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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유물 소개

인천에서 시작된 러일전쟁의 유물, 바리야크호 깃발

담당부서
유물관리부 (032-440-6742)
작성일
2021-02-26
조회수
212

인천에서 시작된 러일전쟁의 유물, 바리야크 호 깃발



유물명

러시아전함 바리야크 호 대군함기

국적

러시아

시대

근대

재질

직물

크기

257×200cm

소장위치

상설전시실 역사2실(복제품)

문화재

지정여부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66호


바리야크 호 깃발

 가로와 세로의 크기가 2미터가 넘는 이 깃발은 러일전쟁의 시작이었던 제물포 해전에서 스스로 침몰한 러시아의 전투함 바리야크(Варяг) 호의 뱃머리에 걸려있었던 깃발입니다. 붉은색 직사각형의 바탕천에 가로와 세로, 대각선으로 8개의 덧띠가 부착되어 있고 푸른색 천으로 된 'X'자형의 띠가 덧대어 있는 형태입니다. 이러한 형태의 깃발은 러시아 해군의 상징으로서 성 안드레 기(St. Andrew's Flag)로도 불립니다. 바리야크 호의 깃발은 제물포 해전 당시의 치열한 전투 상황을 보여주듯 여기저기 구멍이 있고 매우 헤져있는 상태입니다.


러일전쟁의 시작, 제물포 해전(海戰)

 러일전쟁은 1904년에 한반도와 만주에서 러시아와 일본이 벌인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전쟁입니다. 당시 러시아는 남쪽 방향인 태평양으로 진출하고자 하였고 일본은 북쪽 방향인 대륙으로 진출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러한 팽창 정책으로 러시아와 일본이 충돌하였고 1904년 2월에 일본이 여순(旅順)과 제물포의 러시아 함대(艦隊)를 기습 공격함으로써 러일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제물포 해전은 1904년 2월 9일 오전 11시 55분(또는 45분으로 기록되고 있기도 합니다) 인천 앞바다의 팔미도 근처에 있던 러시아의 바리야크 호와 포함(砲艦) 코레이츠(Кореел) 호를 일본의 전함들이 공격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러시아와 일본의 군함들은 1시간 가량 치열한 전투를 벌였는데 치명적인 포격을 입은 바리야크 호는 코레이츠 호와 함께 소월미도 근처로 후퇴합니다. 바리야크 호의 함장 루드뇨프(Рулнев)는 일본에 바리야크 호를 전리품으로 넘겨주지 않기 위해 침몰시키기로 하고, 코레이츠 호는 자폭시키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제물포 해전에서 승리한 일본은 이후에 벌어진 러시아와의 전투에서 잇달아 승리하고 1905년 9월 미국의 제안으로 미국 포츠머스(Portsmouth)에서 러시아와 강화조약을 체결합니다. 이 조약으로 한반도에서 우세에 선 일본은 1905년 11월에 대한제국과 을사늑약을 체결하였고 이후 대한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수순을 밟게 됩니다.


바리야크 호 깃발이 인천시립박물관에 오기까지

 1946년 4월 1일 개관한 인천시립박물관은 개관 당시 인천향토관에 소장되어 있던 바리야크 호 깃발과 함께 코레이츠 호 깃발, 포탄과 같은 러일전쟁의 유물들을 인수하였습니다. 인천향토관은 1942년 인천을 중심으로 한 유물과 기념물을 전시하기 시작하였는데 러일전쟁의 유물들이 어떻게 인천향토관에 소장되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단지 제물포 해전에서 승리하였을 때나, 바다에 가라앉았던 바리야크 호를 1907년 7월 일본이 인양할 때 누군가가 기념품 또는 전리품으로 소장하였고, 이후에 이 유물들을 인천향토관에 넘긴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인천시립박물관 상설전시실 역사 2실에 바리야크 호 깃발의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바리야크 호 깃발의 의미

 바리야크 호 깃발은 전하는 것이 많지 않은 러일전쟁 실제 유물 중의 하나입니다. 러시아는 제물포 해전의 해군들을 불리한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싸우고 제국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전투함을 자폭시킨 영웅들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바리야크 호의 깃발은 러시아 사람들에게 애국심의 상징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일본에게 바리야크 호 깃발은 러일전쟁 승리의 전리품이자 일본 군사력의 증거 자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바리야크 호 깃발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대한제국은 전쟁 당사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반도를 전쟁터로 내주었고 자국 영토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함에 따라 일본은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삼는 발판을 마련하였습니다. 따라서 바리야크 호의 깃발은 우리나라의 지리적·정치적 위치에 따른 근대의 역사적 상황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유물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인천에서 시작된 러일전쟁의 유물, 바리야크호 깃발_1

인천에서 시작된 러일전쟁의 유물, 바리야크호 깃발_2

첨부파일
바리야크호깃발-1.jpg 미리보기 다운로드
참고-1_바리야크 호 포탄_표면에 ‘러함 바리야크호 전리품(露艦ワリヤ-グ號戰利品)’ 명문 각인.jpg 미리보기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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