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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유물 소개

인천 앞바다에 잠들어 있는 보물선, 고승호

담당부서
유물관리부 (032-440-6768)
작성일
2023-03-24
조회수
561

인천 앞바다에 잠들어 있는 보물선, 고승호


명칭

고승호 출토유물

국적

영국

시대

1890년대

재질

복합

소장위치

역사 2실 및 수장고


 

보물선 ‘고승호’에 대해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고승호는 인천시 옹진군 덕적면 울도 서남방 약 2km 지점, 수심 25m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는 선박입니다. 소문 무성한 그 보물선에서 출토된 유물이 바로 인천시립박물관에 보관되고 있습니다.


<인천 앞바다에서 일어난 청일전쟁의 서막>

1894년 동학농민운동을 제압하기 위해 조선 왕실은 청나라에 파병을 요청하였습니다. 청나라 병사들이 조선에 오자 톈진조약에 따라 조선에서는 여러차례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풍도해전 후 청나라는 고승호에 청군 1,200여 명의 지원병을 태우고 아산으로 향하던 중 일본 군함의 공격을 받고 인천 울도 앞바다에 침몰하였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1,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청일전쟁이 발발하여 조선은 두 나라의 격전지가 됩니다.


<인천 앞바다에 침몰한 고승호>

청군 상선인 고승호는 당연히 중국 국적의 배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은 인도차이나 기선 항해회사(Indo-China Steam Navigation Company)가 소유한 영국 국적의 증기선입니다. 76.2m 2,134t급의 규모로, 영국 로이드(LLOYD) 보험회사에 보험이 가입돼 있었고 청군을 운송하는 용선계약을 맺었습니다. (※로이드 회사는 세계 최대 해상보험 인수 단체로, 타이타닉호의 보험회사이기도 합니다.)


<수차례 시도된 고승호의 수중 발굴>

서해는 갯벌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배가 깊숙이 침몰하게 되면 그 상태가 잘 보존되는 편이지만 조류가 센 바다에서 인양 작업을 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풍도해전 당시의 기록과 청나라 사료에는 고승호에 군자금으로 쓰일 은 937.5㎏이 실려 있던 것으로 기록되어있습니다. 이후 고승호의 ‘보물’을 찾기위해 일제강점기부터 수차례 발굴을 시도했으나 깊은 수심과 조류, 기술 부족으로 매번 실패하다가 2001년 한 민간기업에서 발굴을 시도하게 됩니다.


<고승호 출토 유물>

여러 차례에 걸친 작업 끝에 고승호에서는 동전, 무기, 도자기, 유리, 선박 자재 등이 인양되었습니다. 소문처럼 많은 양의 금은보화는 없었지만 당시 국제화폐 역할을 하던 멕시코 은화, 러시아 적동화와 건륭통보, 광서통보, 가경통보, 관영통보 등 여러 종류의 청·일본 주화가 발견되었습니다. 또한 소총, 실탄, 탄피, 칼 등 무기 수백 점과 치약용기, 은잔, 술병, 수저, 아편파이프 등 영국제의 생활용품, 여러 문양이 그려진 다양한 도자기 편도 발견되었습니다.

발굴된 유물들 중 은제 숟가락과 도자기 파편 일부에서 고승호 제작회사인 ‘Indo-China Steam Navigation Company’ 회사명과 회사를 상징하는 깃발이 확인되었습니다. 현재 고승호 출토 유물은 인천시립박물관에 보관 중이며, 일부는 역사 2실에서 관람할 수 있습니다.


글_이현진(인천시립박물관 유물관리부)



신문 'Le petit Journal’

'일본군에게 격침당한 중국 배 (Un vaisseau chinois coulé par les Japonais)


인천 앞바다에 잠들어 있는 보물선, 고승호_1

인천 앞바다에 잠들어 있는 보물선, 고승호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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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당부서 유물관리부
  • 문의처 032-440-6768
  • 최종업데이트 2022-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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