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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장애인의 날
거친 파도 너머
‘당신만의 바다’에 닿기를
청춘은 아프다. 장애가 있는 청춘은 더 많이 아프다. 차이를 인정하기보다는 차별적 시선을 던지는 세상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삶의 거친 파도에 당당하게 맞서는 이들을 만났다.
글 최은정 본지 편집위원│사진 김대형 자유사진가
입으로 꿈을 그리는 화가, 임경식 씨.
구족화가 임경식(45) 씨의 화실. 화가는 입에 문 기다란 붓 끝에 팔레트의 붉은 물감을 톡톡 찍는다. 붓을 문 입술에 꽉 힘을 주어 캔버스에 ‘붉은 점 하나 콕’. 그러기를 수십 번. 어항을 탈출해 날아오른 금붕어의 비늘 하나가 완성된다.
사고는 예고 없이 찾아왔다. 1997년 가을밤, 체육 교사를 꿈꾸던 스무 살 청년은 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됐다. 절망과 분노가 오랫동안 야생동물의 발톱처럼 그를 할퀴었다. 발버둥 쳤지만 마비된 몸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13년 동안 집에만 있었어요. 살아 있지만 죽은 사람처럼 세상과 단절한 채.”
경제적 부담, 돌봄, 그를 지켜내는 일은 오롯이 가족의 몫이었다. 이미 4년 전 뇌졸중으로 장애를 얻은 어머니는 불편한 몸으로 ‘다 큰’ 아들을 수발했다. “어머니가 한없이 불쌍하고 처량해 보였어요. 그래서 해서는 안 될 말을 했어요. 죽여달라고.” 그런 아들에게 돌아온 말은 “사랑해, 내 아들.”
전국에 스무 명 뿐인 세계구족화가협회 회원이다
‘화가 아들’과 백발의 ‘그림 조수’ 아버지 임태준(78) 씨
거북이, 하늘을 날다
어느 날, 어머니에게 커튼을 열어달라고 했다. 옅은 햇살 아래 먼지 쌓인 책상, 연필, 옷걸이… 모두 쓸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연필을 입에 물고 삐뚤빼뚤 아무거나 그렸다. 그림을 그리며 생채기 난 마음 한가운데 새 살이 돋았다. 하루에 8~9시간씩 그림에 몰두했다.
세상 밖으로 나온 지 1년 만에 구족화가 초대전에 그림 한 점을 걸었다. ‘잘 걸어왔구나.’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속절없는 시간 앞에 30대 중반이 된 그는 비로소 휠체어에 앉아 있는 자신을 미워하지 않게 됐다. 몸은 휠체어를 벗어날 수 없지만, 그림은 자유로운 세상으로 한없이 나아갔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아버지도 ‘화가 아들’을 뒀다며 ‘그림 조수’를 자처했다.
그의 그림에 세상이 반응했다. 2013년 여름, 미추홀도서관 초대로 첫 개인전을 열게 됐다. 가장 넓은 벽에 2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그린 ‘천국 가는 길’을 걸었다. 하늘나라에서 그를 지켜볼 어머니를 위해.
요즘엔 거북이를 주로 그린다. “조금 느려도 거북이처럼 이 길을 꾸준히 가는 게 제 소망입니다. 사람들에게 제 그림이 위안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단 한 명만이라도 희망의 깃발을 발견하길 바라봅니다.” 바퀴를 부드럽게 밀며 다가오는 그의 휠체어 뒤에 파란색 깃발이 펄럭이는 것 같았다.
물고기와 거북이가 자유롭게 유영하는 파란 세상
그의 마음을 캔버스에 옮겨주는 화구들
속절없는 시간 앞에 30대 중반이 된 그는
비로소 휠체어에 앉아 있는 자신을 미워하지 않게 됐다
몸은 휠체어를 벗어날 수 없지만,
그림은 자유로운 세상으로 한없이 나아갔다.
‘첼로 버스킹’을 하고 있는 김자영 씨
햇살 좋은 봄날, 인천시민愛집에서 김자영(29) 씨를 만났다. 첼로를 켜는 그의 어깨 위 머리칼이 봄바람처럼 살랑거린다. 고운 선율을 실은 봄바람에 앞마당의 화초들도 산들산들 춤을 췄다.
갑작스러운 요청에도 기꺼이 ‘첼로 버스킹’을 해준 그녀에게 감사를 표하자, “눈에 뵈는 게 없어서 그래요”라며 씩씩하게 웃는다. 시종일관 환한 미소를 짓는 그는 시각장애를 안고 있는 특수학교 음악 교사다. 2018년 개교한 공립특수학교 ‘인천청인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했다.
김 씨의 시력은 학생들 윤곽만 겨우 구분할 수 있는 정도. 그럼에도 그는 정제된 언어와 빛이 없는 세상에서도 치유와 배움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비발디의 ‘사계’를 들으면 봄·여름·가을·겨울이 그려지잖아요. 말로 표현할 때보다 더 선명하게. 음악을 통해 충분히 다양한 경험과 감정을 배울 수 있어요.”
따스한 햇살이 내려앉은 인천시민愛집 앞마당에서
음악 얘기를 할 때마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그
꿈처럼 음악처럼, 나답게
“행복한 기억이 많아요. 합창대회나 축제 때도 연주하고 노래하는 게 좋았어요. 첼로, 플루트, 피아노… 오케스트라 악기는 거의 다룰 줄 알고, 장구를 좋아해서 사물놀이도 하고요. 지금도 배우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절대음감을 가진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곡을 듣고 통째로 외워 연주했다. 음악 얘기를 하는 그녀의 눈이 봄 햇살처럼 반짝였다.
중학교 2학년 겨울, 그날도 지금처럼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마림바 수업을 받았다. “눈이 안 보이는 너를 가르칠 자신이 없어서 미안해.” 수업 후 선생님은 고개를 돌리며 눈물을 글썽였다. 집에 오는 길, 찬 바람에 뺨이 얼고 눈물이 배어 나왔다. “꽤 여러 번 ‘장애가 왜 서럽고 불편해야 하나’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디딤돌보다 걸림돌이 많았지만, 꿈을 버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오늘, 그녀는 꿈을 이뤘다. 유튜브 채널(뮹자의 Music Of Dream)도 운영하고 있다. “장애가 있어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백발 할머니가 돼서도 아이들과 음악을 할 거예요.” 청년 김자영. 그의 눈에서 또 한 번 반짝 빛이 난다.
‘디딤돌’보다 ‘걸림돌’이 많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모든 시간이 아름답게 흐르기를.
자주 넘어지고 조금 느려도,
그만의 바다에 닿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우리 시는 ‘인천시립장애인예술단’을 모집·창단한다. 현악부·관악부·피아노·타악기 4개 분야 20명의 단원이 ‘희망의 포문’을 연다. 지난 3월 1차 모집에서 빛나는 열정과 재능을 가진 음악인들이 대거 지원했으며 4월 11일까지 2차 모집을 진행한다.
문의: 인정재단 032-574-0250(내선 409), 시 장애인복지과 032-440-2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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