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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맛-겨울빛 담긴 투명함, 벌버리묵

2020-02-04 2020년 2월호

겨울빛 담긴 투명함,

벌버리묵

 인천만의 그 맛이 있다. 지역 음식에는 고유한 환경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끝낼 일이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뿌리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인천의 산과 들에서 자라고, 바다와 갯벌에서 펄떡이고 있을 먹거리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손맛을 기록한다. 그 여섯 번째는 겨울을 닮은, 맑고 투명한 맛 벌버리묵이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장사진 류창현 포토디렉터


벌버리묵(아래)

그 원재료인 박대 껍질(위 오른쪽), 그리고 박대.

스타일링 진희원

 

        

그 많던 박대는 다 어디로

 

거의 우리 바다 것이 아니야.” 무의도 큰무리 마을 바닷가, 일광욕하는 생선들을 가리키며 마을 주민이 말한다. 대부분 먼바다에서 나 연안부두를 거쳐 이 섬으로 왔다고 했다. 길어야 석 달, 겨울에만 맛볼 수 있는 별미가 있다고 해서 섬까지 왔다. 바로 영종도, 무의도 앞바다에서 잡히는 생선 박대의 껍질로 만든 벌버리묵. 박대 맛이 가장 좋을 때는 겨울에서 봄. 더구나 날이 따듯해지면 생선 껍질이 흐물거려 묵을 쑤기 어렵고, 애써 만들어도 금방 녹아버린다고 했다. 추울 때 벌벌 떨면서 먹는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도 벌버리묵’.

계절의 별미를 찾아 여기까지 왔는데, 원재료가 섬 앞바다에서 잘 나지 않는다니. 박대뿐 아니었다. 그물을 던지면 척척 잡히던 전어도 숭어도, 그 흔했던 망둥이도, 지천으로 널려 있던 굴도 바지락도 예전만 못하다고 했다. “옛날에는 그리 어마어마하게 그물에 걸려들더니 이제 구경하기가 힘들어.” 옛 큰무리 선착장 인근에서 식당을 하며 생선을 말려 파는 주민 신정숙(74) 어르신이 덤덤하게 말한다. 한겨울 섬을 따스하게 비추는 햇살은 그저 평화롭다.

무의도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뱃길로 한 시간은 가야 하는 가깝고도 먼 섬이었다. 그러다 갯벌이 메워져 영종도와 용유도가 한 몸이 되고, 그 한가운데로 거대한 활주로가 났다. 도시가 들어서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긴 다리가 놓였다. 지난해 4월에는 무의대교가 개통했다. 그렇게 갯벌이 사라지고 조류가 바뀌면서, 사시사철 바다의 산물이 모여들어 풍요롭던 서해는 서서히 말라갔다. 세계의 하늘을 품은 대신, 우린 바다를 내주어야 했다.

    

 

  

 

느릴수록 깊은 섬의 맛

 

박대는 갯벌이 많고 수심이 얕은 서해안 지역의 인천, 서천, 군산 등지에 서식한다. 가자미목 참서대과 생선으로, 몸이 납작하며 머리가 작고 눈이 한쪽으로 몰려 있어 어머니에게 눈 흘기면 박대 눈 된다라는 말이 있을 만큼 못생겼다. 그렇다고 박대를 박대薄待할 수만은 없다. 섬사람들은 조기나 민어처럼 돈이 되는 생선은 육지로 내다 팔고, 흔하디흔한 박대로 밥상을 채워 살아갈 힘으로 비축했다.

 

벌버리묵은 박대의 껍질로 만드는 생선묵으로, 황해도에서 전해온 서해 바닷가의 향토 음식이다. 인천 영종도, 무의도 일대와 충남 서천 지역에서 주로 먹는다. “예전엔 집집마다 해 먹던 음식이었어요. 생선 비닐과 껍질도 다 쓸모있는 것이라며 박박 긁어모아 묵으로 만들어 먹은 거지요. 집마다 빛깔이 다른데, 정성을 들일수록 맑고 투명하답니다.”

무의도 토박이 김영균(48) 씨는 하나개해수욕장 앞에서 도랫마을이라는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식당 이름은 이 동네의 옛 지명에서 따왔다. 무뚝뚝하고 거세 보이지만 속정 깊은 섬 사나이가 벌버리묵을 쒀주겠다고 소매를 걷었다. 그것도 섬에 가스가 들지 않던 시절의 나는 자연인이다방식으로. 담담하면서도 깊은 맛은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인 끝에서야 나온다. “벌버리묵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에요. 거의 하루가 걸려. 하루 동안 같이 살아보자고요.”

 

그의 말대로 벌버리묵은 원재료부터 오랜 시간 정성껏 공을 들여야 하는 슬로푸드. 먼저 박대의 껍질을 까서 볕에 바짝 말린다. 말린 박대 껍질은 물로 깨끗이 씻어 찬물에 8시간 정도 담근다. 이후 껍질을 손으로 비벼 깨끗이 손질한다. 여러 번 문질러 검은 비늘껍질과 먼지를 깨끗이 씻어내야 한다. 처음에 시커멓게 나오던 물이 맑아지고 나서야 손길을 거둘 수 있다. 잘 손질한 박대 껍질은 가마솥에 넣고 푹 끓여 액즙으로 진하게 우려낸다. 여기에 생강, 대파, 먹다 남은 소주 반 병을 넣고 끓이면 생선 비린내가 덜하다. 그렇게 한두 시간 중불로 잘 끓여낸 후 면포에 박대 껍질을 걸러내어 육수를 받아낸다. 정성껏 고아낸 국물을 묵 틀에 부어 식혀서 굳히면, 드디어 탄력 있고 졸깃한 묵이 완성된다.

 

 


 


무의도 토박이 김영균 씨가 섬에 가스가 들지 않던 시절의

나는 자연인이다방식으로, 벌버리묵을 만들고 있다.

 

 

비릿한 바다 냄새, 그 삶의 향기

 

껍질을 벗긴 박대는, 햇빛에 꾸덕꾸덕하게 말려 구이로 해 먹으면 맛이 그만이다. 이안종(68), 정만숙(65) 부부는 섬마을 식당에서 20년째 박대를 굽고 있다. 남편은 무의도 토박이고, 아내는 1975년에 전라남도 벌교에서 이 섬으로 시집왔다. “저 남쪽 끝, 왜 꼬막 나는 데 있잖아. 거기서 처음 올 때만 해도, 이 동네가 개안이라고 갯벌 천지라 바지락을 쓰레질하듯 담았어. 옛날엔 잡기 싫어서 안 잡을 정도였는데.” 짙게 주름 팬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어난다. 남쪽에서 서쪽 갯벌로, 갯벌투성이로 살아야 하는 섬 아낙의 삶을 숙명처럼 짊어지고 살아왔다. 평생 물이 마를 날 없던 손은 갈라지고 터지고를 반복하다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갯일하고 농사일하고, 섬에서 난 생선이나 쌀을 이고 배 타고 육지로 가서 팔아, 그 돈으로 애들 밥해 먹이고 공부 가르치고. 여기 사람들이 다 그러고 살았어.” 하지만 그 어떤 원망도 후회도 없다. 스쿠버다이버가 되어 제주 바다를 누비는 아들, 잘 자라준 12녀를 떠올리면 살아온 삶이 하나도 힘들지 않다.

 

평생을 땀 흘려 산 만큼 이제 먹고살 만하지만, 노부부는 용돈 벌이라도 되는 식당 일을 놓을 수 없다. “책에 난 거 보고 많이들 가게에 와서, 회고 생선구이고 잡수고들 가면 좋겠네. 허허.” 어느덧 세상이 어둠에 잠기고 섬마을에 불빛이 하나둘 켜진다. 다리 건너 육지와 가까워질수록 멀어지는 섬. 그곳엔 엄마 몸에 밴 비릿한 바다 냄새처럼, 쉬이 지워지지 않는 삶의 향기가 짙게 배어 있다.

    


 

 

벌버리묵은 원재료부터 오랜 시간 정성껏 매만져야 하는 슬로푸드.

정성을 들일수록 그 빛이 맑고 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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