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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유물 소개

보고서 속에 담긴 인천 광산 이야기, 조선광상조사보고

담당부서
유물관리부 (032-440-6768)
작성일
2024-05-24
조회수
280
보고서 속에 담긴 인천 광산 이야기, 조선광상조사보고

명칭

조선광상조사보고

국적

한국

시대

1917년대

재질

종이

크기

가로 19, 세로 26 (cm)

소장위치

시립박물관 수장고



1. 제국주의 열강이 조선의 광산들을 조사한 이유

 19세기 후반 조선이 개항되면서 제국주의 열강은 산림채벌권을 비롯한 조선의 많은 이권들을 가져갔습니다. 여기서 광물을 채취할 수 있는 광산채굴권은 조선이 열강들에게 빼앗겼던 대표적인 이권 중 하나였습니다. 


 조선 정부는 독자적으로 광산을 개발하여 이용하고자 했지만 기술과 자본의 한계, 외압 등으로 인해서 광산채굴권을 외국에게 넘겨줘야 했습니다. 열강들은 조선의 여러 광산 중에서도 유망한 광산에 대한 권리를 요구했습니다. 특히 당시 무역이 이루어질 때 결제 수단 역할을 하고, 화폐 발행을 위한 준비 수단 역할을 했던 금을 채취할 수 있는 금광에 대한 관심이 컸습니다. 열강들에게 이권이 넘어갔던 광산의 예를 살펴보면, 미국이 가져갔던 평안북도 운산광산이나 독일이 가져갔던 강원도 당현광산 등이 있었습니다. 이때 당현광산 채굴의 경우 제물포에 있었던 세창양행이 대행했는데, 채굴 과정에서 현지민과의 마찰이 발생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과 맞물려 조선에서는 19세기부터 상세한 지질 및 광산에 대한 서구식 조사가 독일, 영국, 일본 등에 의해 진행되었습니다. 열강들은 지층·지질 계통과 암석의 분포 등을 조사하고 퇴적 구조를 파악하여 지질도를 작성했습니다. 조사된 내용들은 본국의 학회지에 발표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열강들은 조선의 광산 가운데서 유망한 광산들을 파악할 수 있었고, 채굴권을 따내는 것에 활용했습니다. 


2. 일본에 의한 조사

 제국주의 열강이 진행했던 조선의 광산에 대한 조사 중 일본이 행했던 내용을 보다 심화적으로 살펴봅니다. 1885년 이토라는 사람은 일본의 광업회지에 조선의 광산개요에 대한 글을 발표했습니다. 이 글에서 우리나라의 광업 현황과 일본으로 수출된 금과 은의 양을 다루었다고 합니다. 1896년부터 1898년까지는 당시 대한제국 광무관리 위촉직이었던 니시와다가 함경도, 평안도, 황해도, 강원도를 답사한 뒤 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 다음 해인 1899년에는 이시이라는 인물이 2번에 걸쳐 내한하여 광산 조사를 한 뒤 일본에서 결과를 소개하였습니다. 


 1900년으로 넘어가면 고토라는 일본인이 우리나라를 14개월 동안 답사를 하고, 1903년 답사 내용을 기반으로 한국의 지형 개관과 지질구조도를 작성했습니다. 고토는 이후 1909년 1/150만 축척의 지질도, 지질단면도, 지형과 지질 등을 발표했습니다. 1905년에는 고지베의 책임 하에 우리나라 지역별 조사가 진행되어 1906년 『조선광업조사보고(朝鮮鉱業調査報告)』 6권이 출간되었습니다. 조사를 했던 인물 중 한 명인 이노우에는 1907년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국지질광산도>를 최초로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1910년대로 넘어가면서 농공상부 광무과에 광상조사 부문이 설치되면서 가와사키 시게타로를 주임기사로 하여 한반도 전역을 대상으로 한 조사반이 구성됩니다. 이 조사반에 의한 조사가 1911년부터 1917년까지 이루어졌습니다. 조사 완료 후 도별로 구분하여 『조선광상조사보고(朝鮮鑛床調査報告)』 13권이 발간되었습니다. 1918년이 되면 조선총독부 지질조사소가 광무과의 조사반을 인수하여 설립됩니다.


3. 가와사키 시게타로는 누구일까?

 앞서 언급되었던 가와사키 시게타로라는 인물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가와사키 시게타로는 1878년에 태어난 인물로 오사카 출신입니다. 1902년 도쿄제국대학(지금의 도쿄대학) 지질학과를 졸업하고, 1910년 한일 강제 병합 이후 조선총독부 기사로 광무과에서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한반도 광산 조사에 참여하게 됩니다. 조사가 끝난 후인 1920년부터 1931년 3월 퇴직할 때까지는 조선총독부 지질조사소 소장 자리를 맡기도 했습니다.


 가와사키는 여러 보고서를 발간하고, 잡지에 글을 발표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조선의 광산』, 『미발견 온천과 탄산천』, 『조선광산물』 등의 보고서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고대 조선의 문화와 광물 이야기」, 「조선의 5대 광물의 현재 및 장래」, 「조선광업사일반」 등의 글을 발표하였습니다.  


4. 조선광상조사보고는 어떤 책일까?

 가와사키 시게타로를 비롯한 일본인이 조선의 광산을 조사했던 결과를 담았다는 『조선광상조사보고』는 어떤 책이었을까요? 제목에 들어간 ‘광상(鑛床)’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지시는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하는데요.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광상’을 <유용한 광물이 땅속에 많이 묻혀 있는 부분>이라는 의미의 단어로 적고 있습니다. 사전의 뜻을 바탕으로 생각하면, 『조선광상조사보고』는 조선의 유용한 광물이 많이 묻혀 있는 부분을 조사하여 만든 보고서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광상조사보고』는 앞서 나왔듯이 1911년부터 1917년까지 진행되었던 조사 결과를 토대로 만들어졌습니다. 책은 1915년부터 1922년에 걸쳐 제1권부터 제13권까지 간행되었습니다. 조사 기간과 책 출간 시기를 함께 살펴보면 한일 강제 병합 이후 11년에 걸쳐 조사와 책 출간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평안북도를 다루는 제1권에서 시작해, 전라남도를 다루는 제13권으로 구성된 책이었습니다. 


 인천에 대한 내용은 제6권으로 나왔던 경기도편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경기도편은 1917년에 총 2권으로 나누어 만들어 졌는데요. 인천은 제6권의 1에서 다뤄졌습니다. 제6권의 1의 부제에 ‘인천부천시흥김포강화 일부’라고 달려 있어 인천, 부천, 시흥, 김포, 강화 지역에 대한 조사 내용이 담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천광역시립박물관에서는 인천을 다루고 있는 이 제6권의 1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제6권의 2에는 경기도 동부, 남부, 북서부 지역의 조사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5. 조선광상조사보고 속에 등장하는 인천

 『조선광상조사보고』 제6권의 1에 담긴 인천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목차를 살펴보면 머리말에 해당하는 서언(緖言), 제6권의 1에서 다루는 지역들의 지리·지질에 대한 내용을 다룬 지리(地理)와 지질(地質), 이들 지역에서 얻을 수 있는 광상에 대해 간략히 정리한 광상총설(鑛床總說), 개별 지역의 광상을 소개하는 광상각설(鑛床各說), 마지막으로 책의 내용을 영어로 적은 글 순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보고서는 서언에 따르면 1915년 5월 13일부터 같은 해 6월 6일까지 답사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서술한 책입니다. 각 지역의 광상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광상각설에는 부천군, 김포군, 강화군, 시흥군 순으로 글과 그림을 함께 수록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천과 관련된 내용은 김포군과 강화군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김포군 부분을 보면 조사에서 확인된 김포군의 8곳 중 3곳이 인천과 관련이 있는 곳입니다. 모두 현재의 인천 서구 검단 지역에 해당하는 곳으로 첫 번째는 당시 검단면 금곡리(현재의 서구 검단동)의 철광석이며, 두 번째는 검단면 원당리(현재의 서구 원당동)의 철광석입니다. 세 번째는 검단면 족저리 및 마전리(현재의 서구 당하동 및 마전동)의 흑연석입니다. 철광석은 우리가 흔히 아는 철을 가리키고, 흑연석은 연필심을 만들 때 사용하는 흑연을 의미합니다. 다음으로 강화군 부분을 살펴보면 2곳이 조사된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첫 번째는 강화군 하점면 삼거리 고려산의 티탄이며, 두 번째는 강화 서도면 볼음도 물암곶의 티탄입니다. 2곳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티탄은 티타늄을 의미합니다. 


 『조선광상조사보고』 보고서는 요즘 많이 보기 힘든 인천의 광산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일제가 중요하다고 여겼던 광물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유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글_박민주(인천시립박물관 유물관리부)


[참고문헌]

김성용 외 1명, 「해방이전 외국인에 의한 서구식 한반도 지질광상조사 성과고찰연구」, 『자원환경지질』, 2015


첨부1. 조선광상조사보고 제6권의 1 중 강화도 부분

보고서 속에 담긴 인천 광산 이야기, 조선광상조사보고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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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제목
朝鮮鑛床調査報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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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의처 032-440-6768
  • 최종업데이트 202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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