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칭 | 나전 경대 |
국적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재질 | 목재, 나전, 금속, 칠 |
크기 | 가로 20.3cm, 세로 27cm, 높이 14.4cm |
소장위치 | 인천시립박물관 고미술실 |
경대(鏡㙜)는 몸을 단장하고 치장하는 데 필요한 화장품, 화장도구, 빛,비녀와 같은 장신구를 보관하던 소형 목가구입니다. 조선시대 여성들은 주로 화장을 위해, 남성들은 머리와 상투를 틀기 위해 사용했답니다. 다양한 형태의 경대 중 박물관 3츨 고미술실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나전(螺鈿)으로 장식한 경대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전은 무엇일까요?
<나전(螺鈿)의 의미와 역사>
나전이란?
한국·중국·일본 등에서 공통으로 쓰이는 ‘나전’은 소라 ‘라螺’와 세공 ‘전 鈿’ 자로 되어 있어 ‘소라 껍데기를 여러 가지 모양으로 가공하여 장식한다.’를 의미합니다. 또한 우리나라 고유어인 ‘자개’라고도 불립니다.
그럼, 우리나라에는 언제부터 만들기 시작했을까요?
이와 관련된 정확한 자료는 없습니다. 다만 중국 당나라에서 유행했던 나전이 한국과 일본에 전해진 것으로 추정합니다.
고려시대 나전은 대표 공예 중 하나였습니다. 1123년(인종)에 고려에 방문했던 송나라 사신 서긍은 다음과 같이 글을 남겼습니다.
“그릇에 옻(漆)을 칠하는 일은 그다지 잘하지 못하지만
나전(螺鈿)의 기술은 세밀하고 정교하여 귀하다고 할 수 있다.”
器用漆作不甚工, 而螺鈿之工, 細密可貴.
서긍, 『선화봉사고려도경』 권 23, 잡속2, 토산
이처럼 고려시대 나전은 세밀하고 화려했습니다. 특히 불교 경전을 보관하는 경함(經函) 등 불교 공예품에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유교를 국교로 삼은 조선시대에는 고려시대에 비해 장식 배치나 구성이 단조로워졌습니다. 일부를 여백으로 남기는 초화문이나 포도문, 또는 십장생을 주제로 한 회화적인 도안과 귀갑문과 같은 기하학적인 문양이 유행하였습니다. 특히, 경대 · 소반 · 문갑 · 장롱 등 가구에도 나전이 장식되었습니다. 이는 현대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인천광역시립박물관 소장 ‘나전 경대’>
우리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유물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나전 경대’입니다. 경대 뚜껑을 접어 세울 수 있고, 그 안쪽에는 거울이 부착되어 있습니다. 또한 경대 밑에는 잠금장치와 서랍이 있어 화장품을 보관할 수 있습니다.
< 참고문헌 >
서긍(徐兢),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국립중앙박물관, 『나전칠기-천년을 이어 온 빛』, 국립중앙박물관, 2006
권상오, 「나전공예」, 대원사, 2015
신숙, 「전통 공예기법의 단절과 계승 : 평문과 평탈, 그리고 나전」, 『무형유산』 제6호, 2019
글 _ 윤나영(인천시립박물관 전시교육부)
첨부1. 나전경대 1
첨부2. 나전경대 2
첨부3. 나전경대 학문양
첨부4. 나전경대 물고기문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