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주요 유물 소개

인천에서 태어난 錢(전)

담당부서
유물관리부 (032-440-6768)
작성일
2024-07-26
조회수
435

인천에서 태어난 錢(전)


명칭

개국502년명 2전5푼 백동화

국적

한국

시대

1893년

재질

금속

크기

지름 2cm

소장위치

시립박물관 상설전시실 (역사2실)


 우리 박물관 2층에는 작은 동전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너무 작아서 그런지 다들 슥 보고 지나치기 일쑤입니다. 이 동전들은 왜 박물관에 있는 걸까요? 그 이유는 이들이 인천에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오잉? 인천에서 동전을 만들었다고??


< 인천 전환국 >

 개항 이후 조선 정부는 재정 악화를 완화하고 국제 통화 질서에 편입하기 위해 근대 화폐를 주조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1885년 숭례문 부근에 전환국을 설치 하고 주조에 필요한 각종 신식 기계와 주화금형은 세창양행을 통해 독일에서 들여왔습니다. 의욕적으로 시작한 사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조선 정부의 근대화 정책으로 재정은 점점 부족하게 되었고 화폐 주조 비용 또한 큰 부담이 되었습니다. 특히나 주화의 재료를 수입하여 인천에서 서울로 운반하는 문제는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경인철도가 없었기 때문에 하천을 이용하여 운반하고, 겨울철에는 강이 얼어 육로로 운반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조선 정부는 오사카제동회사 마스다 노부유키(增田信之)를 통해 재정과 원료를 공급받아 주화를 주조하기로 했으며 원료의 편리한 운반을 위해 1892년 인천 전동(현 동인천동 행정복지센터 주변)으로 전환국을 이전하였습니다. 


< 5냥 1냥 2전5분 5분 1분 >

 인천 전환국에서는 1892년부터 1900년까지 5냥(五兩)은화와 1냥(一兩)은화, 2전5분(二戔五分)백동화, 5분(五分)적동화, 1분(一分)동화 등 다섯 종류의 주화를 주조했습니다. 앞면에는 이화장과 무궁화가지 무늬가 있고 뒷면은 개국연기와 은의 함량·중량이 새겨져 있습니다. 


개국502년명 2전5푼 (이화장과 무궁화가지 무늬가 있다)


 독특한 점은 개국 501년 주화는 ‘대조선(大朝鮮)’이지만 그 이후 만들어진 주화에는  ‘大’자가 빠진 ‘조선’으로 표시하였습니다. 이는 청의 위안스카이가 청나라는 대국이고 조선은 소국이기 때문에 ‘大’를 제거해 달라는 요청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청일전쟁에서 청이 패배한 뒤 주화에는 다시 대조선이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우리 박물관에서는 개국 502년과 개국 504년에 만든 주화 6점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개국502년명 5푼 적화(개국502년 조선)
개국505년명 5푼 적화(개국505년 대조선)

< 다시 서울로 >

 하지만 인천에서 주조된 주화 또한 양질의 것이 아니었으며 일본의 재정으로 운영된 만큼 간섭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사람들은 점차 불만이 생기고 경인철도의 완공으로 원료 운반이 용이해 지자 1900년 전환국은 용산으로 이전하였습니다. 


 잠깐! 그렇다면 주화의 무늬는 어떻게 새기는 걸까요? 궁금하시다면 답을 찾아러 박물관에 오시면 됩니다. 힌트는 둥근 손잡이가 달린 투박한 모양이며, 소전을 기계에 넣고 압력으로 무늬를 도장처럼 찍는 기계라 하여 ‘압인기’라고 합니다. 주화를 살펴보면서 찾아보세요.


글_이지영(인천시립박물관 전시교육부)


첨부1. 개국 502년명 2전5푼 백동화


인천에서 태어난 錢(전)_1

공공누리
OPEN 공공누리 출처표시 상업용금지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이 게시물은 "공공누리"의 자유이용허락 표시제도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한자제목
開國五百二年銘二전五分白銅貨
자료관리담당자
  • 담당부서 유물관리부
  • 문의처 032-440-6768
  • 최종업데이트 2025-03-12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