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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혼밥’ 한 그릇

2019-02-07 2019년 2월호



길 위의, ‘혼밥’ 한 그릇
 
기사식당, 길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배고픔과 고단함을 달래는 곳. 안마, 세차 등 그들만의 ‘우대’ 서비스가 있던 시절도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식당의 풍경도 바뀌어, 이제 삼삼오오 모여 정겹게 식사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가족을 위해 ‘혼밥(혼자 먹는 밥)’ 하는 우리 아버지들이 있다.
글 정경숙 굿모닝인천 편집장│사진 류창현 포토디렉터
 

 




때론 뜨끈한 밥 한 그릇이,
오늘도 열심히 살아갈 힘을 준다.

 
24시간 열린 식당
택시 기사가 분주한 도심 한가운데를 달려 기사식당에 들어선다. 해가 중천에 걸리고 나서야 겨우 먹는 첫 끼. 뜨끈한 밥 한 그릇이 오늘도 살아갈 힘을 준다.
부평구 십정동 십정사거리 근처에 있는 ‘까치기사식당’은 간판을 내건 지 30여 년 됐다. 이 일대는 일명 십정동 기사식당 촌으로 불렸다. 택시 기사는 물론이고 수인산업도로를 따라 인천과 수원을 오가는 대형 화물차 기사들이 자주 찾았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기사식당이 10여 곳 넘게 몰려 있었다.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이곳 하나만 남았다.
정경래(50) 씨는 어머니 한재숙(78) 어르신과 함께 20년째 식당을 꾸려가고 있다. 외삼촌이 운영하던 9㎡ 남짓한 작은 가게를 물려받아 145㎡ 2층 규모로 키웠다. 그동안 수많은 기사들이 이 안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랬다. 24시간 교대로 근무하는 기사들을 위해, 기사식당의 문도 24시간 열어놓았다.
어머니는 거리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 영양가 높은 굴로 음식을 만들었다. 기사들에게 시간은 곧 돈이다. 요리 시간이 오래 걸리는 뚝배기 대신 철판에 볶아내는 요리법을 개발했다. 칼칼하게 입안에 착 감기는 감칠맛도 그만이다. 그 맛이 그리워, 이미 오래전 운전대를 놓은 사람들도 여전히 이 집을 드나든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한 끼를 위해,
어머니는 오늘도 어제처럼 묵묵히 밥 짓고
음식을 만든다.

 
휴게소이자 사랑방
기사에게 기사식당은 단순히 밥집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들에게 이곳은 몇 시간 거리를 달려온 지친 몸을 뉘는 휴게소이자 동료들과 어울리는 사랑방이다. 15년 전에는 이 식당 한편에 운전대를 놓고 잠시 눈을 붙일 수 있는 온돌방이 있었다. 피로를 풀어주는 안마기가 있고 세차를 해주기도 했다. 지금 기사들을 위한 ‘우대’ 서비스는 밥을 듬뿍 퍼주고 식사 값을 깎아주는 정도다.
식당의 풍경도 많이 바뀌었다. 혼자 오는 사람보다 삼삼오오 모여 정겹게 식사하는 사람이 더 많다. 맛집을 속속들이 꿰고 있는 기사들에게 인정받은 식당이라고 소문나면서 일반 손님의 발걸음도 늘었다. 기사들도 단골 기사식당을 찾아다닐 만큼 여유롭지 않다.
“택시가 너무 많아져 벌이가 예전 같지 않다고들 하세요. 먹고살아야 하니 몸 생각 안 하고 운전대를 잡는 분들이 많아요. 하루 300km 이상, 인천에서 부산 못 미치는 거리를 매일 달리는 분도 있어요. 얼마나 힘들겠어요.” 외삼촌이 주인이던 시절부터 식당에 드나들던 정경래 씨는 형, 아버지뻘의 기사들이 남 같지 않다.
홍재창(54) 씨는 스물여섯 살부터 택시 운전대를 잡았다. 1990년대 초반 포니 택시로 시작해 회사 차를 16년, 개인택시를 12년 몰았다. 기본요금이 750원이던 때, 하루 네다섯 시간 정도 달려도 사납금을 거뜬히 채울 수 있었다. 열심히만 하면 먹고살 만한 시절이었다. 지금은 대중교통수단이 좋아지고 경쟁이 심해져서, 회사 택시 기사들이 사납금만 빠근히 채우는 날이 수두룩하다. “돈을 벌기 위해 교대 없이 하루 종일 일하는 기사들을 많이 봤어요. 건강이 나빠지고 병으로 저 세상으로 간 동료들의 소식을 접할 때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아버지, 다시 길을 나서다
한 칸짜리 택시 안이 생활의 터전인 사람들. 인천에만 택시 기사는 1만4,000여 명이다. 저마다 가장이라는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운전대를 잡는 사람들이다. 기사식당은 그들이 잠시나마 시동을 끄고 한숨 돌릴 수 있는 곳이다. 그 안에서 따듯한 한 끼 식사로 든든히 속을 채우고 지친 하루를 위로받는다.
“이제야 철이 들었어요. 일을 더 해야 했어. 난 빵점짜리 아빠예요.”
홍 씨는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3학년 두 딸을 둔 아버지다. 사정이 어려워져서 10년 탄 개인택시를 팔고 회사 택시를 몰던 때가 있었다. 보증금 300만원에 30만원짜리 월세에 살다 다시 일어났다. 그때부터 술 담배를 끊고 좋아하던 축구 심판 일도 멀리했다. ‘운동장에 있던 시간에 운전대를 잡았더라면 지금 가족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열심히 일한 자신을 위한 작은 즐거움조차 사치라며, 아버지는 자책한다.
홀로 밥을 먹던 택시 기사가 기운을 차리고 다시 길을 나선다. 또 어느 길로 달려갈 것인가. 고단함이 묻어나는 그의 뒷모습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삶의 한가운데를 달리는 사람의 또 다른 한 끼를 위해, 기사식당의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택시 기사 홍재창 씨.



가족을 위해 ‘혼밥’ 하는 아버지.
삶의 무게를 짊어진 그의 뒷모습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까치기사식당
부평구 백범로 526
Ⓣ 032-426-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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