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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선두리의 ‘농민 맥가이버’
“문제 없으시꺄?”
강화도 선두리의 ‘농민 맥가이버’
강화도 농민 심상점
글·사진 김진국 본지 총괄편집국장
봄 햇살이 내려앉은 대지가 부풀어 오른다. 너른 밭을 휘휘 둘러보는 농군의 얼굴에 목련처럼 하얀 미소가 피어난다. 툴 툴 툴 툴, 경운기가 지나간 길에 물결 같은 이랑이 생겼다. 먹거리를 내어주는 생명의 흙 물결이다. 그렇게 땅은 사람을, 사람은 땅을 받아들이며 자연과 인간은 한 몸이 된다. 강화도는 지금 파종의 계절. 5월 중순까지 ‘속노랑고구마’와 ‘순무’를 심고 나면 곧 모내기가 시작될 것이다. 강화도의 산에 들에, 농민 심상점(62) 씨의 가슴에도 봄이 찾아들었다.
“농부들에겐 지금이 가장 행복한 시간입니다. 수확철을 기다리며 희망을 심는 철이거든요. 잘 보살핀 농작물이 쑥쑥 자라는 걸 보면 자식들이 무럭무럭 크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요.”
밭을 바라보는 심 씨의 눈길이 봄볕처럼 느슨해진다. 지금은 논밭을 일구지만, 그는 본래 돼지를 키웠다. “제가 양돈을 시작한 1988년은 선두리가 오지였어요. 가축을 기르기에 최적지였지요. 그런데 초지대교가 개통되면서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관광지가 된 거예요. 괜히 이웃들에게 미안해지더라구요.”
성실하고 정직한 그에게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돼지 냄새가 민폐라고 생각한 그는 결국 20년 생계였던 양돈업을 접는다. 평생 돼지밖에 몰랐던 심 씨. 이제 뭐 해서 먹고살까 고민하고 있는데 불쑥 마을 이장을 맡아달라는 제안이 들어온다. “이장이란 직책이 마을 궂은일 도맡아서 하는 거잖아요. 그래, 이참에 봉사나 해보자 해서 수락했지요.” 돼지콜레라로 1,238마리의 돼지를 살처분하는 역경도 겪었지만, 어쨌거나 수십 년간 먹고산 마을이었다. 미추홀구 용현동이 고향인 심 씨의 귀농을 반기고, 묵묵히 지켜봐준 이웃들에게 보답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마을 사람들의 선택은 옳았다. 그가 이장 일을 시작한 뒤 선두리에선 심·상·점 이름 석 자만 대면 누구나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 올리는 사람으로 통하게 된 것이다. 한 번 받기도 힘든 인천시 ‘모범시민상’을 두 번이나 받을 정도라니.
네차례의 연임 끝에 지난해 말 이장 직에서 겨우 ‘해방’된 심 씨는 올해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는 중이다. 그의 새 삶을 축복이라도 하듯 엄청난 복이 굴러들어왔다. 검단에 사는 큰딸이 5개월 전 외손녀 이수예 양을 출산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인터뷰를 하는 도중 딸과 손녀가 찾아왔다. 답변도 잊은 채, 손녀를 바라보는 그의 입 꼬리가 귀밑까지 올라갔다. 다시 정신을 차린 심 씨가 강화도에 젊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교통 여건이 많이 좋아져 육지로 오가기가 편해졌어요. 공기 좋고 풍경 좋고, 아이들 놀기에도 최고이고 먹고 쉴 곳 많은 곳이 강화입니다.”
강화도 귀촌·귀농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선두리만 해도 주민의 25% 정도가 귀촌인이다. 자신이 꿈꾸었던 귀농·귀촌을 실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주민들과 어우러져 사는 것이 가장 좋은 길입니다. 이따금 귀촌하신 분 가운데 측량해서 울타리를 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건 섬 안의 고립된 섬을 만드는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농촌은 특히 더불어 살아야 행복합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그렇지만.” 1988년 귀농한 심 씨가 ‘원주민보다 더 원주민 같은’ 마을의 주인이 된 것도 이웃과 소통하고 배려하는 삶을 살았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이웃이 잘되고 내 주변이 편안해야 저도 잘 살지 않겠어요? 사촌이 땅을 사야 떡고물이라도 떨어지는 법이라구요. 껄껄.” 행복의 조건은 돈보다는 가족의 건강과 화목, 이웃 간의 화합이라는 심 씨의 말끝에 갑자기 다급함이 묻어나왔다.
“이제 다 끝났시꺄? 아무튼 강화도에 자주 오시겨.” 인터뷰 내내 손녀가 들어간 현관 쪽으로 힐끔힐끔 시선을 주던 강화 농부가 부리나케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돌담 위에 앉아 털을 날리며 졸고 있던 고양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야옹’ 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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