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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유물 소개

조선 후기의 풍속화가 그려진 세창양행 상표

담당부서
유물관리부 (032-440-6768)
작성일
2024-08-23
조회수
662

조선 후기의 풍속화가 그려진 세창양행 상표

명칭

세창양행 상표

국적

대한민국

시대

근대

재질

종이

크기

가로 14.2, 세로 6cm

소장위치

시립박물관 상설전시실 (역사2실)


<세창양행>

 세창양행은 1884년 현재 인천 중구 중앙동에 설립된 독일의 무역상사입니다. 독일 함부르크에 본점을 둔 마이어 상사(E. Meyer & Co.)의 제물포 지점으로, 당시 마이어 상사는 톈진(天津)과 홍콩 등에 지사를 설치하여 무역사업을 하던 중 한국의 외교 고문 겸 통상업무 총괄로 부임하는 묄렌도르프(Paul George von Möllendorff, 1848-1901)에 의해 제물포 지사 설립이 추진되었습니다. 개항 이후 열강은 경쟁적으로 조선에 대한 이권을 침탈하고자 하였고, 독일의 경우 묄렌도르프를 통하여 차관도입, 농업개혁, 광산개발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 하는 등 대부분 세창양행이 대행하였습니다. 1900년 6월에는 한성(漢城)에도 지점이 설치되었으나 1914년 일본의 대독 선전포고로 서울의 독일영사관과 함께 폐쇄되었습니다. 세창양행은 일반 무역 활동은 물론 각종 이권 사업에 참여하며 당시 조선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영업 품목은 매우 복잡하지만 특히 많은 것이 독일산 화학제품인 바이엘 약품, 염료, 화약, 강철제품인 면도칼, 바늘이다. 기타 유럽산 양품은 물론이고 외국은행 지점, 광산업, 해운업, 보험업 대리점, 심지어 고리대금업까지를 겸하였고, 동시에 대지주로서 집세와 텃세의 수입도 막대하였다. 초창기 인천의 사업치고 세창양행이 손대지 않은 것이 없었다.” 

『개항(開港)과 양관역정(洋館歷程)』, 최성연


세창양행 사옥
세창양행 사택

 

 세창양행 사택은 지점 설립를 위해 인천으로 온 볼터(Carl Wolter) 등 3명의 상사원을 위한 숙소로, 현재 인천 자유공원에 지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양관(洋館)이었습니다. 벽돌집으로 회칠한 하얀 외벽에 붉은 지붕, 아치형의 열주랑(列柱廊)이 돋보였으며 사각형의 2층 성탑이 있어 전망대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이후 1922년 인천부가 매입해 인천 최초의 공립도서관으로 사용 되었고, 광복 이후 1946년 한국 최초의 공립박물관인 인천시립박물관 건물로 쓰이다가 1950년 9월 한국전쟁 당시 소실되었습니다.


<세창양행의 무역상품>

 세창양행은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광고를 신문에 냈습니다. 1886년 2월 22일 자 한성순보(漢城旬報)의 후신인 ‘한성주보(漢城週報)’ 제4호에 실린 ‘덕상세창양행고백(德商世昌洋行告白)’이 그것인데, ‘덕상’은 독일 상사라는 뜻이고 ‘고백’은 광고의 중국식 표현입니다. 이 광고는 사진이나 그림 등 시각적 효과 없이 문장으로만 상품을 소개했습니다.

 

덕상 세창양행 고백


사들이는 물품(收買各貨)

 호랑이, 수달, 검은담비, 소, 말, 개 등의 가죽과 소, 말, 돼지의 꼬리와 갈기, 

뿔, 사람의 머리카락, 조개와 소라, 담배, 종이, 오배자, 옛 동전 등


 새로 도착한 물품(新到各貨)

 자명종 시계, 들여다보는 풍경(peep show), 뮤직박스, 호박, 유리, 각종 램프, 

서양 단추, 서양 직물, 염색한 옷과 염료, 서양 바늘, 서양 실, 성냥, 서양 허리띠 등 

 

“물품의 구색을 갖추어 공정한 가격으로 팔고 있으니 모든 손님과 상인은 찾아와 주시기 바랍니다. 

아이나 노인이 온다 해도 속이지 않을 것입니다.”


 세창양행은 이와 비슷한 광고를 같은 해 7월 5일 자 제23호까지 약 반년 동안 게재하였고, 이 후 독립신문 등에 광고를 게재하였습니다. 다양한 상품 중 특히 바늘과 물감, 금계랍(金鷄蠟, kinine, 말라리아 치료제) 등이 인기를 얻었습니다.


<조선 후기 풍속화가 기산 김준근이 활동했던 인천항>

 인천시립박물관의 세창양행 상표는 기산 김준근(箕山 金俊根, 생몰년 미상)의 ‘초례(醮禮)’가 그려진 물감 포장지입니다. 김준근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부산의 초량을 비롯한 원산, 인천 등 개항장에서 활동했던 풍속 화가로 당시 우리의 생업과 의식주, 의례, 세시풍속, 놀이 등 전 분야의 풍속을 그린 매우 중요한 화가입니다. 김준근의 그림은 당시 개항장을 방문한 정치인, 학자, 군인, 상인, 여행자 등 한국 문화에 낯선 외국인들에게 많이 팔려 나갔습니다. 당시 묄렌도르프와 마이어(Heinrich Constantin Eduard Meyer, 1841-1926)가 수집해간 그림도 중요한 자료로 남아 있습니다. 김준근이 그린 ‘초례’ 중 세창양행 상표와 비슷한 그림은 현재 국립민속박물관, 독일의 MARKK(옛 함부르크 민족학박물관), 덴마크의 코펜하겐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기물이나 인물의 구성 등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 상표 속 그림은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그림과 유사한 모습입니다. 

신부 신랑 초례하고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신부 신랑 초례하는 모양 (독일 MARKK 소장)
신부 신랑 초례하는 모양 (덴마크  코펜하겐국립박물관 소장)

 현재 세창양행 상표와 바늘, 당시 유통되던 금계랍과 안료의 상표 등은 인천시립박물관 상설전시실 역사2실에서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글_김윤희(인천시립박물관 전시교육부)


첨부1. 세창양행 상표


조선 후기의 풍속화가 그려진 세창양행 상표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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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昌洋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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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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