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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AIR’는 나의 에너지
‘ON-ARI’는 나의 에너지
조현정
사진 김보섭 │ 글 유동현
염천(炎天)이었다. 문밖으로 나서는 순간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사우나에서 막 나온 듯한 모습을 찍을 수는 없는 노릇. 결국 방송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끝내고 나오는 사진가는 뭔가 마뜩잖은 표정이었다. 시원하고 편하기는 했지만 뭔가 채워지지 않은 기분이었다. “안되겠어요. 이따 방송 끝나고 신포시장에서 봐요.” 그날 저녁 늦게 사진가의 전화를 받았다. 시장 옥상에 올라가 답동성당을 배경으로 찍었는데 맘에 든단다.
조현정(33) 씨는 그 답동성당 아래, 지금은 문을 닫은 이근수산부인과에서 탯줄을 잘랐다. 주안북초, 선화여중, 박문여고를 거친 후 인하대에서 일본어와 물류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외국 명품 가방을 취급하는 물류업체에서 일했다. ‘이게 아닌데…’ 스무일곱 살에 방송 아카데미 문을 두드렸다. 아나운서로는 너무 늦은 나이라는 수군거림이 들렸다. 중·고교 방송부 시절부터 들어왔던 ‘마이크 체질’이란 말 하나 믿고 늦깎이 도전을 했다.
생각보다 일이 빨리 들어왔다. 지역 케이블 방송에서 마이크를 잡은 후 자리를 옮겨 남구 학익동에 있는 TBN경인교통방송에서 교통 캐스터와 취재 기자로 현장을 누볐다. 일 자체가 즐거웠다. 명절 때마다 기꺼이 출동 방송을 도맡아했다. 이후 매일 정오에 하는 음악 프로그램 진행을 맡았고 지금은 오후 4시부터 2시간 동안 교통·날씨 정보, 지역 소식 등을 시시각각 전하는 ‘TBN경인매거진’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프리랜서 아나운서다. 경인교통방송 외에 다른 방송국에서 이른바 ‘몇 탕’을 더 뛴다. KBS라디오에서 토요일 오후 ‘주말생방송정보쇼’의 시사 브리핑을, CBS라디오에서 매일 새벽 6시 ‘굿모닝뉴스 박재홍입니다’의 꼭지 하나를 맡고 있다. 새벽 방송은 여간 고역이 아니다. 한밤중인 새벽 3시 30분 일어나자마자 밤사이 뉴스를 체크하며 그날 방송할 원고를 만든다. ‘생얼’에 모자를 눌러쓰고 오전 4시 제물포 집을 나서 서울 목동으로 향한다. 한겨울에는 차 안이라도 핫팩을 몇 개씩 붙여야 겨우 몸이 녹는다. 집을 나설 때는 늘 젖은 솜뭉치이지만 ‘ON-AIR’ 사인이 들어오면 신기하게도 두 눈은 초롱초롱, 목소리는 또랑또랑 모드로 급전환한다. 새벽 마이크를 통해 그날 하루 종일 쓸 에너지를 얻는다.
모든 일상은 철저하게 방송에 맞춰져 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생선회를 좋아하지만 주중에는 절대 먹지 않는다. 혹시 탈이 나 방송에 지장을 줄까봐 자제한다. 한번은 부친이 생굴을 사온 적이 있어 온 식구가 둘러앉았다. 쳐다보지도 않는 딸에게 한 점만이라도 먹으라고 강권했지만 그는 매몰차게 입에 대지도 않았다. 다음 날 식구들은 노로바이러스에 감염돼 번갈아가며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지금 생각해도 속이 울렁거리는 아찔한 순간이다.
특성상 교통방송 진행자는 ‘연조’가 좀 있어야 한다고들 한다. 주 청취자인 운전기사들과 말이 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나이에 비해 인천의 ‘과거’를 많이 꿰차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내 고장 탐구사례 발표대회’에 참가하는 등 유난히 지역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다. 그 덕분에 생방송 중 들어오는 청취자의 다양한 문자에 대해 ‘척’하면 ‘착’이다. 일주일 내내 경인고속도로를 오가며 이 방송국 저 방송국을 누비고 있지만 그는 경인교통방송에 가장 최적화돼 있는 ‘인천 아나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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