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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유물 소개

스마트워치의 과거형(월섬 회중시계와 광고지)

담당부서
유물관리부 (032-440-6768)
작성일
2024-12-13
조회수
423

스마트워치의 과거형(월섬 회중시계와 광고지)


명칭

월섬 회중시계

국적

미국

시대

미상

재질

금속, 복합

크기

지름 6.5cm,  두께 2.7cm  

소장위치

인천시립박물관 수장고

 


 현대인은 시계를 손목에 둘러 차고 다닙니다. 흔히 ‘스마트워치’라 일컫는 지금의 손목시계는 시간 확인은 물론, 사용자의 심박수와 수면시간까지 체크해주며 시계 이상의 기능을 하지요. 그렇다면 옛날의 시계는 어땠을까요? 당시에도 손목에 차고 다녔을까요? 그리고 단순히 시간만 확인하는 도구였을까요?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속 삽화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 장면


 1865년에 출간된 루이스 캐럴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는 정장 차림의 흰토끼가 등장합니다. 토끼는 정장 조끼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 보고 서둘러 달려갑니다. 실제로 18-19세기 신사들 사이에서는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휴대용 시계가 유행이었습니다. 이 시계에 고리가 달린 시곗줄을 연결해서, 고리는 조끼 앞 단춧구멍에 끼우고 시곗줄로 연결된 동그란 시계는 주머니에 넣어 다녔습니다. 그리고 필요할 때마다 품 안에서 꺼내어 시간을 확인하곤 했지요. 이것을 바로 회중시계(懷中時計, pocket watch)라고 부릅니다. 품을 ‘회’, 안(가운데) ‘중’ 자를 써서 ‘품 안에 넣고 다니는 시계’라는 뜻입니다.


 시계가 작아져 신사들의 주머니로 쏙 들어오기까지 많은 역사가 있었습니다. 수렵과 채집을 통해 살아가던 오랜 옛날부터 인간은 계절의 변화와 주기를 알아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계절의 주기를 알면 동물의 이동과 식물의 생장을 예측할 수 있었고, 이는 곧 인간의 생존이 달린 문제였습니다. 인류는 더 나아가, 계절의 사이클 안에서 달이 차고 기우는 것을 기록하여 달력을 만들었고, 해가 뜨고 지는 하루 속에서도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있길 바랐습니다. ‘시간’이라는 개념이 필요한 복잡다단한 사회로 나아간 것입니다. 


월섬 회중시계 / 미국 / 시대미상? / 금속 / 지름 6.5cm 두께 2.7cm



 ‘월섬’ 사의 회중시계도 그러한 과정의 결과물입니다. 시계를 한번 볼까요? 완벽한 원형을 자랑하는 몸체 위로 동그란 링이 있습니다. 여기에 시곗줄을 연결해 사용했습니다. 링 안으로는 황금색의 태엽 장치가 자리해 있는데, 이것을 크라운(crown) 또는 용두(龍頭)라고 부릅니다. 크라운을 돌리면 태엽이 감기면서 시계에 동력을 줄 수 있었습니다. 동그란 몸체 속 다이얼에 표시된 숫자들은 길쭉한 로마자입니다. 시침과 분침은 가늘고 섬세하며, 초침이 아랫부분에 따로 분리되어 있는 ‘스몰 세컨드’ 방식입니다. 시계 중앙 위쪽에는 ‘AMERICAN Waltham Watch Co.’ 글자가 있습니다. 이 회중시계의 제조사입니다. 


 월섬(Waltham)은 1850년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설립된 시계 제조 회사입니다. 월섬이 있기 전, 시계는 사람이 일일이 조립하여 만들어내는 값비싼 물품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계 생산에 있어 월섬 사가 자동화, 기계화 시스템을 적용하면서 대량생산이 가능해졌고, 덕분에 회중시계는 이전보다 저렴하고 빠르게 대중화될 수 있었습니다. 

 

월섬 시계 광고지 / 1900년대 / 종이 / 가로 16.6cm 세로 25.5cm



 그러면 월섬 사의 광고를 볼까요?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선비가 발아래를 내려다보며 걸음을 옮기는 모습입니다. 선비의 발치를 보니 걷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지구 위, 북아메리카 대륙입니다. 코리아가 시간을 위해 월섬(Waltham)으로 왔다는 광고 타이틀과 맞아떨어집니다. 그 아래에 쓰인 광고 글은 다음과 같습니다.


문명의 부름에 눈 뜬 조선(Korea)은 선언했다

“우리는 새로운 철도에 가장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시계를 달 것입니다. 

이 문제에 있어 현명한 이를 보내 시계를 찾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월섬(Waltham)으로 왔다. 


 조선은 믿을만한 시계가 필요해 월섬을 찾았고, 그 시계를 기차에 쓰려고 했다는 내용입니다. 선비의 발 오른편에 기차역 풍경이 그려져 있는 이유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는 경인선으로, 1899년에 개통됐습니다. 그렇게 인천과 서울을 잇는 기차가 다니기 시작했지요. 기차는 정해진 시각에 정확하게 출발하고 도착하는 교통수단이었습니다. 때문에 기차를 운행하는 기관사는 물론 기차를 타는 사람들도 시간을 엄수해야 했습니다. 


“노량진서 매일 오후 3시에 떠나서 

오류동 3시 33분, 소사 3시 51분, 부평 4시 5분, 우각동 4시 30분, 유현 4시 35분, 

인천 4시 40분에 당도한다더라.”

- 독립신문, 1899년 9월 16일


 분 단위로 배차된 기차 시간에 맞춰 가려면 정확한 시계가 필요했습니다. 광고지에서는 월섬의 시계가 영국, 스위스, 프랑스의 시계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언급합니다. 또한 미국과 캐나다를 포함한 전 세계 철도에서 이미 널리 쓰이고 있다고 귀띔하죠. 

 하단에는 광고 중인 회중시계가 그려져 있습니다. 모델명은 ‘콜로니얼 A’입니다. 이 시계는 당시로는 매우 얇았던 모델로서 1913년경에 출시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세련되고 완벽한 크기, 모든 앙상블의 풍부함이 가히 걸작이라고 광고합니다. 


월섬 시계 광고지  / 1910년 전후 / 종이 / 가로 17.2cm 세로 24.7cm / 월섬 광고지의 다른 버전입니다. 왼쪽 선비가 이번에는 탕건을 쓰고 관복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관복의 생김새가 곤룡포와 유사하면서도 길이는 짧습니다. 아마도 조선의 관료층을 서양인의 시선에서 표현하다 생긴 오류로 보입니다. 


월섬 회중시계의 뒷모습



 이렇듯 기차에 꼭 필요하며, 또 새로운 시대를 현명하게 살아가는 데 없어선 안 될 회중시계는 안타깝게도 아무나 가질 수 없었습니다. 월섬 사가 대량생산을 통해 회중시계의 보급과 대중화에 앞장서기는 했으나 값이 비싼 것은 여전했습니다. 때문에 당시 소수의 부유층만이 시계를 사용했고 자연스럽게 회중시계는 부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회중시계를 가지는 것은 단순히 시간을 확인한다는 의미보다 복잡한 상징을 가지는 것이었습니다. 


회중시계를 착용한 모습 (사진출처 WATCH MUSEUM)


 멋진 시곗줄을 뽐내며 신사들의 주머니에 들어있던 회중시계는 제1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서서히 손목으로 옮겨갑니다. 전장에서 시간을 확인할 때 품속에서 시계를 꺼내 확인하는 것은 번거롭고 위험했습니다. 이후, 시계에 기계식이 아닌 전지 방식(충전식)이 적용되면서 일반 대중도 쉽게 소유할 수 있게 되었고, 시계는 발전을 거듭해 지금의 스마트워치까지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시계가 지금 우리의 손목에 스마트하게 자리 잡는 과정 중, 한때 정장 주머니에서 가만히 자리하던 시절이 있었음을 기억해주세요. 월섬 사의 회중시계와 걷는 선비가 그려진 광고지는 우리 박물관 역사2실에서 직접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글 _ 김진솔(인천시립박물관 전시교육부)


첨부1.  회중시계 앞면

첨부2.  회중시계 광고


스마트워치의 과거형(월섬 회중시계와 광고지)_1

스마트워치의 과거형(월섬 회중시계와 광고지)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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懷中時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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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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