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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유물 소개

<신과 함께> 속 심판자들의 그림, 시왕도

담당부서
유물관리부 (032-440-6742)
작성일
2021-03-02
조회수
1188

<신과 함께> 속 심판자들의 그림, 시왕도


 

유물명

시왕도(十王圖)

국적

한국

시대

조선(17세기)

재질

삼베 바탕에 채색

크기

150×123cm

소장처

송암미술관

문화재

지정여부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67호​



죽은 이를 심판하는 명부(冥府)의 왕, 시왕(十王)

소방관인 한 청년이 사람을 구하고 저승에 갑니다. 착한 일을 한 의인(義人)이므로 당연히 상을 받을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생전의 삶에 대해 여러 번의 심판을 거치면서 위기를 겪기도 합니다. 몇 년 전에 개봉한 영화 <신과 함께>의 대략적인 내용입니다. 저승에서 여러 왕들로부터 심판을 받는 내용이 영화적 상상력과 더해져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영화에서 주인공을 심판하던 자들이 바로 시왕입니다. 이들은 사람이 죽으면 가는 세계, 곧 명부세계를 지배하면서 죽은 사람(망자)의 죄를 심판하는 10명의 왕입니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지난 생에 했던 좋은 행위와 나쁜 행위에 따라 시왕에게 심판을 받고, 그 결과에 따라 ‘천상(天上)-인간(人間)-아수라(阿修羅)-축생(畜生)-아귀(餓鬼)-지옥(地獄)’ 등 여섯 가지의 세상(육도/六道) 중 한 곳에 다시 태어나게 된다고 말합니다.

 시왕들 사이에는 정해진 순서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진광대왕(秦廣大王)이고 열 번째는 오도전륜대왕(五道轉輪大王)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염라대왕(閻羅大王)은 시왕 중 다섯 번째 왕입니다. 이는 죽은 사람이 저승에서 차례대로 받게 되는 심판에 따라 그 심판을 맡은 시왕들의 순서를 정한 것으로 시왕들 간의 서열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시왕의 심판을 받는 데에는 일정한 시간이 소요됩니다. 첫 번째부터 일곱 번째 왕까지의 심판에는 각각 7일씩 모두 49일이 걸립니다. 100일째가 되면 여덟 번째 왕, 1년째가 되면 아홉 번째 왕, 3년째가 되면 열 번째 왕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시왕도는 시왕신앙을 바탕으로 죽은 사람을 심판하는 시왕들과 그들이 맡은 지옥의 모습을 그린 불화(佛畫)입니다. 각각의 시왕을 한 폭씩 그린 그림 열 폭이 한 세트를 이루어 사찰의 명부전(冥府殿)이나 시왕전(十王殿)에 봉안됩니다. 보통 화면을 상하 2단으로 나누어 위쪽에는 왕의 모습을 한 시왕이 심판을 하는 모습을 그리고, 아래에는 판결에 따라 각각의 지옥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표현합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새삼스레 하게 되듯이 옛 사람들에게는 시왕도가 그런 역할을 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섯 번째 변성대왕(變成大王)을 그린 송암미술관 <시왕도>

 송암미술관에는 시왕 중 여섯 번째에 해당하는 변성대왕을 그린 시왕도 한 점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변성대왕은 망자가 죽은 지 육칠일(六七日)에 만나게 되는 왕입니다. 육칠일은 ‘여섯 번째 맞는 7일’이라는 뜻으로 죽은 지 42일(7일×6)째 되는 날입니다. 화면 중앙에는 원유관(遠遊冠)을 쓰고 관복을 입은 변성대왕이 홀(笏)을 들고 앉아있습니다. 변성대왕의 앞에는 천을 씌운 탁자가 있고 등 뒤에는 병풍을 둘러 장식했습니다. 주변에는 판관(判官), 천녀(天女)와 천동(天童), 나찰(羅刹) 등 변성대왕의 권속들이 그를 보좌하고 있습니다.

 화면 속의 인물들을 자세히 보면 시왕을 비롯한 일부 인물들의 얼굴에 마치 볼터치를 한 듯 두 볼을 붉게 표현한 것이 보입니다. 그리고 시왕의 옆에서 부채와 번(幡)을 들고 서있는 두 천녀는 눈썹부분과 코를 하얗게 처리하여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법들은 조선전기 불화에서부터 사용되던 것을 계승한 것입니다. 변성대왕의 옷에 그려진 문양과 손에 든 홀에는 금을 사용하여 불화는 전체적으로 화려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색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화면의 하단에는 지옥의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백마를 탄 저승사자와 나찰에게 끌려오는 망자들, 무엇보다 뾰족하게 솟은 칼들로 이루어진 도산지옥(刀山地獄)에서 고통 받는 망자들의 모습을 표현하였습니다. 이 고통 받는 망자들 앞에는 지옥에 있는 중생들 마지막 한 명까지도 구원하고자 하는 지장보살이 있습니다. 상단과 하단은 구름으로 간략하게 구분해 놓았는데 이러한 처리방법은 18세기부터 본격적으로 그려지는 시왕도에서 자주 보이는 형식입니다.



불화를 그린 철현 비구

 보통 불화에는 조성 시기, 봉안 장소, 시주한 사람, 불화를 그린 승려 등을 기록하는 화기(畵記)가 있습니다. 화기는 불화를 만들게 된 배경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보통 불화의 하단에 붉은색으로 화기를 적을 만한 공간을 마련하여 관련 내용을 기록합니다.  송암미술관 소장 변성대왕도의 왼쪽 아래에는 ‘婆湯施主 李命五兩主 後排紙施主 尹繼立兩主 畵員 哲玄比丘(바탕시주 이명오양주 후배지시주 윤계립양주 화원 철현비구)’ 라는 화기가 적혀있습니다. 해석하면 ‘바탕천은 이명오 부부가 시주했고 배접한 종이(후배지)는 윤계립 부부가 시주했으며 그림을 그린 자는 철현 비구이다.’라는 뜻입니다. 이를 통해 송암미술관 소장 <시왕도>는 그림에 필요한 바탕천과 후배지를 시주받아 화승(畵僧) 철현이 그린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화승’은 불화(畵)를 그리는 승려(僧)를 말합니다. 후배지를 시주한 윤계립은 1637년에 31세의 나이로 과거시험에 합격한 인물입니다. 철현이 그린 시왕도는 송암미술관장 <시왕도-제6변성대왕도> 이외에도 제1·2·5·9 대왕의 그림이 국내 곳곳에 남아 전하고 있어 원래 10폭으로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시왕도에도 윤계립이 시주자로 등장하고 있으며 그림을 그린 승려로는 철현이 단독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불화를 그린 철현은 1681년에 제작된 <감로왕도(甘露王圖)>에 수화승(首畵僧)으로 참여한 기록이 있고, 경상북도 울진군 불영사(佛影寺)에 있는 1678년에 조성한 불패(佛牌)의 조성발원문에도 그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철현은 17세기에 말에 활동한 화가로 생각됩니다.


글_신은미(인천시립박물관 유물관리부)




송암미술관 소장 <시왕도>의 의미

 송암미술관 소장 <시왕도-제6 변성대왕도>는 화승 철현이 그린 작품으로 확실한 제작연대는 알 수 없지만 화기에 나오는 화승 철현의 활동시기를 감안했을 때 17세기에 제작된 작품으로 생각됩니다. 철현이 그린 시왕도에는 화면 상단의 시왕과 권속들, 하단의 지옥 장면이 확실하게 구분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형식은 18세기에 시왕도의 한 유형으로 자리 잡게 되는데, 철현이 그린 시왕도는 조선후기 시왕도 중 17세기까지 제작연대가 올라가는 귀중한 사례인 동시에 조선후기 시왕도의 유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송암미술관 소장 <시왕도>는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2015년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67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신과 함께> 속 심판자들의 그림, 시왕도_1

<신과 함께> 속 심판자들의 그림, 시왕도_2

<신과 함께> 속 심판자들의 그림, 시왕도_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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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王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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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의처 032-440-6768
  • 최종업데이트 2022-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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