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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보다 화花려한 밤
낮보다 화花려한 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드는 일상이 아닌, 모두가 잠든 고요한 밤에 오히려 더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의 삶이 있다. 겉으로는 화려하고 우아할 것 같지만, 누구보다도 치열한 밤을 보내는 곳. 바로 꽃 도매상가이다. 집으로 가는 자동차 불빛마저 잦아드는 늦은 저녁 시간. 꽃 도매상가는 이 시간부터 본격적으로 바빠진다.
글 김윤경 본지 편집위원│사진 최준근 자유사진가
10:00 PM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 더 바빠지는 사람들
“우아하다고요? 엄청 막일인데… 꼬박 밤을 새우는 일인데 괜찮겠어요?” 꽃 가게의 일상을 취재한다는 말에 구월동에 위치한 ‘은성꽃도매상가’ 김서원(55) 사장은 고개부터 저었다.
모두가 일상을 마무리하는 시간인 밤 10시, 센트럴시티터미널 호남선으로 불리는 꽃 도매 시장에 도착했다. 한적한 도로와는 달리, 꽃 도매 시장은 오히려 활기가 넘쳤다.
“여기는 제철을 맞아 싱싱한 꽃부터 흔히 볼 수 없는 수입 꽃까지 종류가 수만 가지에 이르죠. 요즘엔 꽃 트렌드도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항상 이렇게 직접 와서 확인해 봐야 해요.”
졸업, 밸런타인데이가 있는 2월은 대목 중 대목. 전국 각지는 물론이고 해외에서 소문을 듣고 온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점포가 양 갈래로 빼곡히 들어서 있고, 좁은 통로는 오로지 꽃을 구입하기 위한 사람들로 넘쳐난다. 환한 불빛 아래 알록달록 화려한 꽃들은 손님의 눈높이에 맞춘 선반 위에 가지런히 누워 있거나 바구니에 꽂혀 있다. 누운 꽃은 오늘 들어온 것이고, 바구니에 꽂힌 꽃은 어제 들어온 것이란다. 바구니에는 물을 담아 꽃을 생기 있는 상태로 유지한다.
김서원 사장은 구입할 목록을 적은 수첩을 들고 꽃의 상태를 이리저리 살펴보며 수많은 점포 사이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쏠리(솔리다스터)가 없네요?” “그건 다 나갔어요.”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다른 가게로 향한다. “여긴 시간이 돈이에요. 한 바퀴 돌 때마다 팔려나가는 꽃도 많고, 가격도 달라지기 때문에 빨리 움직여야 하거든요.”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꽃을 구입하긴 하는데, 구입한 꽃을 건네받지 않고 그저 메모지에 기록만 한다. “워낙 구매량이 많다 보니 꽃 목록과 구입한 가게 이름만 알려주면 한꺼번에 챙겨서 저희 매장까지 배달해 줘요. 요즘엔 졸업 시즌이라 구입하는 물량이 평소보다 훨씬 많아요.”
11:40 PM
꽃에 파묻혀 순식간에 지나간 시간
어느덧 밤 11시 35분. 이번에는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경부선으로 가야 한단다. 11시 40분이 되면 그곳에서 생화 시장이 열리기 때문이다. 이미 터미널로 줄줄이 들어오는 탑차에는 오픈 시간에 맞춰 전국 각지에서 올라오는 꽃들로 가득했다.
호남선 꽃 도매 시장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경부선 3층 꽃 도매 시장은 규모가 크고, 꽃의 종류도 훨씬 많았다. 조화, 부자재 코너로 나뉘어 있고, 길이 굉장히 꼬불꼬불해 처음 방문하는 사람은 길을 잃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화려한 꽃들을 맘껏 감상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은 어느새 까마득히 잊고 치열하게 꽃을 구입하려는 사람들과 팔려는 사람들 사이를 요리저리 빠져나가기에 급급했다. 소규모 꽃 가게 상인과 개인적으로 꽃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구입한 꽃을 신문지로 둘둘 말아 끌어안고 비좁은 통로를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가뜩이나 좁은 통로는 시간이 지날수록 꽃을 포장했던 신문지와 박스들로 넘쳐나 지나다니기가 더 불편해졌다.
몇 번을 들어도 생소한 꽃의 이름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어렵기만 하고, 미로 같은 점포 사이를 뱅글뱅글 돌며 꽃을 구입하느라 서서히 허리와 다리가 아파왔다. 하지만 좁은 통로, 바쁘게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 틈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계속 돌아다니면서 꽃을 구입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전 3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드디어 새벽 꽃 구매가 모두 끝났다.
지난 저녁에 출발했던 구월동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3시 30분. 그런데 6시부터는 매장에 도착하는 꽃을 진열하고 정리해야 한단다. 김서원 사장은 집에 들어가 잠깐 쉬고 6시에 다시 매장 문을 열었다.
06:00 AM
의미 있는 순간을 빛나게 해주는 일
오전 6시. 매장 앞에는 밤새 구입한 꽃을 실은 트럭이 이미 도착해 있고, 매장 안에서는 남자 직원들이 가게를 정리하고 있었다. 직원들은 트럭에서 내려지는 박스를 어깨에 둘러메고 매장 안으로 빠르게 옮기기 시작한다. 무안, 칠곡, 봉화, 여수, 완주, 공주, 태안 등 전국 각지의 꽃 상자들이 순식간에 매장 안을 가득 메웠다.
“무거운 건 꽃 1박스에 50kg가 넘어요. 그래서 꽃 장사는 남자들이 없으면 힘들어요. 꽃도 무겁고, 꽃을 담가놓는 물도 무겁잖아요.”
박스가 모두 내려지자, 주문 수량과 일치하는지 확인하면서 꽃 진열을 시작한다. 들쑥날쑥 하지 않도록 가지런히 꽃의 머리 부분을 맞춰가며 일렬로 차곡차곡 정리하는 게 노하우. 정리하고 남은 꽃은 바로 냉장 저장 창고로 옮긴다.
“꽃을 진열대에 모두 정리해 놓으면 곳간에 쌀을 가득 채운 것처럼 뿌듯합니다. 꽃이 모두 팔려나가면 보람도 있고요. 매일 아침 남들보다 일찍 가게에 나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꽃을 좋아하니까 이 일은 늘 즐겁죠.” 꽃 가게 경력 20년의 장용호(49) 씨 손끝에서 장미가 줄을 맞춰 가지런히 정리된다.
“꽃은 그냥 인생 그 자체인 것 같아요. 태어나면서부터 생일, 결혼기념일, 승진… 이 세상을 떠날 때도 꽃으로 장식하니까요. 축하할 때, 마음을 고백할 때 그 순간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꽃을 파는 일은 힘들어도 행복하지 않을까요?”
행복한 순간을 더욱 빛내기 위해 새벽잠 쫓아가며 바쁘게 살아가는, 꽃과 함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의 치열한 밤이 있기에 우리는 오늘도 우아한 꽃을 편안하게 마주할 수 있는 건 아닐까?
꽃 목록과 구입한 가게 이름을 꼼꼼하게 메모하는 김서원 사장
꽃 박스가 배달되자, 주문 수량과 일치하는지 확인하면서 진열한다. 가지런히 꽃의 머리 부분을 맞춰 가며 차곡차곡 정리하는 게 노하우.
은성꽃도매상가
남동구 구월동 819-3
월~토요일 오전 8시~오후 7시
일요일 오전 8시~오후 4시
Ⓣ 032-422-5009
[꽃 오래 보관하는 방법]
1. 물을 갈아줄 때마다 줄기 끝부분을 조금씩 잘라주면 꽃이 물을 더 잘 흡수한다. 이때 사선으로 잘라주면 물 닿는 면이 늘어나 더 좋다. 특히, 물속에서 잘라주면 싱싱함을 더 오래 유지할 수 있다고.
2. 꽃도 통풍이 잘되는 곳에 두어야 오래간다. 가끔은 꽃을 위해 집 안을 환기시키는 것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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