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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인천사 -인천 지명

2021-07-30 2021년 8월호


무의도, 장수는 춤을 추지 않았다

하나개, 큰무리, 실미 등의 해수욕장을 갖고 있는 중구 무의도舞衣島는 한자를 그대로 해석해 ‘섬의 모양이 장수가 관복(衣)을 입고 춤추는(舞) 모습’이어서 붙은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 모습이 그런지도 의문이지만, 무엇보다도 이 같은 설명은 길게 잡아야 1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것일 뿐, 원래 이 섬의 이름은 ‘춤’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조선 시대의 대표적 지리서라 할 수 있는 <동국여지승람>이나 <세종실록지리지>는 물론이고, 1861년에 제작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도 이 섬의 이름이 무의도無衣島로 나오기 때문이다. 반면 1789년 발간된 <호구총수>에는 무의도無依島로 표기되어 있다. 지금의 이름인 무의도舞衣島는 조선 후기에 나온 <영종진지도>에 처음 나타나고, 그 뒤 일제강점기에 만든 여러 지도나 지지地誌 자료에서 본격적으로 쓰였다. 무슨 이유에서 이처럼 이름이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면에서 볼 때 ‘옷 입고 춤추는 모습’이라는 의미는 누군가 뒤늦게 한자의 뜻을 풀어 만들어낸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결국 무의도의 어원은 분명치 않은데, 연구자들 가운데는 ‘무의’가 우리말 ‘무리’나 ‘물’을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소리만 따서 붙인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마을이 크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대무의도는 지금도 흔히 ‘큰무리’라 불리며, 소무의도는 ‘떼무리’나 ‘뙤무리’ 등으로도 불리는데, 이때의 ‘무리’를 한자로 옮겨 쓴 것이 ‘무의’라는 해석이다. 이 해석은 상당한 타당성을 갖고 있으며, 여기서 ‘무리’는 섬사람들이나 어부들이 흔히 바닷물의 흐름과 관련해 쓰는 말 ‘물’이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인천 소사
1960. 08. 22
자유공원 연오정 건립

자유공원 하면 누구나 맥아더 동상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인근에 자리한 연오정에 얽힌 이야기를 알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연오정은 송현동에 살던 한의사 조길 씨가 부친의 유지를 받들어 건립했다. 부친이 생전 자유공원에 놀러 갔을 때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피할 곳이 마땅치 않아 많은 사람들이 비에 흠뻑 젖었는데, 그 모습을 안타깝게 여겨 자유공원에 비를 피할 수 있는 정자를 만들면 좋겠다는 부탁을 아들에게 전한 것이다. 그렇게 1960년 8월 22일, 시민들의 작은 우산이 되어주는 연오정이 탄생했다.


그때, 8월의 인천은…
1885. 08. 19 인천~서울 간 전신電信 부설
1946. 08. 02 인천세관 신설
1951. 08. 25 인천~서울 간 유선 전화 개통
1971. 08. 31 부평정수장 준공
1974. 08. 15 인천~서울 간 전철 개통
1991. 08. 01 인천지방경찰청 개청
1997. 08. 30 강화대교 개통
2002. 08. 28 강화초지대교 개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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