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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 바다, 인천의 바다
남도의 바다, 인천의 바다
글·그림 박혁남 서예가, 캘리그래퍼
박혁남은 한글 서예를 주로 하는 작가다.
궁체와 판본류 등 서체를 가리지 않고
탄탄한 기초와 아취로 인정받고 있다.
흔들리며 피는 꽃 50X60cm 2018년작
남도 땅끝, 완도 노화가 나의 고향이다. ‘갈대 꽃섬’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에서 나는 중학교까지 마쳤다. 고산 윤선도 선생의 적거지로 잘 알려진 보길도가 바로 앞에 있었다. 온통 바다로 둘러싸인 작다란 섬이지만 어릴 적 내게는 우주와 같이 넓게 느껴졌었다. 해풍에 실려 오던 뱃고동 소리와 한가로운 들녘의 소 울음소리, 봄이면 푸르게 들판을 뒤덮고 가을이면 누렇게 익어가던 황금 보리 물결은, 어린 섬 소년에게 예술에 대한 모티브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초등학교 때 인천으로 전학을 간 친구가 있었다. 그때 나에게 인천은 망망한 대해 같은 이국이었다. 그러나 직장이 인연이되어 인천에 거주한 지도 이제 40년이 되고 보니 어느새 고향보다 인천에서 20년을 더 산 셈이다. 90세의 어머님을 모시고 또 이곳에서 결혼을 하고 장성한 아들딸을 두었으니 이제 인천은 내 삶의 모든 것이 됐다. 소래로 가던 언덕길과 연안부두의 갈매기, 그리고 자유공원. 그 긴 시간을 건너오며 만났던 수많은 인연들을 돌아보니 인천은 내 생의 전부였다. 생각해 보면 삶이란 참 묘하고도 아스라한 일이다.
어릴 때부터, 예술에 소질이 있다는 주위 평판에 힘입었는지는 몰라도 2,30대 대부분의 일상은 서예, 직장 생활 속에서도 내 마음은 온통 ‘서예’뿐이었다. 결국 1987년, 구월동 모래내시장에서 서예학원을 개원해 작가의 길을 걷게 됐다. 그러던 중 새로운 장르인 ‘캘리그래피(Calligraphy)’와의 인연은 나에게 인생 2막의 꿈을 갖게 했다. 지난 1월 26일 송도 라마다호텔에서 사단법인 한국캘리그라피창작협회를 창립했다. 우리 협회는 인천에 본부를 두고 전국 열다섯 개 지회와 지부 회원들로 구성된 단체다. 협회는 캘리그래피의 특성인 감성적 표현과 전통 서예의 오랜 서법 및 정신을 이어받아 캘리그래피가 현 시대의 무수한 삶의 이야기를 꿈과 희망으로 견인하는 예술, 현재와 미래를 잇는 순수 예술로 정착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이제 나의 고향이 되어버린 이곳 인천에서 캘리그래피가 가장 한국적인 예술, 시대에 걸맞은 예술로 승화되고, 국내는 물론 전 세계로 힘차게 뻗어나가길 소망해 본다.
소중한 것 45X65cm 2019년작
숲 35X45cm 2019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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