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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로 슈퍼그래픽 완성한 슈퍼맨들
사일로 슈퍼그래픽 완성한 슈퍼맨들
지난해 인천 내항에 축구장 4개 크기의 벽화가 등장했다. 항만으로 들어오는 수입 곡물을 저장하는 ‘사일로’에 그려진 벽화는 거대한 규모 덕분에 세계 최대 야외 벽화로 기네스 기록을 인증 받았다. 새로운 기록 뒤에는 늘 사람들이 존재한다. 어려움을 무릅 쓰고 조용히 자신의 자리에서 세계 신기록을 만들어낸 사람들을 만났다.
글 김윤경 본지 편집위원│사진 김성환 포토저널리스트, 인천디자인지원센터
‘세계에서 가장 큰 야외벽화’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사일로
흉물에서 명물로 바뀐 ‘사일로’
40년 전에 지어진 칙칙하고 낡은, 인천 내항의 곡물창고 ‘사일로’. 지난해 봄 연두색 외벽의 사일로에 흰색 페인트가 덧발라지더니, 마치 여러 권의 책이 꽂혀있는 듯 화려한 색채의 디자인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소년이 책과 곡식을 통해 어른으로 성장하는 모습이 생생히 담긴 그림은 멀리서도 단박에 알아챌 만큼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그동안 거대한 규모와 투박한 외관 탓에 위험시설이라는 오해를 받았던 ‘사일로’가 슈퍼 그래픽으로 완전히 탈바꿈한 순간이었다. 둘레 525m, 높이 48m, 외벽 면적 25,000m2의 사일로에 슈퍼 그래픽을 그려내는 데만 약 100일이 소요됐으며, 투입된 벽화 전문 인력 총 22명, 사용된 페인트 양이 86만 5,400ℓ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대단했다. 인천시와 인천항만공사, (재)인천경제산업정보테크노파크(이하 IBITP), ㈜한국TBT가 협업으로 이뤄낸 기적 같은 결과는 어려움을 이겨내고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공사 기간과 안전 걱정에 기네스북 실감도 안 났어요.”
“기네스 기록을 인정받았다는 소식에도 실감이 안 났어요. 그간의 어려움을 딛고 아무 사고 없이 인천의 기술력으로 사일로 슈퍼 그래픽을 완성했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시공 감독으로 참여했던 양종원(40) 대성시스템 대표는 촉박한 공사 기간과 작업자의 안전 걱정에 몸무게가 7kg이나 빠졌었다고. “48m 높이의 사일로는 아파트 22층과 맞먹어요. 더군다나 해안가라 바람이 강해서 스카이크레인을 타고 사일로에 올라가면 장비가 휘청할 정도였어요. 벽화 그리는 화공분들이 배 타는 것 같다고 표현할 정도였으니 무엇보다 안전이 최우선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IBITP의 인천디자인지원센터에 지원을 요청했다. 작업 상황, 스케치 현황, 색감, 바람의 강도 등을 수시로 체크해야 하는데, 혼자서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인천디자인지원센터 담당자들이 아예 사일로 현장에 임시 사무실을 차리고 도와주시더라고요. 많은 분들과의 소통과 협업 덕분에 어려운 일들이 무사히 진행됐습니다.” 뿐만 아니라 휴대용 풍속계를 구입해 매순간 바람의 강도를 측정했다. “지상에서 풍속이 심하다 싶으면 호루라기를 불어서 일시적으로 모든 작업을 중지시켰어요. 하부에서 ‘후~’하고 바람이 불면 상부는 ‘출~렁’거리거든요.”
또 곡물을 보관하는 사일로는 숨을 쉬어야 하기 때문에 모든 도료는 수성페인트로만 사용됐는데, 사일로의 외벽 면이 반듯하지 않아 그림을 그리고 색을 입히는 과정도 녹록지 않았다. “스케치 작업도 힘들었어요. 특히, 사일로 곡선 부분의 그림이 대칭일 경우에는 정말 어려웠죠. 바둑판처럼 세세하게 그리드(Grid)를 그려서 하나하나 코드를 입력하고 그 코드를 맞춰 그려나갔는데도 워낙 규모가 크니까 힘들었습니다.”
모든 작업이 무사히 끝나고, 인천에 새로운 명물이 만들어진 것 같아 뿌듯하다는 양 대표는 사람들과의 협업에 감동과 더불어 자랑스러움까지 느끼게 됐다고 말한다.
아파트 22층 높이의 사일로에서의 작업은 거센 바닷가 바람때문에 안전이 가장 신경쓰였다.
“작업의 어려움도 지금은 따뜻한 기억으로만 남네요.”
“일단 높은 곳에서 작업해야 하니까 고소공포증이 없어야 했어요. 그림 실력은 기본이고, 공사 기간이 정해져 있어서 작업 속도가 빠른 사람 위주로 팀을 구성했습니다. 나름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을 모았죠.” 현장에서 모든 화공들을 진두지휘 했던 신종철(57) 화공반장은 이번 작업에 참여했던 전문 화공들을 모두 직접 섭외했다.
신 반장은 처음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스카이크레인 한 대를 불러 작업속도 테스트를 진행했다. 이틀간 테스트를 통해 공사 기간을 계산해보니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때부터는 거의 전쟁이었죠. 하루 작업자를 몇 명 투입할지, 장비를 얼마나 동원할지….” 책임감이 요구되는 부분이라 어느 하나도 허투루 할 수 없었다. 역시 바람이 문제였다. 사고 없이 잘 마칠 수 있어 다행이지만, 작업 내내 안전벨트 고리를 확인하고, 추락이나 기타 안전사고에 다들 예민했었다고 한다.
“사일로 벽화를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디자인 자체가 무척 세밀하고 섬세해요. 대칭되는 문양과 글씨도 많고, 그림에 명함도 넣어야 해서 작업을 아주 신중하게 해야 했습니다.” 그림의 그러데이션과 명함 표현을 위해 채색은 스프레이가 아닌, 오로지 롤러와 붓으로만 진행했다. 많은 사람들의 섬세한 손길이 닿은 사일로는 어느새 인천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변신했다.
“월미산에서 사일로 보이죠?” 사일로 작업 시 월미도에서 숙박했는데, 퇴근하고 나면 월미산 산책로를 한 바퀴 걸었다는 신 반장. 작업 때문에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지만, 월미산에 올랐던 기억이 무척이나 따뜻하게 남는다고.
사일로 시공감독을 담당한 양종원 대표
벽화 디자인은 어린 소년이 책 안으로 물과 밀을 가지고 저장고 안으로 들어갔다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성장 과정을 의미하는 문구가 16권의 책 제목으로 디자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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