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 보기
살아 있는 언어로, 덧칠하고 싶은 강화
살아 있는 언어로,
덧칠하고 싶은 강화
글 노희정 시인, 육필문학관장
“강화도는 / 내 어머니의 젖 냄새가 풍기고 / 과거 역사의 핏물이 흐르고 / 현재 번영의 기운이 흐르고 / 미래 정신적 문화의 물결이 넘칠 것이니이다 / 삶에 지쳐 있을 때 강화도로 오시겨 / 그대의 지친 가슴 촉촉이 젖을 것이니이다.”
이 글은 필자가 2008년도에 출간한 ‘강화도’ 시집의 서문이다. 강화에 육필문학관을 계획하고 현실화한 지 내년이면 20년이 된다. 1999년에 육필문학관 부지를 계약했을 때 지금은 아스팔트가 깔린 논두렁길이 모두 흙길이었다. 5년에 걸쳐 문학관을 짓고 2004년 5월에 개관했다. 비가 오면 문학관 방문객들은 강화 땅을 밟은 대가로 흙투성이 자동차를 세차해야 했다. 요즘 들어 그 질퍽한 흙길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처음 육필문학관을 지었을 때 많은 지인들이 내기를 했다고 한다. 인적 드문 강화도 산자락에 문학관을 지어 얼마나 버틸 것인가를 놓고 말이다.
강화도 불은면에 외갓집이 있었다. 어려서 엄마 손을 잡고 대명리 포구에서 통통배를 타고 광성보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 외갓집에 다녔다. 어릴 적 추억이 묻어 있는 강화에 육필문학관을 지은 것이다. 내가 이승을 떠나도 나의 아이들과 또 그의 후손이 육필문학관을 지킬 것이다. 나의 외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내가 강화를 지켰듯이.
나는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역사적인 이 땅에 문학이라는 뿌리 하나를 내리고 싶었다. 오랜 세월 동안 동시를 가르쳐온 시인으로서의 책임감도 한몫을 했다. 문인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친필을 받아 전시하고 누구든 육필문학관을 방문하면 문학을 함께 공유하고 싶었다. 그런 꿈은 이루어졌고 30년 동안 준비한 결과 지금은 300여 점의 친필을 보유하고 있다. 봄, 가을이면 전국에서 문학인들이 찾아온다. 요즘은 일반인도 방문해 시를 읽으며 추억과 순수한 감성을 되찾는다. 육필문학관은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예약하지 않고 왔다가 아쉬운 마음을 안고 되돌아갈 독자들을 위해 문학관 입구와 잔디밭에 이재호 시인의 ‘다시 한강을 생각하며’ 외에 여덟 개의 문학비를 세워놓았다. 문학관을 방문한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어서이다.
육필문학관을 방문한 분들에게 나는 가끔 자작시 ‘천지송’을 강화도 사투리로 낭독해 준다.
“다산을 위해 태어난 목숨이올시이다 / 이백년의 세월 속에 강화도의 모진 풍파 먹고 살았시다. …중략…”
강화도 사투리로 쓴 시를 들으며 강화의 숨결을 느끼게 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나에겐 소망 하나가 또 있다. 강화에 있는 관공서, 사무실부터 시작해 여백이 있는 곳 어디에나 시화 액자 하나 정도는 걸려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요즘 그 소원이 하나씩 이루어지고 있다. 강화군청 민원실에 가면 ‘강화여 빛나라’라는 필자의 시가 기둥에 걸려 있다. 지난 해 생긴 강화중앙시장 청년몰 ‘개벽2333’엔 나의 시 ‘개벽2333의 부활’이, 육필문학관 소재지인 선원면사무소에는 나의 시 ‘선원면 연가’가 민원실 벽에 걸려 있다.
시는 아름다운 가슴으로 느낀 것을 간결하고 고귀한 상징으로 만들어낸 언어의 집이다. 좋은 시를 읽으면 누구나 감동을 받는다. 광화문 앞 교보문고 건물 외벽에도, 서울시청 건물에도 짧은 시들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자동차를 타고 스치듯 지나가면서 읽어도 가슴이 뭉클하다.
강화도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다. 요소요소마다 역사의 흔적이 산재해 있고 그 역사를 발판으로 문화가 별빛처럼 살아 숨 쉬고 있다. 몇 세기를 넘어 갯벌에 게들이 구멍을 뚫고 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지붕 없는 박물관 강화에 나는 시를 통해 또 하나의 문화를 창조하고 싶다. 강화 어느 곳이든 시를 걸어놓고 시를 새겨놓아 누구나 시를 쉽게 접하게 하고 싶다. 염하가 흐르는 강화대교 난간에도, 용진진, 화도돈대, 오두돈대, 광성보에도 시의 깃발을 날리고 싶다. 문학인의 빛나는 숨결이 살아 있는 언어로 덧칠한 강화를 만들고 싶다.
내 가슴에 새긴 한 구절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의 ‘서시’ 전문
윤동주의 ‘서시’는 나를 문학의 길로 이끌어준 시이다. 중학교 때 이 시를 접하고부터 수시로 하늘을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샛별처럼 독보적이지는 않지만 순수하게 빛나는 별처럼 살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 노력했다. 육필문학관은 그런 나의 노력과 열망의 결정체인 셈이다.
- 첨부파일
-
- 이전글
- 남동구 간석동 향나무
- 다음글
- 브랜드, 어둠 속에 빛을 주다
인천광역시 아이디나 소셜 계정을 이용하여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
전체 댓글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