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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유물 소개

인천 송도유원지 사진엽서, 이야기를 담다.

담당부서
유물관리부 (032-440-6768)
작성일
2022-07-29
조회수
712


인천 송도유원지 사진엽서, 이야기를 담다.


명칭 인천 송도유원지 사진엽서
국적 한국
시대 근대
재질 종이
크기 14 x 9cm
소장위치 인천도시역사관

송도유원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다


지난 2011년 9월 언론사들은 일제히 하나의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바로 인천 연수구 옥련동의 송도유원지 영업이 종료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37년 개장한 송도유원지는 당시 “인천의 별천지”라 불릴 정도로 유명했던 곳입니다. 1960년대 재개장한 이후 수도권을 대표하는 관광지가 되었던 송도유원지가 문을 닫게 된 것입니다.




송도유원지의 과거를 찾아서


송도유원지의 역사는 일제강점기였던 1936년, 인천부(仁川府, 현재의 인천시에 해당)의 영역 확장으로 지금의 옥련동이 인천부로 편입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지역은 소나무가 많지도 않았고 섬도 아니었지만 1920년대부터 ‘송도(松島)’라 불리며 명승지로 알려졌던 곳이었습니다. 참고로 송도라는 이름은 일본 군함 송도함(松島艦)에서 가져왔다는 설과 일본의 마츠시마[松島]에서 가져왔다는 설이 알려져 있습니다. 송도유원지는 1936년 송도유원주식회사가 설립되면서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습니다. 1937년, 송도유원지와 송도해수욕장이 개장했는데 당시 송도유원지에는 월미도에 설치되었던 조탕, 골프장, 호텔, 오락장 등이 갖춰졌습니다. 유원지에는 북측에 해수욕장이 조성되었고, 남측에는 화월환(花月丸)이라는 이름을 가진 해상 연회장이 만들어 졌습니다. 20세기 초 일본 히비야공원 등에서 설치된 아동을 대상으로 한 아동유원장(兒童遊園場)도 운영되었습니다. 송도유원주식회사는 송도유원지를 만들면서 ‘송도임해토지주식회사’라는 자회사를 만들고 주변의 토지를 분양하였습니다. 유원지 내의 별장지와 인근 청량산 등을 포함한 택지 분양이 이루어졌습니다. 별장지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당시 부호(富豪)들의 관심이 뜨거웠다고 전해집니다. 송도유원지는 광복이 되면서 미군이, 6.25전쟁 중에는 영국군이 주둔하여 일반인들이 이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전쟁 이후 다시 개발이 진행되어 1963년 7월 해수욕장·호텔·보트장 등을 갖춘 종합리조트로 재개장하였고, 1990년대까지 30여 년 동안 여름이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2011년 9월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송도유원지의 흔적이 담긴 사진엽서


인천시립박물관에는 일제강점기 인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사진엽서들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엽서에는 송도유원지에 만들어졌던 조탕과 대풀장의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엽서를 통해 송도유원지 조탕은 굴뚝을 비롯한 3채의 건물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풀장 사진에는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송도유원지 본관, 분양했던 토지와 별장지, 아동유원장, 화월환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엽서들이 있습니다. 이 사진엽서들은 크기는 작지만 일제강점기 송도유원지를 추측할 수 있게 하는 자료라 할 수 있습니다.


글_박민주(인천시립박물관 유물관리부)


송도유원지 조탕과 대풀장

인천 송도유원지 사진엽서, 이야기를 담다.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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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제목
仁川 松島遊園地 寫眞葉書
자료관리담당자
  • 담당부서 유물관리부
  • 문의처 032-440-6768
  • 최종업데이트 2022-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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