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주요 유물 소개

나라 안의 나라를 나눴던 각국조계석

담당부서
유물관리부 (032-440-6742)
작성일
2021-02-26
조회수
192

나라 안의 나라를 나눴던 각국조계석



유물명

각국조계석(各國租界石)

국적

한국

시대

근대

제작연도

1884년경

재질

석(石)

크기

61×34×14cm

소장위치

인천도시역사관 상설전시실

문화재

지정여부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4호


나라 안의 나라, 조계
 조계(租界)란 근대 시기 외국 상선의 출입을 허용한 개항장 내에서 외국인 전용 거주지역을 정하여 그곳의 행정권을 위임한 제도이자 해당 지역을 일컫는 말입니다.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이 개항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제도로 제국주의적 침략의 발판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1876년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 일명 강화도조약을 맺어 개항을 강제한 일본이 가장 먼저 조계를 설정하였습니다. 인천에는 1883년 일본조계가, 1884년에는 지금의 중국인 청국조계가, 뒤따라 같은 해 미국인·영국인·청인·일본인 모두가 거주할 수 있는 각국조계가 만들어졌습니다. 조계는 해당 국가의 정부나 거류민들이 만든 자치기구에 행정권한이 있었고 해당 국가의 법률에 따라 영사가 재판을 하는 치외법권도 허용하였으므로 마치 나라 안의 나라가 만들어진 형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각국조계석
조계석은 조계의 경계를 나타내는 표지석입니다. 이 유물은 정면에는 “각국조계(各國租界)”, 뒷면과 측면에는 “조선지계(朝鮮之界)”가 새겨져 있어 이 표지석이 각국조계와 조선인 거주지역의 경계에 있었던 것임을 짐작케 합니다. 1884년 10월에 「인천제물포각국조계장정(仁川濟物浦各國租界章程)」을 조인하였으므로 이 조계석은 그 이후 어느 시점엔가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본래 중구 내동 성공회인천성당 입구에 서 있었던 것을 1980년에 인천시립박물관으로 옮겨왔으며, 현재는 인천도시역사관에서 전시 중입니다.
 높이 61cm의 작은 이 표지석으로 나누었던 그들만의 별세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각국조계의 모습


 인천 제물포의 각국 조계에 경계 표지를 세우며 집터와 길을 닦는 것은 모두 첨부된 지도의 붉은 색 표지에 근거한다. 장정을 정한 뒤 조선 정부는 반드시 대책을 세워 두 달 안에 현재 각국의 조계 내에 있는 조선 건물을 다 철거하며, 이후에도 조선 인민이 이 조계 내에 집을 건축하지 못한다.


「인천제물포각국조계장정」 중


 각국조계는 송학동·송월동·만석동 일대에 조성된 일본조계와 청국조계를 감싸 안은 형태로 설치되었습니다. 가장 넓은 14만 평의 면적을 차지했으며 세 조계 중 재정상태도 가장 부유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영국·청·일본뿐만 아니라 독일과 러시아, 프랑스도 동참하였으므로 각국조계에는 인천에서 가장 다양하며 근대적인 거리가 형성되었을 것입니다. 자치의회인 신동공사(紳董公司)에 의해 신작로를 닦고 가로등과 하수도를 설치하며 도시로 급 변모해갔습니다. 유려한 각국의 영사관들이 들어섰고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공원인 각국공원(各國公園, 지금의 자유공원)도 조성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국인 사업가 존스턴의 여름별장, 독일 상사(商社) 세창양행(世昌洋行)의 사택, 외국인의 사교모임 장소였던 제물포 구락부 등이 개항도시 인천의 랜드마크로 유명세를 떨치기도 했습니다. 각국조계에는 영사관과 해관(海關, 지금의 세관) 직원, 통역사, 선교사, 의사 등의 엘리트 집단과 중개무역으로 많은 부를 축적한 상인들이 주로 거주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땅을 내어 준 조선인들의 마을이 이 화려한 공간 바깥에 면해 있었습니다.


문화재가 된 각국조계석이 말해주는 것
 1910년 우리나라가 일본에 주권을 빼앗긴 후 조계는 차례로 폐지되었습니다. 1913년 각국조계가 가장 먼저 폐지되었고 이어서 같은 해 청국조계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일본조계도 물론 1914년 철폐되어 새 행정구역인 ‘인천부(仁川府)’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각국조계석은 개항 초기 인천이 근대적인 항구도시로 발돋움했던 것을 증명하며, 동시에 그것이 외국 자본주의에 의한 것임이었을 말해주기도 합니다. 이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1990년 각국조계석을 문화재자료 제4호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있습니다.




나라 안의 나라를 나눴던 각국조계석_1

첨부파일
각국조계석-1.jpg 미리보기 다운로드
공공누리
공공누리: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 (제2유형)

이 게시물은 "공공누리"의 자유이용허락 표시제도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