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시선으로 그린 청일전쟁
| 명칭 | 일청전쟁회권 |
국적 | 일본 |
시대 | 1895년 |
재질 | 종이 |
크기 | 가로 16.4cm, 세로 24cm |
소장위치 | 역사 2실 |
<청일전쟁과 매스미디어>
청일전쟁은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청과 일본이 조선 정부의 보호와 내정 개혁을 빌미로 한반도에서 충돌한 전쟁이었습니다. 1894년 7월 23일 경복궁을 공격하면서 시작된 전쟁은 1895년 4월 7일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그야말로 승승장구했고, 승리를 기록하기 위해 193명의 종군기자, 4명의 사진사, 11명의 화가를 파견했습니다. 이렇게 모인 기록들은 신문뿐만 아니라, 사진첩, 화보에 실리고 널리 퍼져 일본인들의 애국심을 고취 시켰습니다.
<그림책으로 엮은 청일전쟁 소식>
이번에 소개할 인천시립박물관 소장유물 『일청전쟁회권』도 이러한 자료 중 하나로, 모두 9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표지에는 꽃이나 새 그림이 서정적으로 그려져 있고, 제목을 각 권마다 다른 필체로 적은 것으로 보아 감상적인 효과에 꽤 신경을 쓴 듯합니다. 내지에는 10개 가량의 청일전쟁 관련 장면을 그린 그림이 인쇄되어 있고, 그림에는 간단한 설명 글이 적혀있어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책의 나머지 반 정도는 구체적인 전투에 대한 설명으로 할애하고 있습니다. 『일청전쟁회권』은 순요도(春陽堂)에서 발행되었는데, 글은 지즈카 레이스이(遲塚麗水)라는 신문 기자이자 작가가 적었고, 그림은 스즈키 카손(鈴木華邨)이라는 화가가 그렸습니다. 스즈키 카손은 지금의 도쿄에서 1860년에 태어나 일본화를 주로 그렸으며 목판화, 삽화 화가로도 유명했다고 합니다. 제1권부터 제9권까지 청일전쟁 전투의 순서대로 엮었는데, 그 순서는 ‘1-경성, 2-풍도, 3-성환, 4-아산, 5·6-평양, 7-황해해전, 8-요동, 9-여순’입니다.
<『일청전쟁회권』 안의 인천>
인천과 관련이 깊은 제1권을 살펴보겠습니다. 제1권은 부산 야경에서 시작됩니다. 달이 뜬 부산항의 야경을 서정적으로 묘사하였는데, 글에는 임진왜란의 풍공(豊公,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질책이 들리는 듯하다고 적어놓았습니다. 다음 그림은 일본군 혼성여단이 1894년 6월에 인천에 상륙하는 장면입니다. 지금의 올림포스 호텔이 있는 언덕에 일본군들이 배를 대고 상륙하고 있고, 이를 군중이 지켜보는 모습입니다. 이 그림에 적힌 글에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등장하는데, 풍공 서거 후 300년 만에 한국인들이 동방 무국(武國)의 군용(軍容)을 지켜본다는 글이 적혀있습니다. 아마도 일본인 독자들에게 임진왜란과 청일전쟁을 연결하여 애국심을 고취시키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림을 그린 스즈키 카손은 종군화가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스즈키 카손은 청일전쟁사진첩 등에 수록된 혼성여단의 인천 상륙 장면을 참고하여 이 장면을 그린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 국회도서관 소장 『일청전쟁사진첩(日淸戰爭寫眞帖)』에 수록된 혼성여단의 인천 상륙 사진을 보면, 촬영자는 인천항에 거주하는 히구치 사이조(樋口宰藏)이고, 발행자는 도쿄(東京)의 오가와 카즈마사(小川一眞)입니다. 히구치 사이조는 인천항에서 운영되었던 히구치 사진관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만들어지는 한국에 대한 시선>
뒤를 이어서 경복궁을 점령하는 장면, 한국군과 일본군의 전투 장면 등 서울에서 있었던 사건을 그려 넣고 있습니다. 경복궁을 탈출하는 한국군을 그려 넣고는 ‘한국군은 양떼, 아군(일본군)은 맹호(猛虎)’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마지막에는 ‘조선풍속’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신분별로 복식을 갖춘 한국인들을 그렸습니다. 이것은 독자들로 하여금 이국적인 풍물을 감상하게 하고, 한국인들의 신분별 유형에 대한 정보를 각인시키는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일청전쟁회권』을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당시 화보들이나 사진첩이 만들어내고자 했던 청일전쟁, 나아가 한국에 대한 시선을 분명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글_윤현진(인천시립박물관 유물관리부)
첨부1. 일청전쟁회권
첨부2. 일청전쟁회권 - 조선풍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