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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세계 활자의 시대를 열다

2019-07-01 2019년 7월호



인천,

세계 활자의 시대를 열다

 
 
글·사진 김진국 본지 총괄편집국장


 
인류 제2의 정보혁명인 ‘인터넷’에 앞선 제1의 정보혁명은 ‘인쇄술’이다.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까지 책은 사람이 일일이 써야 하는 필사의 방식으로 제작했다. 오류가 많았고 시간과 비용도 만만찮았다. 그렇게 만든 책은 왕족이나 귀족 같은 특권층의 손에만 쥐어졌다. 지식과 정보의 독점이었다.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15세기 발명한 인쇄술을 제대로 활용한 사람은 마르틴 루터다. 1517년 부패한 교회에 도전하기로 결심한 루터는 면죄부 폐지를 주장하는 95개 조항을 인쇄물을 통해 공표했고, 마침내 종교개혁에 성공한다. 프랑스 시민혁명도 인쇄술의 영향을 받은 집단 지성의 출현에 따른 결과였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등장하기 200년 전인 1234년, 인천 강화도에서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가 나온다. 고금의 예의를 기록한 <상정고금예문>은 고려가 발명한 금속활자로 인쇄한 책이다. 뛰어난 문명 국가였던 고려는 <상정고금예문> 발간 후 왕족의 수명을 10년 이상 연장시킨 의학 서적 <향약구급방>(1236)과 불교 서적인 <남명천화상송증도가>(1239)도 금속활자로 펴낸다.
책을 찍어내려면 잉크와 종이 역시 고품질이어야 했다. 잉크가 금속활자에 이슬처럼 맺힐 경우 글씨가 번지거나 뭉개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금속활자의 단점을 보완한 게 ‘유연묵’과 ‘고려지’다. 고려는 송나라와 원나라에 고려지를 수출할 정도로 종이 제조 기술도 뛰어났다.
목판인쇄술은 고려가 금속활자에 앞서 발명한 기술이다. 강도(江都, 몽골 항쟁 당시 강화도 이름)의 고려 정부는 1236년 ‘대장도감’을 설치하고 ‘팔만대장경’ 판각을 시작, 땅에서부터 쌓으면 백두산보다 높은 8만여 장의 대장경을 1251년 완성한다. 팔만대장경은 동아시아의 방대한 불교 지식과 최첨단 하이테크 기술이 결합해 탄생한 인류의 위대한 유산이다. 때는 고려 왕조가 몽골에 항전하기 위해 개경(개성)을 떠나 강화로 수도를 옮긴 시기. 긴장이 최고조에 이른 일촉즉발의 전시 상태에서, 이 같은 결과물을 생산했다는 사실은 강화 천도 전 이미 상당한 인쇄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시대 들어 우리나라 최초의 사찰인 강화도 전등사 내 ‘정족사고’(1678)가 설치된다.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왕실 서적 4,000여 권을 보관한, 전국 4대 사고 가운데 가장 큰 도서관이었다. 정조대왕은 1782년 강화도에 ‘외규장각’을 세워 5,400여 권의 왕실 서적을 전람하기도 했다. 강화 출신의 송암 박두성 선생이 한글 점자를 창안(1926)한 것은 어쩌면 이 같은 강화도 인쇄 역사의 기운을 받았기 때문은 아닐까.
송도국제도시 센트럴파크 안에 세워지는 ‘국립세계문자박물관’ 건립 공사가 조만간 첫 삽을 뜬다. 우리나라 최초이고 중국 ‘국립문자박물관’, 프랑스 ‘상폴리옹문자박물관’에 이어 세계적으로 세 번째로 건립되는 문자박물관이다. 인천으로선 처음 유치하는 국립 문화 시설이기도 하다.
2021년 개관 예정인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이 송도에 들어서는 당위성은 인천이 ‘금속활자-목판인쇄술-정족사고-외규장각’으로 이어지는 인쇄술의 성지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인류의 문명을 혁명적으로 진전시킨 활자와 인쇄의 역사가 인천에서 탄생한 것이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은 2023년 개관 예정인 인천뮤지엄파크와 함께 우리나라 브랜드 가치를 한층 높여줄 중요한 콘텐츠로 자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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