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 보기
인천 인구 300만, <굿모닝인천> 300호
인천 인구 300만,
<굿모닝인천> 300호
글 김진국 본지 총괄편집국장
‘인천공보를 간행함은 시행정의 내용을 공표하고 전달하는 한편 시민들의 중성(여론)과 여망을 취급할 것은 물론이요, 시의회의 의사의 기록과 의원 제씨의 활동상황이며 그들의 의견을 발표하여 시민제위가 잘 알도록 할 것이며, 시를 운영하는 공무원들의 상호간의 지식을 계몽하고 친목을 도모하여 사무의 능률을 향상시키고자 함에도 또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仁川公報> 1호, 1953년 1월 10일자 1면)
한국전쟁 중이던 1953년 1월, 인천시는 <인천공보>란 인쇄 매체를 창간한다. 타블로이드 판형 4페이지로 제작한 광복 이후 최초의 ‘인천 시정 소식지’였다. 표양문 인천시장을 발행인으로, 최병환 부시장을 편집인으로 각각 내세운 주간지 <인천공보>는 시정 소식지 그 이상의 것이었다. 정치·경제·사회 뉴스는 물론이고 칼럼, 시·콩트 등 문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뤘다. 당시 편집에 참여했던 김양수(85) 문학평론가는 “난리(한국전쟁)통에 정보에 주린 시민들과 소통하고 대변하는 언론의 역할을 했다”고 회상했다. <개항과 양관역정>의 저자 최성연 선생이 편집책임자로 앉으면서 그는 인천시립박물관 초대관장을 지낸 석남 이경성 선생과 함께 <인천공보>를 제작했다.
‘미 장병들, 고아 위한 성탄 파티’(1953. 1. 17.), ‘저울질 속여 먹던 악질 상인 5명 적발’(1953. 8. 12.), ‘쥐잡이 시행, 인천에서 10만 마리 잡아’(1955. 6. 13.), ‘배다리에 공동변소 설치’(1956. 12. 21.) 등 <인천공보>에선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뉴스들이 눈에 띈다.
1954년 11월 27일 판형을 블랭킷판으로 전환, 시민들과 소통하던 <인천공보>는 1961년 5·16군사쿠데타가 일어나며 <재건인천>으로 이름을 바꾼다. 이후 <약진인천>·<약동하는 도시 인천>(1962), <시보>(1970), <월간시정>(1989)으로 개제하며 발행하던 이 시정 홍보 매체가 한 단계 도약한 시기는 1994년 1월이다. 신문 형태에서 <내고장인천>이란 제호의 ‘잡지’로 바꾸고 콘텐츠를 확장한 것이다. 이때 6,000부를 제작해 반상회를 중심으로 배포하던 부수도 1만5,000부로 늘려 공공장소에 배포하기 시작한다. <굿모닝인천>이란 싱싱하고 발랄한 제호를 갖게 된 때는 2001년 3월이다. 그렇게 17여 년간 인천 시민들에게 반가운 아침인사를 드린 <굿모닝인천>이 300호를 맞았다. 잡지의 역사는 25년이지만 인천시정 홍보매체의 역사는 65년을 강물처럼 도도하게 흘러왔다.
<인천공보>가 탄생한 시기는 인천의 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하던 때와 궤를 같이한다. 한국전쟁 전후, 피란민을 비롯해 인천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가난하던 시절, 군수·원조 물자가 모이는 인천항엔 ‘먹을 것’이 있었고, 전쟁이 끝나고 통일이 되면 고향으로 돌아가기에도 가까운 도시가 인천이었다.
본격적인 산업화시대에 접어들며 1960년대부터 조성된 인천의 산업공단은 더 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서해안에 접한 충청, 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의 사람들이 인천으로 올라와 토박이들과 어우러져 살았고, 자식들을 인천 토박이로 낳고 길렀다. 지금의 인천은 어떠한가. 국제도시에 정착하는 외국인과 북한이탈주민, 외국인 노동자들과 같은 새로운 사람들을 끌어안으며, 늘 그랬듯 해불양수의 도시, 포용의 도시, 국제도시로 비상하는 중이다. 1883년 개항 전 ‘1개의 초라한 어촌과 15개의 오두막’(G.N. 커즌)의 한적한 바닷가 마을이 인구 300만 명이 더불어 사는 대도시로 성장한 것은 인천이 ‘살기 좋은 도시’라는 방증이다. 도시나 가정이나 사람들이 북적대면 좋은 공간이고, 길한 곳이다.
300호를 맞은 <굿모닝인천>은 시와 시민 간, 시민과 시민 간 ‘격의 없는 소통과 공감’을 꿈꾸며 301호를 준비하는 중이다. 65년 전 <인천공보>가 그랬듯이 생생한 인천 역사를 기록하고 인천의 문화를 발굴, 확장하는 것도 <굿모닝인천>의 몫일 터이다. 300만 인천특별시민과 손잡고 ‘살고 싶은 도시, 함께 만드는 인천’을 향하여 <굿모닝인천>이 간다.
- 첨부파일
-
- 이전글
- 생 소성주
- 다음글
- 남동구 구월동 회화나무
인천광역시 아이디나 소셜 계정을 이용하여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
전체 댓글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