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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유물 소개

인천 초등교육의 시작, 유리원판에 담긴 영화여학교

담당부서
유물관리부 (032-440-6764)
작성일
2022-05-30
조회수
522

인천 초등교육의 시작, 유리원판에 담긴 영화여학교


명칭

인천영화여학교 유리원판 및 사진

(仁川永化女學校 琉璃原板 및 寫眞) 

국적

한국

시대

20C초

재질

유리 및 지류

크기

유리원판 10.1×8.2cm,

사진 13.7×8.2cm

소장위치

수장고



 여기 깨어진 유리에 새겨진 한 장의 사진이 있습니다. 햇빛으로 가득 찬 어느 한옥 마당에 남자들은 간데없고 어린 소녀들과 여인들만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머리를 반듯하게 빗어 댕기를 드리고 옷고름도 정갈합니다. 어색한 듯 경직된 자세와 표정, 왜인지 카메라가 아닌 다른 곳으로 빼앗겨버린 시선들. 윗줄 맨 왼쪽에는 낯선 외국인 여성의 모습도 보입니다. 이들은 누구일까요? 어떤 날의 사진일까요?


 이곳은 인천 초등교육의 시작, 영화여학당(영화여학교)입니다. 1892년 4월 30일 내리교회 김기범 목사와 존스 목사 부부가 영화학당을 설립하였습니다. 존스 목사(Jones, G.H.)는 배재학당의 교사 출신이었고, 부인인 선교사 벤젤(Bengel, M.J)은 이화학당에서 오르간과 성악을 가르친 경험이 있었습니다. ‘영생(永生)’과 ‘교화(敎化)’의 기치 아래 학교를 열었지만 당시는 서구에 대한 배타적 인식이 지배적이었으므로 학생 모집이 쉽지 않았습니다. 영화학당의 첫 학생은 결국 존스 목사의 어학 선생이었던 강재형 전도사의 딸이 되었습니다. 1895년이 되어서야 학생이 3명이 되었고 그나마도 남녀공학을 할 수 없어 남학당과 여학당으로 각각 운영하였습니다. 1900년 학생 수가 7명이 되자 내리교회 안채를 교사(校舍)로 활용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교세가 확장하며 자연스레 학생도 늘었고 영화여학당은 여성교육을 위한 헌금을 받아 1903년 10월 12일 싸리재(지금의 경동 131번지)의 교사로 신축 이전하였습니다. 이 시기부터 학생들은 단발로 머리를 자르고 흑색으로 염색한 교복도 입어 보다 적극적인 근대교육을 시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영화여학교의 주요 과목은 산수, 지리, 영어, 성경 등이었고 근대적 지식 외에 한문과 국문, 붓글씨, 바느질 등도 배웠다고 전해집니다.

 1911년에는 우각리(지금의 창영동)로 이전하여 벽돌식 교사를 새로 지었습니다. 대지 1,226평에 연면적 212평 3층 규모의 교사로, 재래식 붉은 벽돌을 사용하여 지은 건물입니다. 학교 동쪽의 여선교사합숙소와 함께 당시 이 부근의 활발했던 선교 및 근대교육의 역사를 알려줍니다. 이 건물은 2001년 ‘영화초등학교 본관동’이라는 이름으로 시 유형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다시 유리원판 사진을 보면, 교사가 한옥인 것, 한문으로 “영화여학교(永化女學校)”라 적은 간판이 걸려있으며, 학생들이 한복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싸리재로 신축 이전하기 전 내리교회 안채를 이용했던 초기 모습으로 보입니다. 뒷줄 안쪽에 자리한 외국인 여성은 영화여학교의 문을 열었던 벤젤 여사일까요? 제법 많은 숫자의 학생들과 교사 또는 학부모일 것으로 보이는 성인여성들이 모여 어떤 날을 기념하여 촬영하였을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아마도 이 사진을 찍은 날은 학교 역사에 길이 남길만한 특별한 행사가 있었을 것입니다.


 영화초등학교는 인천의 최초 근대식 사립학교로, 2022년 올해 개교 130주년을 맞았습니다. 근대도시 인천에는 영화초등학교처럼 100년의 역사를 간직한 학교들이 많습니다. 선교를 위한 학교, 정부의 개화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학교도 일찍이 세워졌지만 일본 식민정책에 의한 학교도 존재했습니다. 인천의 전통 있는 학교들은 인천의 역사 그 자체를 담고 있습니다.


※ 유리원판 사진은 오늘날 사용하는 플라스틱 롤필름 사진의 이전 형태입니다. 유리원판 사진 제작법 중 가장 폭넓게 사용된 것은 1851년 영국에서 개발된 콜로디온 습판법인데, 유리 위에 질산은을 포함한 용액을 발라 감광성을 띠게 한 후 카메라에 넣고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을 찍고 나면 유리판을 현상하고 티오황산나트륨 등의 용액으로 정착시키는데 이 모든 과정을 유리가 젖어있는 상태를 유지하며 진행해야 합니다. 따라서 유리원판 사진들은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전문 사진가들의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글_강해라(인천시립박물관 유물관리부)


유리원판


사진


​영화초등학교 본관동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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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제목
永化女學校 琉璃原板 및 寫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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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의처 032-440-6768
  • 최종업데이트 2022-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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