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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유물 소개

덕률풍(德律風)이라 불리던 초기 전화, 에릭슨 전화기

담당부서
유물관리부 (032-440-6768)
작성일
2024-07-12
조회수
407

덕률풍(德律風)이라 불리던 초기 전화, 에릭슨 전화기

명칭

에릭슨 탁상형 전화기

국적

한국

시대

1892년

재질

금속, 복합

크기

가로 25.5cm 폭 14cm 높이 30cm

소장위치

시립박물관 상설전시실 (역사2실)



<덕률풍이라 불리던 전화기>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 전화기는 덕률풍(德律風)이라고 불렸습니다. 전화기의 영어 이름인 텔레폰(Telephone)의 소리를 따서 중국식으로 부른 것입니다. 텔레폰은 ‘먼 곳의 목소리’라는 의미로서 ‘먼 곳’을 뜻하는 ‘Tel-’과 ‘목소리’라는 뜻의 ‘Phone’이 합쳐진 말입니다. 그 뜻을 한자로 번역하여 어화통(語話筒), 전어기(傳語機), 전화기(電話機)라고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도 먼 곳의 목소리를 전하는 이 기계는 근대 신문물로서 꽤나 진기한 물건이었습니다.


 "서양인이 전선을 창설한 일은 신기한 일이라, 근래에 또 덕률풍(德律風)이 출현한 것은 더욱 신비한 일이다... 

마침내 본인이 말하는 소리를 통하여 전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수십리 밖에 떨어져 있다 해도 면전에서 음성을 듣는 것 같아서 그 신묘함은 더욱 한정할 수가 없다."

「제조신기」 『한성주보』 1886년 9월 27일


<전화의 전래와 도입>

 최초의 전화기는 물전화기를 개발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A.G.Bell)이 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보다 20여년 앞선 1854년 이탈리아 출신의 미국인 안토니오 무치(Antonio Meucci)가 음성을 전기 신호로 전달하는 기계를 처음으로 개발하였습니다. 1976년 전화기의 특허를 신청하고 상용화시켰던 인물이 바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입니다. 


 우리나라에 전화기가 처음 전래된 것은 1881년 청나라의 과학기술 및 병기 제조기술을 시찰하기 위해 파견된 영선사에 의해서였습니다. 일본에 파견된 수신사, 미국의 보빙사 또한 근대우편통신사업을 시찰하고 선진문물을 도입하였습니다. 제도적인 정비는 1882년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 내 우정사를 설치한 이후 우정총국, 전보총국 등을 거쳐 1895년 3월 25일 농상공부 아래 우편과 전신, 전화를 관장하는 통신국을 신설하였습니다. 전화와 관련된 정부 기구가 처음으로 조직된 것입니다. 그로부터 1년 뒤에는 당시 경운궁을 중심으로 한 궁내부에 모두 열 대의 전화가 가설되었고, 사람이 직접 손으로 회선을 연결하는 수동식 교환기가 설치되었습니다. 고종은 정치와 외교, 의례 등에 다양하게 사용하였는데 그때마다 대신들은 전화기를 향해 큰 절을 네 번 올린 뒤 엎드려 전화를 받았다고 합니다. 한편, 개항장인 인천 감리서에도 전화선을 연결하여 외국인의 출입 동향을 파악하는데 사용하였습니다. 


 " 인천감리서주사 조광희가 덕률풍으로 전해오기를 영국군함 5척, 러시아군함 1척, 미국군함 1척이 닻을 내리고 머물러 있었는데, 

육지에 상륙하였던 영국 병사가 금일 오전 10시에 승선하여 되돌아갔다고 한다."        

『외무아문일기』 광무 2년(1898) 1월 24일


 1902년에는 한성과 인천 간 누구나 사용 가능한 전화소를 처음 설치하고 칙령 제5호 「전화규칙(電話規則)」을 반포하여 전화 가설과 사용에 관한 제도를 정비하였습니다. 전화와 관련된 우리나라 최초의 법규였습니다.  



<전화 교환 방식의 발전 속 초기 에릭슨사 자석식 전화기>

 초기에 사용한 전화는 전화 교환기와 교환수가 꼭 있어야 하는 수동식 전화였습니다. 수동식 전화에는 자석식과 공전식이 있습니다. 자석식은 전화기마다 통화에 필요한 전지와 자석 발전기가 있어, 손으로 직접 자석 발전기를 돌려 교환기에 연결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공전식은 기존 자석식의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해 나온 방식으로, 통화에 필요한 전지와 발전기를 교환기와 공동으로 사용하여 전화 수화기를 들면 곧바로 교환수에게 신호가 가는 방식이었습니다. 


 전화기의 몸체는 검은색의 금속으로 골격형 구조를 만들었고 꽃과 기하학무늬로 데칼코마니 프린팅하였습니다. 몸체 안에 있는 두 개의 자석 발전기와 벨이 달린 받침대, 위쪽 수평형의 수화기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오른쪽 손잡이를 돌리면 자석 발전기의 전기를 발생시켜 전화 교환수에게 연결되는 자석식 방식의 전화기입니다. 탁상형 전화기 형태의 표준이 된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릭슨 자석식 벽걸이형 전화기

 박물관이 소장한 다른 한 점의 에릭슨사 전화기는 자석식 벽걸이형 전화기입니다. 자석이 들어 있는 전화박스와 벽걸이 장치, 수화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에릭슨이 직접 설계한 마지막 제품군에 속해 1882년부터 1905년까지 이러한 형태의 전화기를 개발, 제조, 판매하여 당시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후 우리나라에 자동식 전화가 도입된 것은 1935년 경성중앙전화국에 스트로저식 교환기가 개통되면서부터입니다. 자동식은 전화 교환수를 거치지 않고 이용자가 직접 번호를 입력하여 연결하는 방식으로, 다이얼식과 버튼식이 있습니다. 다이얼식 전화기는 1980년대까지 보편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1980년대에는 전자 교환 방식의 전전자교환기(TDX-1)를 국내 자체 개발하면서 전화 보급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습니다. 지금은 전화선이 사라진 이동통신의 시대가 열리고 휴대폰으로 무엇이든 가능한 스마트폰이 널리 사용되면서, 전화기는 현대인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인천광역시립박물관은 에릭슨사의 자석식 전화기부터 최초로 국내 생산한 체신 1호 전화기, 삼성 최초의 휴대전화 SH-100S 등 다양한 전화기를 소장하고 있습니다. 근대 신문물 에릭슨 탁상형 전화기는 역사 2실에서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덕률풍을 포함한 다양한 문물이 들어왔던 개항기 인천의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글_김민희(인천시립박물관 전시교육부)


첨부1. 에릭슨 탁상형 전화기

첨부2. 에릭슨 자석식 벽걸이형 전화기  


덕률풍(德律風)이라 불리던 초기 전화, 에릭슨 전화기_1

덕률풍(德律風)이라 불리던 초기 전화, 에릭슨 전화기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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卓床形 電話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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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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