호하는 말을 해선 안 된다”는 충고도 들었다. 물론 이런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자연스레 차별적인 가치관 없이 모든 것에 열려있는 태도를 기를 수 있었다. 이제는 이런 것들이 인천의 색깔이자 곧 나의 정체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어렴풋이 든다.
“정작 인천으로 이사 와서 살아보니 정말 좋은 곳이더라”는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그간 인천의 이미지는 얼마만큼 억울하게 소비되어 온 것인가. 누군가는 도시 브랜드라는 것을 단편적이고 가벼운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브랜드 이미지는 매우 중요하다. 2001년 민예총 인천문화정책연구소가 인천 시민 3천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무려 70%에 달하는 응답자가 ‘인천 짠물’이라는 별명을 들어보았고, 50% 정도가 그 이유로 ‘인색하고, 계산적이어서’라는 답을 했다. ‘먹고사니즘’에 열중한 나머지 왜곡된 이미지에 대한 해명을 쉽게 하지 못한 우리 인천과 인천 시민들은, 외부로부터 주어진 편향된 이미지를 그대로 답습하며 소비하고 있었다. 이제는 ‘인천은 짠물이 아니’라고 소극적으로 항변하기보다 시립박물관 기획특별전에 나왔던 말처럼 ‘인천이 짠물인 이유는 세상이 싱겁기 때문’이라는 적극적인 해명과 이미지 쇄신이 필요하다. 밖에서가 아닌 안에서부터의 브랜드 마케팅을 통해, 내 도시 인천을 그저 스쳐지나가는 공간(space)이 아니라 우리가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할 장소(place)로 바꿔나가야 한다.
내 가슴에 새긴 한 구절
밥은 개별적이면서도 보편적이다. 시위 현장의 점심시간은 문득 고요하고 평화롭다. 황사 바람 부는 거리에서 시위 군중의 밥과 전경의 밥과 기자의 밥은 다르지 않았다. 그 거리에서, 밥의 개별성과 밥의 보편성은 같은 것이었다. 아마도 세상의 모든 밥이 그러할 것이다. - 김훈, ‘라면을 끓이며’ 75쪽
개별적인 동시에 보편적인 밥. 인천도 각자에게 각기 다른 의미가 있겠지만, 그래도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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