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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유물 소개

이순신장군포진도, 견고한 해상 방어를 꿈꾸다

담당부서
유물관리부 (032-440-6742)
작성일
2021-12-31
조회수
1458

이순신 장군 포진도(李舜臣 將軍 布陣圖), 견고한 해상 방어를 꿈꾸다


명칭

이순신 장군 포진도

(李舜臣 將軍 布陣圖)

국적

한국

시대

조선(19세기 말 ~ 20세기 초)

재질

비단에 채색

크기

1·10폭 : 가로 37.5cm×세로 160cm

2~9폭 : 가로 40cm×세로 160cm

소장위치

고미술실


 이순신 장군 포진도(李舜臣 將軍 布陣圖)는 조선시대에 시행되었던 충청도·전라도·경상도 수군의 합동 군사 훈련 장면을 그린 것입니다. 현재의 통영인 통제영(統制營)에서 시행되어 ‘통제영 수군조련도’라고 불리기도 하고, 바다 위 전투함의 진열을 그렸다고 해서 ‘해진도(海陣圖)’, 이순신 장군의 진법(陣法)을 그렸다고 해서 ‘이순신 장군 포진도(布陣圖)’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수군조련도는 현재 20점 남짓이 전하고 있는데, 대체로 8폭에서 12폭의 병풍 형태로 제작되었고, 19세기에서 20세기 전반에 집중적으로 그려졌다고 합니다. 우리 박물관에 소장된 수군조련도는 10폭의 병풍으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그려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순신 장군 포진도의 유래

 임진왜란에서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水軍)의 활약으로 왜군의 진격이 저지된 후 조선은 수군 정비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여러 정책을 시행합니다. 그 중 하나가 이전에는 각 도(道) 별로 해안을 방어하였던 수군의 체제를 각 도의 수군을 신속하게 집결시켜 해안을 방어하는 체제로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1593년 충청도·전라도·경상도 수군을 통제하기 위한 통제영(統制營)을 설치하였고, 지휘관인 통제사(統制使)를 두었습니다. 통제사의 지휘에 따라 수군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위해서 삼도(三道) 수군의 합동 훈련이 필요하였는데, 문헌에 따르면 1629년에 최초로 합동훈련을 실시하였다고 합니다.

 수군 훈련을 위해서는 『병학통(兵學通)』(정조대 편찬)과 같은 군사 관련 책들이 참고되었습니다. 이러한 책들은 휴대하기도 편리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휴대하기 어려운 병풍으로 수군조련도를 그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기존 연구에 따르면 수군조련도 병풍은 수영(水營)과 같은 군사적 성격을 가진 공적 공간에 두고 장식과 참고자료로써의 역할을 하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더욱이 문자보다는 그림이 보는 사람에게 있어서 더 이해하기 쉽고 기억하기도 쉬우니 좋은 참고 자료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 포진도의 구성

 우리 박물관의 수군조련도는 여러 진법(陳法) 중에 ‘첨자찰진(尖子扎陣)’을 그렸습니다. 첨자찰진은 진형의 모양이 뾰족한 ‘첨(尖)’자에 갑옷비늘 ‘찰(扎)’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주로 함대가 출전할 때 사용했던 진형이고 다른 진형으로 신속히 바꾸는데 유리했다고 합니다. 현재 남아있는 수군조련도 대부분은 이순신의 ‘학익진(鶴翼陣)’과 첨자찰진을 재현하고 있습니다. 이 첨자찰진을 기본으로 하여 조선시대 삼도수군(三道水軍)의 오영(五營) 체제, 즉 중영(中營)·전영(前營)·좌영(左營)·우영(右營)·후영(後營)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습니다.

 병풍 중앙에는 삼도수군을 통솔하는 군선(軍船)이 ‘삼도주사사명(三道舟師司命)’ 깃발과 ‘수(帥)’자가 적힌 깃발, 황룡기(黃龍旗)를 펄럭이며 중앙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 우두머리 군선을 ‘좌선(左船)’이라고 부르는데, 좌선을 중심으로 하여  ‘╪’ 모양을 이루며 배치된 군선들이 중영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병풍 우측상단에 위치한 3열의 군선이 좌영을, 좌측상단에 위치한 3열의 군선이 전영을, 좌측하단에 위치한 5열의 군선이 우영을, 우측하단에 위치한 5열의 군선이 후영을 이루고 있습니다.

 각 영(營)에는 대장격인 수사(水使)의 군선이 가장 크고 화려하게 그려졌는데, 좌영을 이끄는 경상좌수사(慶尙左水使)의 배에는 ‘경좌수(慶左水)’의 깃발이, 전영을 이끄는 전라좌수사(全羅左水使)의 배에는 ‘전좌수(全左水)’의 깃발이, 우영을 이끄는 전라우사(全羅右使)의 배에는 ‘전우수(全右水)’의 깃발이, 후영을 이끄는 충청수사(忠淸水使)의 배에는 ‘충수(忠水)’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어 오영의 체계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 포진도 자세히 들여다보기

 중앙에 배치된 좌선과 좌선을 중심으로 위·아래에 배치된 중선(中船)·부선(副船)은 판옥선(板屋船)으로 임진왜란 당시 주력 전투함이었습니다. 판옥선은 갑판을 2중으로 구성해서 1층에는 배를 움직이는 격군(格軍)이, 2층에는 전투병이 위치하여 전투의 효율성을 높였습니다. 1층 측면과 정면은 황룡으로 장식하였고, 뱃머리에는 ‘천우일호좌선(天宇一號座船)’이라는 배의 명칭이 적혀 있습니다. 좌선에 위치한 누각에는 삼도수군통제사가 위치하게끔 되어 있는데, 조선시대 왕의 기록화에서 왕을 그리지 않듯이 통제사는 그리지 않았습니다. 누각에는 이순신이 명나라 신종 황제에게 받았다는 팔사품(八賜品)인 호두령패(虎頭令牌), 도독인(都督印) 등이 그려져 있습니다. 판옥선 외에 소형 전투선인 병선(兵船)과 거북선이 삼도수군의 진열을 이루고 있습니다.

 인물들은 3~4등신인데, 대부분 손을 가운데 모은 모습으로 비슷비슷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점 3개로 눈과 입을 표현하였고, 대부분 옅은 청색의 두루마기를 입고 있는데 일부 인물들은 답호(褡穫)를 걸친 모습입니다. 모자는 ‘┴’ 자로 간략하게 선으로만 표현하였고, 각 배에 타고 있는 우두머리는 간략하게 묘사된 금빛 투구를 쓰고 있습니다. 군함들 외에는 지원 병력이나 보급품을 전달하는 것처럼 보이는 소형 배들이 군데군데 위치해 있습니다. 물결은 가는 선으로 반복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형식적으로 보이는데, 군선의 나무 판재나 돛에 음영을 가미하였고, 병풍 양 끝 가장자리로 언덕과 나무가 그려져 있어 실제감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 박물관 소장의 수군조련도와 비교하여 참고할 만한 그림은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수군조련도(유물번호 02877)입니다. 화면의 구성이 매우 흡사하여 아마도 같은 본을 참고로 하여 그려진 것 같습니다. 다만 일부 세부적인 표현과 채색, 필치의 느낌에 차이가 있어 같은 화가가 그린 것은 아닌 듯 보입니다. 두 그림을 비교하다 보면 우리 박물관 그림에는 지워져있는 깃발의 글씨를 확인할 수도 있고, 부선 돛대의 흰 깃발에 그려진 태극기가 후대에 가미된 것도 알 수 있습니다.


견고한 해상 방어를 꿈꾸며

 삼도수군의 합동 훈련은 왜구에 대한 경각심이 높았던 17세기에는 종종 이루어졌지만, 이동거리나 날씨, 보급품 등의 현실적인 문제로 18~19세기에는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화려한 채색으로 정교하게 그려진 우리 박물관의 수군조련도는 실제 수군의 합동훈련을 묘사한 그림이라기보다는 견고한 해상 방어라는 이상향을 그린 그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글_윤현진(인천시립박물관 유물관리부)


※ 참고자료

- 유미나, 「조선후반기의 통제영 수군조련도 연구 : 국립진주박물관 소장 《통제영 수군조련도》 병풍을 중심으로」, 『미술사학연구』 281, 한국미술사학회, 2014.

-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 『충무공 이순신과 임진왜란』 도록, 2011.





이순신장군포진도, 견고한 해상 방어를 꿈꾸다_1

이순신장군포진도, 견고한 해상 방어를 꿈꾸다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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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舜臣將軍布陣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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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2-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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