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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유물 소개

인천 최대 중국요리점에 걸렸던 중화루 간판

담당부서
유물관리부 (032-440-6742)
작성일
2021-08-30
조회수
870

인천 최대 중국요리점에 걸렸던 중화루 간판


유물명

중화루 간판(中華樓 看板)

국적

한국

시대

일제강점기


시기

1922년(임술년)

작가

부배동(傅培桐) 등

크기

(위) 너비 278cm×높이128cm

(아래) 너비 350cm×높이112cm


개항 이후 인천의 변천을 함께한 대불호텔과 중화루

위 유물은 인천부 본정 1정목 18번지, 대불호텔 건물(지금의 중구생활사전시관)에 위치한 근대 인천 최대의 중국요리점 중화루에 걸려 있던 간판입니다. 중화루의 전신인 대불호텔은 일본인 해운업자인 호리 히사타로(堀久太郞)가 1887년과 그 이듬해에 걸쳐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호텔입니다. 적벽돌로 만들어진 3층 건물인 대불호텔은 개항 후 인천을 방문하였던 외국인들에 의해 호황을 누렸으나, 경인철도의 개통과 러일전쟁 이후 주 고객층인 외국인들의 출입이 줄어들면서 1907년경 폐업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 후 이 건물은 여러 사람에게 임대되었다가 1922년경 그 소유권이 대불호텔 창업주의 아들 호리 리키타로(堀力太郞)에서 중국인 뢰문조(賴文藻)로 이전되었으며, 일본인과 중국인을 상대로 한 중국요리점 중화루로 제2의 호황기를 누리게 됩니다.


한편 중화루의 개업연대는 인천화상상회 문헌자료와 사진자료를 통해 볼 때 1915년으로 추정되는데, 1910년대 인천에는 큰 규모로 이주해 온 산동지방의 화교들에 의해 몇 개의 중국요리점들이 영업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 중화루는 개점 초기부터 성업을 이루어 1922년에는 대불호텔 건물을 매입하였으며, 확장 개업할 당시 지금의 인천시립박물관 소장 중화루 간판들을 제작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중화루는 북경 출신 요리사 주대인(周大人)을 영입하여 인천은 물론 경성에까지 알려진 인천 최대 중국요리점으로 명성을 떨쳤고, 아들 뢰성구(賴誠久), 손자 뢰성옥(賴聲玉)을 거치며 대를 이어 영업을 지속하였습니다. 그러나 광복 이후 화교의 유입이 사라지고 한국 정부의 화교 차별 정책이 지속됨에 따라 많은 화교들이 해외로 재이주하게 되었습니다. 뢰씨 일가 또한 1950년대 미국으로 이주하였고, 그 후 경영난을 겪던 중화루는 결국 1970년대 초에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대불호텔과 중화루는 2011년 3월 건물 신축공사 도중 지하에서 유구가 발견되어 붉은 벽돌 건물의 흔적이 모습을 드러내었고, 현재는 중화루 자리에 대불호텔을 복원하여 개관한 중구생활사전시관에서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중화루 간판은 폐업 이후인 1978년 인천시립박물관에 기증되었습니다.


인천시립박물관 소장 중화루 간판의 특징

 인천시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중화루 간판 중 직사각형의 간판은 가로로 긴 5개의 목재 판자를 붙인 후 그 위에 '中華樓(중화루)' 글자를 새겨 넣었습니다. 글씨의 가장자리를 얇은 선으로 음각하고 그 내부를 검은 색으로 칠한 것입니다. 바탕은 황색으로 칠해져 있는데 그 여백에 중국의 옛 그릇과 화초 등을 소재로 그린 그림인 기명절지(器皿折枝) 문양이 양각되어 있습니다. 간판의 오른쪽에는 '壬戌仲春(임술중춘)'이라 새겨져 있어 이 간판이 1922년 음력 2월에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왼쪽에는 제작자로 추정되는 '傅培桐(부배동)'이라는 글자와 '傅培桐印(부배동인)', '占陽(점양)'의 인장 2개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 간판은 중화루 1층 우측 출입구 위에 부착되어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하나는 삼각형 모양이며 길이 3.5m, 높이 1.1m의 대형 간판입니다. 중화루 건물의 2층과 3층 사이에 장식용으로 걸려있던 이 간판은 마주 보고 있는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가지고 구름 위를 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삼각형의 상단 두 변에는 톱니모양의 거치형과 여의두문으로 깎은 목재 부재를 부착하여 장식하였습니다. 상단 중앙에 부착된 여의주 모양의 목재에는 얇은 철판으로 만들어진 '新(신)' 자가 부착되어 있는데, 목재에는 '中(중)' 자의 음각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어 간판의 변화상을 알 수 있습니다.

 인천시립박물관은 여기에서 소개한 2점의 간판과 함께 총 8점의 중화루 간판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아무런 무늬가 확인되지 않은 2점을 제외하고, '春光和靄(춘광화애)', '把酒臨風(파주임풍)', '勝友如雲(승우여운)' 간판이 그것입니다. 이 4점의 간판 또한 각자의 자리에서 영화로웠던 중화루의 시공간을 빛내고 있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인천시립박물관은 올해 하반기에 박물관 소장 중화루 간판에 대한 자료집을 발간할 예정입니다. 이 글을 읽고 개항 이후 인천의 변천사를 함께 한 대불호텔과 중화루의 간판에 흥미를 가지게 되셨다면 앞으로 발간할 소장유물 자료집에서 많은 관심부탁드립니다. 또한 중화루 간판의 복제품을 역사2실에서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글_김민희(인천시립박물관 유물관리부)






인천 최대 중국요리점에 걸렸던 중화루 간판_1

인천 최대 중국요리점에 걸렸던 중화루 간판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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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제목
中華樓 看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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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당부서 유물관리부
  • 문의처 032-440-6768
  • 최종업데이트 2022-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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