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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유물 소개

청대수형대포가 인천광역시립박물관에 있는 이유

담당부서
유물관리부 (032-440-6768)
작성일
2023-08-31
조회수
333

청대수형대포가 인천광역시립박물관에 있는 이유


명칭

청대수형대포

국적

중국

시대

재질

철제

크기

길이 130cm,  너비 86cm

소장위치

인천도시역사관 상설전시실


 여기 커다란 짐승 혹은 괴수의 모습을 한 유물이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호랑이가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듯한 모습에 눈이 부리부리하고 눈썹도 매우 크며 우뚝 솟은 코 양쪽으로 수염이 균형있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윗 부분에는 밑동이 잘려 있는 동물의 뿔과 문양이 정교하며, 옆면에는 머리를 받치고 있는 앞발과 쪼그려 앉은 새다리 형상의 뒷발이 양각되어 있습니다. 이 유물은 ‘청대수형대포(淸代獸形大砲)’, 즉 청나라 시기에 만든 괴수 모양 대포입니다.


< 어떤 대포일까 >

 이 대포는 주물 기법으로 만든 청나라의 화포입니다. 포신(砲身, 대포의 몸통)의 명문을 통해 중국 하남성의 개봉부에서 1861년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름 55cm, 길이 125cm, 너비 86cm로 지름에 비해 길이가 짧은 편이며 포구(砲口, 탄환이 나가는 구멍)의 형태나 약실 내부 구조, 포신의 길이 등을 살펴볼 때 실제 전투에 활용된 것은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괴수의 입에 해당하는 포구의 모양이 약실과 달리 정원형이 아니고 두 개의 포구를 연결한 듯 타원형에 가까워 탄환을 날려 보내 목표에 명중시키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다만 포신 아래에 붙어있는 포이(砲耳, 몸통 옆 돌출되어있는 부분으로 손잡이 역할을 함)와 포신 끝에 있는 화약심지를 꽂는 약실 구멍, 포신 뒤에 부착된 고정쇠 등은 이 화포가 일정한 형태의 포가(砲架, 대포의 받침대)에 장착하여 운용했음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전투에 쓰이지는 않았을지라도 의식용 또는 신호용 예포(禮砲)로 활용되었을 것입니다. 


< 왜 박물관에 왔을까 >

 그렇다면 이 청나라 화포는 왜 인천시립박물관의 유물이 되었을까요?

1946년 인천시립박물관이 처음 문을 열 때에 초대 관장이었던 이경성은 미군정의 소개로 부평의 ‘인천육군조병창’을 방문하였습니다. 조병창의 야적장에 방치되어 있던 여러 중국유물 중 몇 가지를 골라 박물관으로 이관하였고, 그 중 하나가 이 수형대포였습니다.

 조병창은 제국주의 일본이 대륙 침략전쟁을 위하여 운영한 무기 공장입니다. 일본과 중국 곳곳에 설치되었으며 인천육군조병창은 우리나라에 설치한 유일한 조병창이었습니다. 1941년 5월 지금의 산곡동과 부평동 일대 약 117만 평의 부지에 인천육군조병창을 설치하여 각종 총기류와 총검류를 생산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인천의 학생들을 포함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강제 징용되어 식민지의 고통을 겪기도 했습니다.

 일본은 무기 생산을 위해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갖가지 금속을 공출하였고 이는 문화재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이경성 관장에 의해 수집된 중국유물은 청대수형대포 외에 철제범종과 청동관음보살좌상도 있었습니다. 일본의 패망으로 전쟁은 끝났고 조병창은 문을 닫았지만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문화재는 그 자리에 남겨졌다가 우리 박물관으로 옮겨져 유물이 된 것입니다. 현재 이 대포는 인천시립박물관의 분관인 인천도시역사관 상설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인천육군조병창 터는 미군정의 흔적을 덧입은 채로 개방되어 다른 여러 시설의 부지로 쓰이려 하고, 강제 징용을 당했던 사람들의 억울한 목소리도 잊혀져 갑니다. 그러나 중국의 문화재만은 인천시립박물관에 계속 남아 격동의 근현대사를 증명할 것입니다.


글_강해라(인천시립박물관 유물관리부)


청대수형대포가 인천광역시립박물관에 있는 이유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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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제목
淸代獸形大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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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당부서 유물관리부
  • 문의처 032-440-6768
  • 최종업데이트 2022-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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