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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옛 시장에 살다
오늘,
옛 시장에살다
속도가 앗아간 풍경을 붙잡고 있는 고마운 동네. 이곳이 생명력을 잃지 않도록,
새 숨을 불어넣고 온기를 퍼트리는 이들은 누구일까. 또 어떤 생각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까. 옛 재래시장에 숨은 보물창고 같은 ‘숭의평화창작공간’.
오늘 이 안에서, 세상과는 조금 다른 속도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났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장│사진 류창현 포토디렉터
Interview
1. 하는 일은?
2. 숭의평화시장에 온 이유
3. 원도심에 대한 생각
4. 추천, 인천의 원도심 명소
5. 인천의 발전에 필요한 지역 문화는?
6. 당신에게 인천이란?
A: 꽤 괜찮은 동네, 인천
임양천(45) 리사이클 작가, 수집가
1. 지금은 쉬고 있다. 당장은 특별한 계획 없이 ‘그냥’ 지낸다. 하지만 이 공간에 있으면 해야 할 일이 절로 생긴다.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는 일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만들어진다.
2. 언젠가 가고 싶은 목공방이 있어 검색해서 찾아왔는데, 내비게이션이 이곳으로 잘못 안내했다. 그런데 보는 순간 반해버렸다.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곳에서 도자기 공예를 배우면서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다, 아예 집을 사서 들어왔다.
3. 경쟁하는 삶이 싫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맘 편히 살고 싶었다. 원도심은 그런 내 생각과 딱 맞아떨어진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쓰레기가 가득 찬 폐허를 손보는 일이 막막했다. 하지만 정신 차리고 치우다 보니 번듯한 공간이 나왔다. 19m²(6평)면 살아가기 충분하다.
4. 우각로문화마을에 일주일에 두서너 번 간다. 2년을 다녔는데도 아직 그 길이 즐겁다. 길을 가다 보면 사잇길이 나오고,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막히고, 그러다 다시 연결되고… 좁은 골목에서 아이들이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것 같은 정겨운 동네다.
5. 가깝게 숭의평화창작공간이 생기고 사람들이 모일 수 있어서 감사하다. 어제는 미술 체험을 했는데, 동네 사람뿐 아니라 지나가던 사람들도 관심을 보였다. 저변 확대를 위해 무료나 저렴한 비용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어느 정도 열매를 맺으면 정당한 대가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생적인 문화 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
6.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인천으로 왔다. 처음에는 서울에서 멀지도 않은데 ‘이 동네는 왜 유행에 뒤처지고 촌스러울까’ 싶었다. 지금은 좋다. 인천은 언제든 배낭 메고 떠날 수 있는 바다와 섬이 있고, 발길 닿는 곳마다 유서 깊은 역사가 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꽤 괜찮은 동네구나’ 싶다.
A: ‘주인공’이 되는 도시
박준석(33) 숭의평화창작공간 미술감독
1.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는 영역에 갇히지 않고, 예술 활동을 폭넓게 하고 있다. 옵티컬 아트(Optical Art)를 중심으로 그림, 조형물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만든다.
2. 문득 생각해 보니, 인천 사람인데도 정작 인천에서 활동하지 않았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알리고 싶었다. 공간적인 매력도 느꼈다. 작가와 예술·문화 단체 등이 ‘창작’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어우러져 ‘다가가는 예술’을 할 수 있어서 좋다.
3. 도시가 낙후되면,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생각에 떠나는 사람이 많다. 과거의 뒤안길에 머무르지 말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야 한다. 다양한 사람이 모여 새로 태어난 이곳처럼, 원도심이 살아나면 좋겠다.
4. 머리를 맑게 하고 싶을 때면, 수봉산에 있는 수봉공원으로 간다. 산 정상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면 마당 있는 집들이 옹기종기 정겹게 펼쳐진다. 노을이 질 때면, 더욱 운치 있다.
5. 내항 8부두에 있는 창고에 대기업이 문화 콘텐츠 시설을 만든다고 한다. 과연 주민이 원하는 것일까, 생각해 봐야 한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자생적으로 만드는 공간과 문화라야 그 의미가 있다. 건물이 원래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되살려 새 역사를 이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나온 시간이 한순간에 무의미해질 수 있다.
6. ‘주인공’이 되는 도시다. 많은 작가들이 서울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인천은 제2의 무대라고 생각한다. 이 안에선 주 무대에서 시도하지 못하던 것에 도전하고 자양분으로 삼을 수 있다. 또한 인천은 해야 할 일이 무궁무진하다. 비어 있는 곳을 채우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는 즐거움이 있다.
A: 나날이 새로워지는 원도심
김진미(31) 다:락(樂) 대표
1. ‘다:락(樂)’은 다락방과 다양한 즐거움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 어릴 때부터 손으로 무언가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그 특기를 살려, 캘리그래피, 베이킹, 클레이 등 다양한 클래스를 운영하고 있다.
2. 무엇을 하는 공간일까, 궁금했다. 한때 사람들로 북적이던 재래시장이었는데, 지금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이곳에 와서 작가들과 단체로부터 여러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에너지 넘치고 재미있는 공간이다.
3. 결혼하면서 도화동으로 왔다. 한때 사람들로 들끓었지만 지금은 조용해진 동네. 하지만 그 안에도 서서히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나날이 새로워지는 원도심을 알리고 싶다.
4. 어린 시절, 언니들과 배다리에 자주 갔다. 그때는 길 양쪽으로 수를 헤아리기 힘들 만큼 책방이 들어서 있었다. 그 길을 따라 걸으면 종이 냄새가 기분 좋게 코끝에 스몄다.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고, 책방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안타깝다.
5. 인천시는 인천의 문화공간을 시민 중심으로 꾸미는 ‘천 개의 문화 오아시스’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나 역시 참여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이러한 지원 사업이 활성화돼야 지역 문화가 산다. 민관이 같이 움직여야, 시민이 좀 더 깊이 있는 문화예술 혜택을 누릴 수 있다.
6. 벗어날 수 없는 도시다. 공장지대가 있는 서구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을 보냈다. 한동안 인천을 떠나 다른 도시에 사는 걸 고민한 적도 있다. 하지만 떠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동안 해온 게 많고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이 많다.
A: 주민과 즐기는 문화예술
김경원(44) 문화바람 대표
1. 시민문화공동체 ‘문화바람’은 ‘생활문화 운동으로 시민과 연대해 평화롭고 민주적인 사회를 만든다’라는 당찬 포부를 안고 2005년 창립했다. 그동안 인천의 낙후된 문화예술 환경을 개선하고 시민 중심의 생활문화예술을 확산시켜 왔다.
2. 특별히 ‘원도심을 살리겠다’는 큰 뜻을 품고 찾은 건 아니다. 마침 사무실 임대 기간이 끝나가면서 머물 공간을 찾고 있었다. 우리는 회원들이 내는 후원금으로 운영하는 단체다. 사용료가 무료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막상 와보니 지역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3. 원도심이라고 해서 신도시와 다를 건 없다. 사람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건 어디든 같다. 전에 부평과 남동구에 있을 때나 지금이나 동네 분들과 잘 지내고 있다. 마음은 다가갈 수록 가까워지기 마련이다.
4. 미추홀구에서 조성하는 구민예술촌(Art-belt)에 관심을 둘 만하다. 우각로문화마을과 숭의목공예마을, 숭의평화시장을 엮어서 예술촌으로 만드는 사업이다. 이 일대에 가면 목공예마을 안쪽으로 들어가 보길 권한다. 걷다 보면 동네 어르신들이 가꿔놓은 꽃밭도 있고 텃밭도 나온다. 동네가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5. 인천의 문화 수준이 전보다 높아졌다. 전엔 좋은 공연을 보려면 서울 대학로까지 가야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우리부터 ‘오 당신이 잠든 사이’처럼 좋은 공연을 인천에 선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시에서도 ‘천 개의 문화 오아시스’같은 문화지원 사업을 지속적으로 펼쳐, 시민이 생활 속에서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게 해야 한다.
6. 인천에서 태어나, 학교에 다니고 직장도 다니면서 나이 들어가고 있다. 다른 도시는 낯설고 정신없어서 싫다. 살아온 만큼 정이 들어서, 누가 인천 이야기라도 하면 옆에서 좋은 방향으로 거들게 된다. 인천이 잘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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