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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유물 소개

행복과 부귀를 꿈꾸는 그림, 책거리

담당부서
유물관리부 (032-440-6764)
작성일
2022-03-03
조회수
292

행복과 부귀를 꿈꾸는 그림, 책거리(冊架圖)​


 

명칭 

책거리도(冊架圖)

국적

한국

시대

조선(20세기 초)

재질

종이에 채색

크기

각 폭 60.5×33.5cm

소장위치

상설전시실 3층 서화실 ​


책거리 그림의 유래

  책거리 그림은 책과 함께 여러 가지 귀중한 물건들을 함께 그린 그림으로 ‘책거리도’, ‘책가도’ 등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조선 후기에 그려지기 시작하여 궁중에서부터 민가에 이르기까지 사용된 장식 그림입니다. 보통 가로로 기다란 책꽂이에 도자기, 청동기, 문방구 등을 책과 함께 진열한 형태와 책꽂이 없이 화면 아래위로 책과 여러 기물들을 나열하여 그린 것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청대의 장식장인 다보각(多寶閣)을 그린 그림에서 기원한 것으로, 조선 후기에 유행한 책거리 그림은 정조(正祖, 1752~1800)와 관련이 깊습니다. 문치주의를 표방했던 정조는 궁중화원들을 뽑는 시험에 책거리를 주제로 내기도 했고 어좌 뒤에는 오봉도(五峯圖)가 그려진 병풍 대신 책가도 병풍을 장식하기도 했습니다.
  조선 후기 사대부들이 애호했던 화려한 책거리 그림에는 도자기, 청동기, 문방구 등이 책과 함께 진열되어 있습니다. 이 물건들은 당시 중국에서 수입한 중국 제품들로 상류층의 골동수집 취미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19세기 화원화가인 이형록(李亨祿, 1808~1883 이후)의 책거리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으며 점차 민간으로 확산되면서 책꽂이가 있는 것보다는 없는 형식이 더욱 성행하였습니다. 
  조선 후기에 유행한 책거리 그림은 책과 글을 통해 자신을 닦고 나라에 이바지하고자 했던 유교문화의 전통을 바탕으로 출세와 부귀, 평안 등을 바라던 사람들의 염원을 담아 널리 유행했던 그림입니다.


시립박물관 소장 민화 책거리 병풍

  최상류층을 수요 대상으로 궁중화원들에 의해 그려졌던 책거리는 19세기 후반으로 갈수록 학문과 거리가 먼 부호 세력과 서민층까지 확대되었고 책거리의 소재도 다양해졌습니다.
  민화 책거리는 궁중 책거리에 비해 크기가 작아지면서 책가가 사라지고 서안(書案)이나 경상(經床)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골동품이나 값비싼 중국제 물품들 대신 길상(吉祥)을 상징하는 다양한 식물과 동물들이 등장하는 것도 민화 책거리의 특징입니다.
  우리 박물관에 소장된 책거리 병풍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 아래 그려진 것으로 책꽂이 없이 서책과 문방구를 중심으로 골동품, 과일, 꽃병이 배치된 민화 책거리도입니다. 박물관에 소장될 당시에는 8점의 낱장 형태였으나 2014년경 병풍으로 장황하였습니다. 8폭 모두 기본적인 화면 구성은 대여섯 권의 책들을 넣은 서갑을 세 겹, 혹은 네 겹씩 상하로 겹쳐놓았고 주변에는 꽃을 꽂은 화병과 다양한 과일들, 청동기, 문방구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각 폭마다 연꽃, 모란 등 종류가 다른 꽃들을 장식한 화병(花甁)이 그려져 있습니다. 화병은 원래 꽃을 꽂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나 ‘보병(寶甁)’이라는 의미도 함께 지니고 있으며 또한 그 발음이 ‘화평(和平)’과 유사하여 화합과 평안을 나타냅니다. 모란꽃은 부귀와 평안, 연꽃은 ‘연생(蓮生)’이라 하여 연이어 귀한 자식을 얻어 집안이 평안하기를, 사계화인 장미는 사계절 내내 평안하길 기원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포도, 오이, 수박 등 씨가 많은 과일들도 곳곳에 보이는데 이 역시 자손을 많이 얻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화면에 기쁨을 나타낸 ‘쌍희(囍)’자나 복을 기원하는 ‘복(福)’자를 직접 표기하고 있고 장수를 상징하는 사슴의 박제를 진설하는 등 다양한 길상적 의미를 드러내고 있어 비교적 늦은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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