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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뿌리, 인천 음악클럽의 부활

2018-11-09 2018년 11월호


 
K팝 뿌리,

인천 음악클럽의 부활

 
글 김진국 본지 총괄편집국장


 
그리울 때면 그곳으로 갔다. 사람인지, 계절인지, 아니면 도달하고 싶은 이상향인지 형체가 불분명한 그 알 수 없는 그리움이 밀려오면 발걸음을 옮겼다. 환호성을 지르고 싶을 만큼 행복한 순간에도 찾아갔고, 반주를 겸한 저녁식사 뒤엔 정해진 코스처럼 들르기도 했다.
‘투-둑, 지지-직’ 먼지 튀는 소리가 섞인 LP판 음악과 하얀 거품이 얹혀진 맥주, 다크브라운의 실내가 전부였지만 문 하나를 경계로 카페 안팎은 마치 천국과 지옥만큼이나 선명하게 구분돼 있었다. 고단한 세상으로부터의 해방. ‘흐르는 물’이란 이름처럼, 그곳엔 늘 강물처럼 음악이 흘렀고 밤하늘에 흩뿌려진 은하수의 별들만큼이나 무수한 사연이 밤늦도록 오고 갔다. 가로수 나뭇잎들이 황갈색으로 변해가던 지난 10월 중순, 신포동의 음악 클럽 ‘흐르는 물’이 ‘30주년 초청 콘서트’를 진행했다. 인천시민들과 음악으로 교감해 온 30년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흐르는 물’과 함께 ‘버텀라인’(Since 1983), ‘탄트라’(Since 1979) 같은 신포동 음악 클럽의 역사는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전쟁 이후 숭의동에 다국적군이 주둔하면서 인근 신포동 일대엔 이들을 고객으로 한 상권이 형성된다. ‘인천’이란 낯선 땅에 머물게 된 군인들의 낙이라면 고향의 음악을 들으며 술잔을 기울이는 것이었다. 맨드라미, 들국화가 어우러진 가을의 들녘처럼 신포동엔 포크, 컨트리, 재즈, 블루스, 소울과 같은 서양음악 연주 클럽들이 하나둘 피어난다.
외국인들에겐 그저 쉬는 공간이었으나 가난한 우리나라 청년들에겐 자아실현과 밥벌이를 동시에 이룰 수 있는 꿈의 무대였다. 동산중 2학년 때부터 미군에게 기타를 배워 훗날 ‘키보이스’란 우리나라 1세대 밴드를 결성한 김홍탁, ‘데블스’란 그룹을 이끈 김명길, ‘애드훠’의 김대환, ‘사랑과 평화’의 이철호와 같은 인천 출신 뮤지션들이 음악 클럽에서 시작해 이름을 날린 대표적 사례다. 이후 소리새, 구창모와 같은 인천 출신 가수들이 바통을 이어받으며 인천은 우리나라 대중음악사의 중요한 시대를 끌어 나간다. 1945년 광복 이전까지만 해도 일본 엔카(演歌)의 영향을 받은 트로트가 대세였던 우리 대중음악이 서양 문화의 색깔을 입으며 도약한 시기가 이때이다.
한국 대중음악이 외래 음악을 무분별하게 흡수한 건 물론 아니다. 신흥초 시절, 신포동 클럽 음악을 귀동냥으로 들으며 가수의 꿈을 키운 송창식이 서양음악에 국악을 접목한 독창적 영역을 구축한 것처럼 우리 대중음악은 한국 정서를 버무린 새로운 음악 세계를 빚어낸다.
1990년대 가요 혁명을 일으킨 ‘서태지와 아이들’을 거쳐 지금의 ‘방탄소년단’, ‘싸이’와 같은 K팝 스타의 등장은 그 맹아를 인천이 싹틔웠기에 가능한 결실이었다. 인천을 ‘음악 도시’라 주창하는 이유는 이처럼 신포동과 함께 주한미군 지원사령부 애스캄(ASCOM)이 있던 부평 신촌·삼릉에서 활약한 수십 개의 음악 클럽들이 우리나라 대중음악사에 굵은 획을 그었기 때문이다. 불야성을 이루던 클럽들은 1970년대 미군이 철수하면서 ‘시멘스’(Seamen’s) 같은 외항선원 전용 클럽으로 변신하거나 문을 닫는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지난해 4월 인천에선 ‘인천대중음악전문공연장협회’가 출범한다. 한국 대중음악의 산실이던 인천 음악 클럽의 재건을 선언하는 사건이었다. 락캠프, 버텀라인, 흐르는 물, 쥐똥나무, 공감, 뮤즈 등 6개 클럽은 현재 인천 전역에 혈관처럼 퍼져 재즈, 포크, 메탈 등 다양한 장르로 인천 음악 클럽의 맥을 잇는 중이다.
이들 음악 클럽들은 인천시가 매년 개최하는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잉크콘서트’, ‘월드 클럽 돔 코리아’ 같은 시민 음악축제와 더불어 인천 문화를 살찌우고 있다. 서로 다른 빛깔의 남녀가 만나 부부란 이름으로 은은하게 채색되어 가는 것처럼, 민·관이 앙상블을 이루며 크고 작은 무대가 공존하는 음악 도시 인천, ‘살고 싶은 도시’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버거운 삶을 위무하고 세상으로 나아갈 용기를 주며 사랑을 키워주는 존재 음악.
가을비라도 내리면, 음악 클럽에 가서 ‘저스트 웬 아이 니디드 유 모스트’(Just when I needed you most)를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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