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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유물 소개

과대광고의 조상, 인단

담당부서
유물관리부 (032-440-6768)
작성일
2024-09-27
조회수
414

현기증, 멀미, 복통, 전염병 예방까지~ 먹기만 하면 다 나아요! 과대광고의 조상, 인단


명칭

인단 포장 상자

국적

한국

시대

일제강점기

재질

목재

크기

  9.1x6.9x3.8cm  

소장위치

인천시립박물관 수장고 


<  인단의 탄생과 성공 비결  >

 '인단(仁丹 zintan)'은 森下博(모리시타 히로시)가 1895년 대만 출병 중에 대만인들이 복용하는 약에 영감을 얻어 10년간의 구상, 3년간의 연구를 거쳐 1905년 개발한 상품입니다. 감초, 아선약(阿仙藥), 계피, 회향(茴香), 생강, 박하뇌(薄荷腦) 등 총 13가지 약재를 원료로 삼은 생약(生藥)입니다. 우리나라에 인단이 들어온 때는 1907년 무렵입니다.


 조선에 들어온 인단은 공격적인 광고를 통해 민중 속으로 파고들었습니다. 실상 재료의 성분으로만 따지자면 소화제나 지사제에 가까웠지만 두통과 현기증, 멀미, 가슴이나 배의 통증, 전염병, 소화불량 등 모든 병을 예방·치료하는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과대광고를 하였습니다. 이를 증명하듯 인단 포장 상자에는 주요 효능이 가득 적혀있습니다.


인단 포장상자 (앞면)
인단 포장상자 (뒷면)

 당시 인단은 간판, 광고탑을 이용하여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신문과 잡지에 광고를 꾸준히 실었습니다. 1926년 12월 7일자 동아일보를 보면 지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인단 광고가 눈에 띕니다. 또 일제강점기 미야마치(宮町·궁정, 현재 신생동 일대) 거리를 담은 엽서에서도 인단 간판과 광고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인천 사진엽서 / 한국 / 일제강점기 / 종이 / 14x9cm / 왼쪽 상단에 인단 간판이 보인다 
 동아일보(1926년 12월 7일자) / 한국 / 일제강점기 / 종이 / 41x54.9cm

 이렇게 과대광고를 한 덕분일까요? 인단 상표는 무소불위의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인단의 상표는 무병장수를 바라는 부적으로 사용되기도 했다니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 인단 상표, 이 남성의 정체는?>

 인단 간판 / 한국 / 일제강점기 / 금속 / 36.4x59.6cm 


 나폴레옹 모자와 서구식 대례복을 착용하고 카이젤 콧수염을 기른 이 남성. '인단'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입니다. 이 상표는 인단이 발매된 1905년부터 백여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남성 이미지에 대해 창업주 모리시타 히로시(森下博)는 '약의 외교관'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당시 엄격히 통제된 천황의 초상을 대신하여 각국에 이 남성 이미지와 인단 광고를 통해 일본의 제국적 이미지를 전파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 인단에서 은단으로>

 휴대용 은단 / 한국 / 광복 이후 / 유리 / 6.2x2.1cm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의 인단 공장이 공습으로 전소되면서 그 기세가 서서히 위축되기 시작했습니다. 광복 후 배일정책 속에서 인단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은단(銀丹)'이 채우게 됩니다. 국내 제약업체에서 인단의 맛과 효능이 비슷한 은단을 개발한 것이지요. 은단은 인단이 내세웠던 만병통치약이라는 과대광고를 버리고 구중 청량제나 구취제거제, 금연 보조제로서의 효능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글 _ 김소영(인천시립박물관 유물관리부)


첨부1. 인단 포장 상자 


과대광고의 조상, 인단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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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제목
仁丹
자료관리담당자
  • 담당부서 유물관리부
  • 문의처 032-440-6768
  • 최종업데이트 202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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