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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석 文人石 (1열, 2열, 3열 F칸)

문인석 文人石 (1열, 2열, 3열 F칸)

제작시기 : 조선시대

문인석은 문관(文官)을 상징하는 석조각으로 묘를 지키기 위하여 무덤 앞에 배치하는 상이다. 머리는 복두(幞頭) 혹은 양관(梁冠)을 쓰며, 무관과 구분하기위하여 양손에는 홀(笏)을 지니고 있다.

망주석 望柱石 (3열 D칸)

망주석 望柱石 (3열 D칸)

제작시기 : 조선시대

망주석(望柱石)은 무덤을 꾸미기 위하여 무덤 앞의 혼유석(魂遊石) 좌우에 벌려 세웠던 석물(石物)중의 하나이다. 망두석(望頭石) · 석망주(石望柱)라고도 하며, 줄여서 석주(石柱) 또는 망주(望柱)라고도 한다. 촛대 모양으로 깎아 세운 것으로 묘지를 밝혀주는 것으로 믿었다.

5층석탑 五層石塔 (1열 B칸)

5층석탑 五層石塔 (1열 B칸)

제작시기 : 고려 말 - 조선 초

탑은 1단의 기단(基壇) 위로 5층의 탑신(塔身)을 두고, 머리장식을 얹어 마무리한 모습이다. 지붕돌은 윗면의 경사가 그리 크지 않지만, 네 귀퉁이에서 뚜렷하게 치켜 올려져 있다. 꼭대기에 올려진 머리장식은 아래의 돌과 그 재료가 달라서 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전체적인 탑의 모양이 조형성이 적고 무거워 보이는 점으로 보아 지방색이 강했던 고려 후기-조선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하마비 下馬碑 (2열 H칸)

하마비 下馬碑 (2열 H칸)

제작시기 : 조선후기

타고 가던 말에서 내리라는 뜻을 새긴 석비(石碑)이다. 궁가(宮家) ․ 종묘(宗廟) ․ 문묘(文廟) 등의 앞에 ‘대소인원개하마(大小人員皆下馬)’, 또는 ‘하마비’라고 새겨 세워 두어 타고 온 말에서 내리게 하였다.

동자석 童子石(1열, 2열, 3열 E칸)

동자석 童子石(1열, 2열, 3열 E칸)

제작시기 : 조선시대 / 16세기 말 - 17세기 초

동자석은 상석 가까이에 서 있는 석상으로 민화에서 그려지는 동자도(童子圖)처럼 머리에 쌍상투를 튼 2명의 동자가 서로 마주보도록 배치하며, 사람을 묘사한 석조각품 중 가장 사실적인 표현기법으로 조각하였다. 사찰(寺刹)에서 동자는 부처님이나 보살, 명왕, 산신 등을 모시는 어린아이, 혹은 직접 부처, 보살 그 자체로 묘사되기도 한다.

장명등 長明燈(1열 D칸)

장명등 長明燈(1열 D칸)

제작시기 : 조선시대

장명등은 문무관 석인상과 망주석을 좌우로 하여 봉분 앞 한가운데 설치한 석등이다. 장명등은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무덤 앞에 세워진 것으로 승려의 부도 앞이나 사찰의 경내에 세우는 석등에서 유래하였다. 고려시대에 묘소 앞에 세워지기 시작하다가 조선시대에는 왕릉 앞에 세우는 필수적인 석조물이 되었다.

장승 長丞(1열, 2열, 3열 G칸)

장승 長丞(1열, 2열, 3열 G칸)

제작시기 : 조선시대

돌로 만든 석장승과 나무로 만든 목장승이 있으며, 전국에 분포한다. 조선시대에는 한자로 후(堠), 장생(長栍), 장승(長丞,張丞,長承) 등으로 썼고, 지방에 따라 장승·장성·벅수·법수·당산할아버지·수살목 등의 이름이 있다. 장승은 민속 신앙의 한 형태로 마을 입구나 사찰입구, 성문 앞, 길가 등에 세운 사람의 얼굴 모양을 새긴 기둥을 말한다. 장승의 기능은 마을이나 사찰의 수호신, 거리를 나타내는 이정표, 경계표 등의 역할이다. 수호신으로 세운 장승에는 글이 씌어져 있지 않고 신앙의 대상으로서 주로 액병(厄病)을 빌었다. 장승은 대개 남녀를 상징하는 2개의 석조각이 마을 입구에 마주보거나 나란히 서있는 형태를 취한다. 남상(男像)은 머리에 관모를 쓰고 전면에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상원대장군(上元大將軍)이라 씌어져 있으며 여상(女像)은 관이 없고 전면에 지하대장군(地下大將軍),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 하원대장군(下元大將軍) 등의 글이 씌어져 있다.

연자마(1열 H칸)

연자마(1열 H칸)

제작시기 : 1930-1940년대

연자마는 연좌방아를 가리키는 것으로 연자매·돌매방아라고도 한다. 연자마는 농기구의 하나로서, 둥글고 판판한 돌판 위에 직경 110㎝ 안팎의 둥근 돌로 윗돌을 세우고 이를 말이나 소가 끌어 돌림으로써 곡식을 찧는 연장이다. 마을에서 공동으로 사용해온 것으로 거의 원형상태로 잘 보존되어 있으며 제작연대는 1930-1940년대로 짐작된다. 연자방아는 현대식 도정기가 보급되기 이전에는 농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주요 농기구 중의 하나였으나 지금은 자연 소멸되어 쓰이는 경우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귀부 龜趺(3열 C칸)

귀부 龜趺(3열 C칸)

제작시기 : 조선시대

거북 모양으로 만든 비석의 받침돌이다. 신라시대부터 쓰기 시작하였다고 하나 확실치 않다.

석탑 石塔 (2열 L칸)

석탑 石塔 (2열 L칸)

제작시기 : 현대

탑은 ‘탑파’의 약칭으로 산스크리트어인 ‘스투파(Stupa)’에서 유래한 말이다. 석탑은 주로 사찰의 법당 앞에 세우며, 부처의 유골, 유품, 머리카락을 안치하고 공양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하였다.

양호석 羊護石(2열 D칸)

양호석 羊護石(2열 D칸)

제작시기 : 조선시대

양석(羊石)과 호석(護石)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조선시대 묘지기의 일종인 양호석은 단순한 조형미를 바탕으로 전체적인 균형 잡힌 신체와 사실적인 묘사가 특징적이다.

절구통(학독, 1열 L칸)

절구통(학독, 1열 L칸)

곡식을 물에 불려 갈기 위한 구유 같은 조리도구이다. 절구통, 주로 돌(독,石)로 된 절구통을 말한다. 발음에 따라 ‘학독’ 이라고도 한다.

부도 浮屠(1열 C칸)

부도 浮屠(1열 C칸)

스님의 사리(舍利)나 유골을 묻는 탑의 일종이다. 일명 부두(浮頭) ․ 불도(佛圖)라고도 한다. 고려시대에 크게 발달한 부도는 층탑(層塔)형식, 석종(石鐘)형식, 석등(石燈)형식 및 특수형식의 4종이 있다. 송암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부도는 고려 말-조선 초에 유행한 석종형식 부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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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19-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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