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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유물 소개

신라 왕의 비석 파편이 인천에 온 사연

담당부서
유물관리부 (032-440-6768)
작성일
2026-10-16
조회수
45

신라 왕의 비석 파편이 인천에 온 사연


명칭

흥덕왕릉비석편

국적

대한민국

시대

통일신라

재질

석재

크기

16 cm

소장위치

인천시립박물관 수장고



 인천시립박물관 전시실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복도에는 초대 관장 이경성의 기증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중에서 단정하게 자리 잡은 작은 돌덩이 하나가 눈에 띕니다. 언뜻 평범한 돌덩이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좀 더 자세히 볼까요? 비석에서 깨지고 떨어져 나온 부분 같습니다. 그리고 일곱 글자가 한자로 새겨져 있는데, 누가 보더라도 참 잘 쓴 글씨라 생각하실 겁니다. 역시나 비석의 글자체는 당나라의 유명한 서예가인 구양순의 서체를 모방했다고 합니다. 초대 관장이 기증한 돌덩이 그 정체는 무엇일까요?


흥덕왕릉비석편


<산산이 조각난 신라왕의 비>

 아쉽게도 돌덩이에 새겨진 글자에서는 그 단서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앞서 이 돌덩이가 비석에서 깨진 파편 같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렇다면 이와 비슷하게 비석 하나에서 쪼개진 돌덩이들이 어딘가에 있을 겁니다. 다행히도 현재 국립경주박물관, 동국대학교 박물관 등에 유사한 비석 파편들이 소장되어 있는 것이 확인됩니다. 


 이 비석 파편들은 1937년 경주의 향토사학자 최남주가 흥덕왕릉으로 알려진 신라 왕릉의 주변에서 7개의 비편을 수습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1957년 재차 수습된 비석 파편 중에 ‘흥덕(興德)’이라는 글자가 발견되면서, 비석의 주인이 흥덕왕으로 확정되었습니다. 이외에도 신라 왕실이 태조 성한(星漢)에 대하여 시조 의식을 가졌다는 점이나 흥덕왕의 향년 등이 비의 파편 속 글자에서 확인됩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수습된 비석 파편을 다 모아도 그 전체 문장이 명확하게 연결되지 않아 완전한 비문의 해독은 아직 요원한 상태입니다.


 비석의 주인공인 흥덕왕은 신라의 국운이 쇠락해가던 9세기 초중반에 재위했던 임금이었습니다. 그는 형인 헌덕왕과 함께 조카인 애장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냉혹한 인물이었지만, 왕비가 죽자 그리움에 재혼하지 않은 순애보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흥덕왕의 죽음 이후 신라는 혼란한 왕위쟁탈전의 파도 속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혹자는 산산이 조각나서 뿔뿔이 흩어진 흥덕왕릉비의 파편을 보면서 신라 하대의 분열상을 떠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경주에서 인천까지, 초대 관장 이경성의 열정>

 그렇다면 흥덕왕릉비편은 어떻게 인천으로 오게 되었을까요? 흥덕왕릉비편은 1947년 7월 1일부터 13일까지 인천시립박물관 <경주고적조사 보고전> 특별전 때 전시되었습니다. 이 전시는 박물관과 인천시립우리예술관이 공동으로 구성한 경주고적조사단의 조사 성과를 보고하는 자리였습니다. 흥덕왕릉비편도 이때의 경주 고적조사 과정에서 수습된 것으로 보입니다.


계림비각


 이와 관련하여 몇 년 전 시립박물관 유물정리실의 자료 정리 과정에서 경주고적조사단이 촬영한 사진 14장이 발견되었습니다. 그 사진 중에는 계림비각(鷄林碑閣) 주변에서 찍힌 경주고적조사단 단원들의 모습도 담겨 있습니다. 당시 초대 관장 이경성을 중심으로 한 7명의 단원들이 1947년 5월 26일부터 6월 2일까지 경주 일원을 조사했는데, 그때의 모습이 사진 속에 담긴 것입니다. 예산 부족으로 박물관 운영이 쉽지 않을 당시 인천시립박물관의 소장품 확보를 위해 동분서주했을 20대 후반 이경성 관장의 열정이 사진에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흥덕왕릉비편에는 1,200년의 시간과 인천시립박물관의 80년 역사가 녹아 있습니다. 또한 인천시립박물관 운영을 위해 해방 직후 유물 수집에 헌신을 다했던 초대 관장 이경성의 집념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이 돌덩이 앞에서 그간 인천시립박물관이 써 내려온 여정을 음미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글_김철민(인천시립박물관 전시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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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5-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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