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 보기
그간 잘 지내셨나요 기타리스트 박규희
여섯 줄에 흐르는 사랑과 환희
글 김진국 본지 편집장│사진 김성환 포토 저널리스트
박규희는 ‘작지만 큰 손’으로 세계 최고의 기타연주자로 인정받고 있다
기타를 처음 잡은 건 네 살 때였다. 엄마가 취미로 퉁기던 기타 소리를 들으며 자란 규희는 말을 곧잘 하게 되자 기타를 가르쳐달라고 졸랐다. 아이의 생떼를 견디지 못한 엄마가 규희의 손을 잡고 데려간 곳은 석바위에 있던 ‘리여석음악학원’이었다. “이렇게 어린아이가 칠 수 있는 기타는 없어요.” 학원에선 강습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6개월 동안 고심한 끝에 아동용 기타를 구한 엄마가 학원을 다시 찾아갔다.
아이와 기타를 번갈아 바라보던 리여석 원장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이가 기타를 정말 좋아하는군요.” 그렇게 리여석(82), 조예진(65) 선생으로부터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지 어언 33년. 인천 출신 기타리스트 박규희(37)는 평단과 대중이 함께 인정하는 세계적 기타리스트로 성장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만큼이나 풍성하고 섬세한 박규희의 연주를 바라보는 많은 음악 전문가들은 그에게 ‘최고’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박규희와 스승 리여석 기타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카페 파랑돌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네 살 때 기타 잡아 33년 만에 세계적 기타리스트로 성장
그의 첫 스승 리여석 기타오케스트라 지휘자는 박규희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상한다.
“어린아이가 하루 서너 시간씩 기타를 쳤어요. 집중력과 관찰력도 매우 뛰어났고. 초등학교 2학년 때 ‘알람브라궁전의 추억’을 연주할 정도였으니까.”
박규희에게 기타는 신체의 일부분이었다. 초등학생 때는 하루 4시간, 중학생 때 6시간, 유학 시절엔 하루 13시간씩 기타를 끌어안고 살았으니.
리여석 지휘자의 수제자로 초등학생 시절을 보낸 박규희는 서울 예원학교를 거쳐 도쿄음대 기타과에 진학한다. 그전에 이미 우리나라 중학생 최초 기타 독주회, 일본의 쟁쟁한 성인 기타리스트들과 겨룬 규슈(九州) 기타 콩쿠르 우승 등 수많은 콩쿠르에서 우승 경력을 쌓은 그였다.
“기타만 끌어안으면 다른 생각이 나지 않았어요. 너무 행복하다는 느낌뿐이었죠.”
열 손가락의 오케스트라 박규희의 연주 모습
리여석, 피에리 두 스승에게 사사한 음악성과 겸손함
도쿄음대 1학년 재학 중이던 그가 돌연 빈(Vienna) 국립음대로 유학을 떠난 것은 기타 본고장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다. 쉽지 않았지만 그의 선택은 옳았다. 빈 국립음대에서 세계적인 기타 거장 알바로 피에리Álvaro Pierri 교수를 두 번째 스승으로 모시게 된 것이다. 피아졸라가 협주를 요청할 정도로 유명한 피에리 교수는 동양에서 온 제자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너의 연주는 마치 동양의 수를 놓는 것처럼 섬세하구나. 감성이 충만하고 내면은 심연처럼 깊어.” 다른 사람들은 손이 작다느니 힘이 없다느니 비판하기 일쑤였지만 피에리는 언제나 칭찬을 건넸다. 첫 번째 스승 리여석 또한 손이 작은 박규희의 신체적 조건을 언급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대가들의 공통점은 그런 거였다. 단점을 지적해 주눅 들게 하기보다는 장점을 발견해 마음껏 확장할 수 있게 하는 칭찬 말이다. 물론 박규희의 열정과 피나는 노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지만.
“너의 위에 반드시
누군가 더 잘하는 사람이 있다.
모든 사람에게서,
심지어 어린아이에게서도
배울 게 있으니 항상
마음을 열고 있어야 한다.”
빈 국립음대 수석 졸업, 깨달음을 찾아 걸어가는 음악 철학의 길
빈 국립음대를 수석으로 졸업할 정도로 정점에 올랐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졸업한 지 2년 만에 스페인 알리칸테Alicante 음악원 마스터 과정을 수료한 그는 2019년엔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배움에는 끝이 없는 것 같아요. 리여석 선생님께서도 항상 말씀하셨어요. ‘너의 위에 반드시 누군가 더 잘하는 사람이 있다. 모든 사람에게서, 심지어 어린아이에게서도 배울 게 있으니 항상 마음을 열고 있어야 한다’라고 말이죠. 그래서 저는 항상 배우고 공부하는 게 즐겁습니다. 배움은 제게 충전을 위한 시간이기도 하고요.”
박규희의 궁극적 목적은 음악을 통해 철학에 다가서는 것이다. 음악은 인간에게 무엇이며 나의 연주는 세상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철학적 깨달음을 위해 그는 오늘도 기타 줄에 부드럽고 유연한 손가락을 얹는다.
다른 많은 연주자와 마찬가지로 코로나19 발병 이후 한동안 무대에 오르지 못한 박규희는 오는 5월부터 바쁜 나날을 보낼 것으로 보인다. 5월 스페인 공연에 이어 6월 한국, 7·8월 일본, 가을인 10월엔 리여석 기타오케스트라 창단 50주년 연주회에 참여할 예정이다.
연주하지 않을 때면 사진 촬영과 독서를 즐기는 박규희의 ‘버킷리스트’ 가운데 하나는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기타 교본을 쓰는 것이다.
“유럽이나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 클래식기타의 대중화는 모자란 감이 있어요. 아름다운 삶을 위해 제가 익히고 경험한 음악 세계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유럽이나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
클래식기타의 대중화는 모자란 감이 있어요.
아름다운 삶을 위해 제가 익히고 경험한
음악 세계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 첨부파일
-
인천광역시 아이디나 소셜 계정을 이용하여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
전체 댓글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