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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가 된 약국집 막내딸

2018-11-09 2018년 11월호




화가가 된 약국집 막내딸


고제민
 
사진 김보섭 │ 글 유동현


 
 
‘엄마가 된 바다’. 지난해 이맘때 책(화집) 한 권을 건네받고 제목을 되뇌었다. 영어 ‘Mother’와 바다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Il Mare(일마레)’는 어원이 같다고 한다. 거칠게 붉고 푸른 색조의 바다로 꽉 찬 화집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엄마’를 곧 알아챘다. ‘엄마’는 화가 자신이었다. 그는 오랜 시간 뭍에서 서성이다가 어느 순간 바다로 돌아왔다. 아니 그 자신이 바다가 되었다.
화가 고제민(58)을 만나러 동구 금곡동에 있는 영화관광경영고등학교에 들어섰다. 그는 이 학교 미술 선생님이다. 본관 3층에 있는 미술실에서 차 한잔을 마셨다. 물감통, 팔레트, 크고 작은 붓들이 커다란 책상 위에 가득했다.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틈틈이 이 공간에서 자신의 작품을 구상하고 캔버스에 색을 입힌다.
일주일 전 그는 학생들과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학생들과 함께한 마지막 여행이다. 그는 내년 2월 명퇴할 예정이다. 본격적으로 전업 작가로 나서기로 맘먹었다. 2년 전 학교 밖 중구 개항장 부근에 개인 작업실을 마련해 놓기도 했다. “영화학교 귀신이 되기 전에 나가야죠.”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로 이 학교에 부임해 35년을 근무했다. 운동장을 함께 쓰는 영화초등학교를 졸업했으니 도합 41년을 ‘영화’의 울타리에 있었다.
그는 약국집 막내딸이었다. 남구 숭의동 403번지 독갑다리 경인약국 육 남매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인천 최초의 도매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였다. 아버지는 금융업 관련 일을 했다. 금수저는 아니더라도 작은 은수저 하나는 물고 태어났다. 그 시절 여유 있는 집안의 자식 중 한 명은 ‘예술’을 하기 마련이었다. 약국집 막내딸은 그림 그리기를 택했다. 옆집 목욕탕 2층에 당시 인천에서 유일한 화실이 있었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젊은이들이 드나들던 아지트였다. 어린 고제민은 자연스럽게 24색 크레파스를 손에 쥐었고 그림 붓을 들었다.
본격적으로 미술 공부를 하기 위해 서울로 유학을 갔다. 서울예고와 덕성여대를 졸업했다. 교단에 서서도 자신의 붓을 놓지 않고 틈틈이 소품이라도 그렸다. 2011년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첫 개인전 ‘색을 벗다’를 열었다. 거친 붓칠로 누드를 표현해 눈길을 끌었다. “인체를 그리는 일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벗기 위한 작업입니다.” 이때부터 작가 정신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겉치레를 벗어내면서 인천이 본격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7년 동안 인천의 골목, 포구 등을 소재로 한 그림을 무려 150점가량 그렸다. 그는 그림을 가둬놓지 않았다. 지역 매체에 적극적으로 게재했다. 그 덕에 ‘인천을 그리는 작가’라는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
휴대전화에 내년도 계획이 빼곡하다. 그중 내년 2월, ‘잇다 스페이스 갤러리’에서 청년작가의 작품을 선보이는 ‘영아트페스티벌’이 눈에 띈다. 그는 이 전시회를 총괄 기획한다. 그동안 그림을 그리는 데만 힘을 쏟았다. 교사의 짐을 벗은 후에는 기획자로서도 실력을 발휘하고 싶다.
인터뷰를 마치고 미술실을 나서다 한쪽의 칸막이 안을 슬쩍 보게 되었다. 비닐 포장지에 싼 표구 그림들이 겹겹이 세워져 있다. “저거 다 시집보내야 하는데…” 그동안 그는 그림을 그리기만했지 적극적으로 팔지는 않았다. 이제 전업 작가로서 전시장에서 누군가 자신의 작품에 딱지를 붙여 ‘찜’하는 행복을 느끼고 싶다.
화집 제목 ‘엄마가 된 바다’는 영문으로 ‘Sea of Old Lady’로 번역되었다. 육십을 바라보는 ‘올드 레이디’ 고제민은 소녀의 눈동자를 가졌다. 앞으로 그 눈에 어떤 인천이 담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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