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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 꽃피울 ‘신여성’ 유영이

2018-07-06 2018년 7월호


경계에 꽃피울 ‘신여성’ 유영이
사진 김보섭 │ 글 유동현



2년 전 어느 작은 공연장에서 그와 처음 인사를 나눴다. 그를 보자마자 웬일인지 ‘모던’, ‘계몽’, ‘신여성’ 등 개화기 단어가 떠올랐다. 인물 중심 사진에서 배경은 큰 의미가 없다. 그런데 김보섭 사진가는 장소에 유난히 집착한다. 유영이(32) 씨를 취재하기로 하고 그를 어느 공간에 세울까 고민했다.
올 장마가 시작된 날, 장대비를 뚫고 그를 동구 창영동 영화초교 옛 본관동에서 만났다. 인천영화초등학교는 1892년 4월 미국 선교사 존스 부인이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학교다. 박공지붕을 한 3층짜리 앙증맞은 이 작은 건물은 한 세기 전 영화학당의 빨간 벽돌을 그대로 품고 있다. 유영이 씨에게 느꼈던 첫 이미지를 놓지 못하고 그를 학당으로 오라고 했다. 나무 계단을 오를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100년 전 시간의 문을 노크했다.
그는 가좌동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건설 플랜트 설계사였다. 어려서부터 설계도면을 그리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자랐다. 건축가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초등학교 시절 미술대회 나갔다 하면 큰 상을 받아왔다. 그는 예술중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은 예체능계 진학을 완강히 반대하셨다. 일반 여중으로 입학한 후 과학 과목에 빠졌고 여고 시절엔 과학영재로 뽑혀 주말마다 별도 수업을 받기도 했다. 전교 1등을 도맡아했기 때문에 당연히 의대 진학이 꿈인 줄 알았다. 진로를 ‘조경’으로 바꾸었다. 이번엔 부모님에다 담임 선생님의 반대까지 이겨내야 했다. “조경은 도시를 총체적으로 디자인하는 종합예술입니다. 특히 사람, 나무, 땅 등 살아 있는 생명을 다루는 일이에요. 그 공간에 터 잡고 살아왔거나 살아갈 뭇 생명체들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합니다. 여러 전문 분야와 함께하는 매력 있는 고난도 예술입니다.”
그의 졸업 작품은 ‘화수·북성·만석부두 재생 프로젝트’였다. 만석부두와 백령도 등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했던 기억이 밑바탕이 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국제학생공모에 출품돼 입선을 하기도 했다.
서울대 조경학과를 나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전시기획을 공부하다 이탈리아 밀라노 공대로 유학, 전시디자인을 전공했다. 그곳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각론을 물었는데 총론이 돌아왔다. 협업하는 법과 뺄셈의 디자인. ‘메이드 인 이탈리아’의 힘은 각자의 전문성, 즉 장인 정신을 서로 인정한 협업에서 나온다. 그 과정을 거친 작품은 한 켜 한 켜 쌓아올린 역사의 큰 맥락 속에 ‘정수’를 뽑아내는 뺄셈의 디자인, 즉 장식을 줄이고 ‘진액(津液)’을 뽑아내는 연습을 오랫동안 해온 그들의 미학에서 비롯되었음을 전한다. 그는 밀라노엑스포 한국관 TF전문위원으로 3년간 활약하다, 2016년부터 인천문화재단 기획경영본부 기획홍보팀에서 일하고 있다.
취재 다음 날 쪽지 하나를 보내왔다. “강화도 동막리에 사는 함민복 시인의 시 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저는 이 말처럼 다양한 분야의 진짜를 만나 그들과 멋진 도시, 문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영화학당은 이 땅의 작은 등불이었다. 19세기 말 우리나라 최초의 초등 신교육을 시작하며 새로운 빛을 비추기 시작했다. 그날 사진 촬영은 영화학당 맨 꼭대기 뾰족 다락방에서 진행되었다. 사진가는 유영이 씨에게 편하게 구두를 벗을 것을 요구했다. 그는 서슴없이 맨발로 섰다. 작은 창에서 들어오는 빛 한줄기가 그의 몸을 환하게 비추었다. 관습과 계율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100년 전의 신여성이 오버랩되었다.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모던 인천’을 창조할, 도시 개발 분야를 계몽해야 할 신여성이 그곳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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