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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유물 소개

지도 한 장에 담긴 ‘인천 도시 계획’의 첫 걸음

담당부서
유물관리부 (032-440-6768)
작성일
2025-02-28
조회수
309

지도 한 장에 담긴 ‘인천 도시 계획’의 첫 걸음




명칭

인천시가지계획 인천지구도

국적

한국

시대

1943년

재질

종이

크기

가로 93cm,  세로 90cm

소장위치

인천시립박물관 수장고


 1934년 6월 20일 「조선시가지계획령」이 제정되었습니다. 1930년대 급격한 도시화로 인한 도시 난개발을 막고 토지를 계획적으로 개발하기 위해 만든 이른바 최초의 도시계획 관련 법령이었습니다. 이 법에 따라 1934년 11월 함경북도 나진읍을 시작으로 주요 도시마다 ‘시가지계획구역’을 설정하고 도시를 계획적으로 정비해 갈 수 있었습니다. 인천도 1937년 4월 전국에서 아홉 번째로 ‘인천시가지계획구역’을 고시하였습니다. 


인천시가지계획 인천지구도


<인천시가지계획>

 인천시가지계획구역 고시에 앞서 1936년 9월 인천부는 지금 중구와 동구에 한정되어 있던 행정구역을 미추홀구 일부 지역까지 확대시켰습니다. 이로써 머지않아 공장지대가 되는 용현, 학익동과 송도유원지가 들어설 옥련동 일대가 인천부에 속하게 됩니다. 훗날 이곳은 인천시가지계획에 따라 공업용지와 풍치지구로 결정되었습니다. 다시말해 시가지계획을 염두에 두고 인천부의 영역을 확장했던 것이죠. 그런데 1940년 1월 조선총독부는 서울과 인천 사이의 광활한 면적을 대상으로 경인시가지계획을 고시하고, 서구와 부평구 일대를 여기에 포함시켰습니다. 그 해 4월에는 인천부의 행정구역을 서구와 부평구는 물론 남동구와 계양구 일대까지 다시 확장시켰지만, 서구와 부평구 일대 경인시가지계획구역의 시행청을 인천부윤이 아닌 경기도지사로 지정하게 됩니다. 행정청과 시행청이 모두 인천부윤이었던 인천시가지계획과 달리 부평 지역의 경인시가지계획은 행정청과 시행청이 달라지면서 혼선을 빚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총독부가 1944년 1월 8일 경인시가지계획의 수정안을 고시하고 부평과 서구 지역을 인천시가지계획에 포함시키면서 행정청과 시행청을 인천부윤으로 통일시켰습니다. 인천부는 인천시가지계획을 인천지구와 부평지구로 분리시켜 추진하게 됩니다. 


<지도에 나타난 정보>

  이 지도는 1944년 1월 수정안을 고시하기 전 계획 단계에서 작성한 지도로 좌상단에 1943년(소화 18) 7월 13일자 조선군사령부 점검 일부인(日附印)과 점검자로 추정되는 인물 오타[多田]가 새겨진 같은 날짜의 일부인, 그리고 기밀문서를 뜻하는 ‘비(秘)’ 자가 나란히 찍혀있습니다. 따라서 지도의 제작 시점은 1943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전쟁 국면에 생산된 지도인데다 도시계획과 관련한 내용이 담겨있어 기밀문서로 취급했고, 조선군사령부의 점검을 받아야 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1940년대 인천을 그린 지도가 거의 없는 실정에서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는 이 지도는 인천 근대사 특히 광복 직전 인천의 모습을 살필 수 있는 몇 안되는 자료입니다. 


소화 18년(1943) 7월 13일자 조선군사령부 점검 일부인


 

 도로 계획의 경우 지금 인천 도로망과 상당부분 일치하고 있어 당시는 물론 광복 후에도 계획대로 도로 건설이 이뤄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시민 휴식처로 이용되고 있는 자유공원, 수봉공원, 월미도, 문학산 등이 자연 경관을 보존해야 할 풍치(風致)지구로 묶여 있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다만, 1937년 7월 개장하는 송도유원지가 누락되어 있고, 범례 중 시가지계획구역 경계를 현재 ‘부계(府界)’라 했는데 1940년 제2차 부역확장 내용이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1937년 인천시가지계획 수립 당시의 지도에 1943년 7월 가로망과 녹지, 풍치지구, 공원 등을 추가로 표시하여 제작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지도에 그려진 도로망 계획
1947년 항공사진에 나타난 실제 도로망


<지도가 갖는 의미>

  이 지도는 광복 후에도 인천 도시계획의 기초 자료로 활용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1962년 제정된 도시계획법에 따라 1965년부터 추진된 인천도시개발 5개년 계획의 초안이 인천시가지계획에 기초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 탓에 지도는 인천광역시 도시계획과에 보관되어 오다가 2022년 인천시립박물관이 인수하게 되었습니다. 인천시가지계획이 1937년 4월 공포 이후 몇 차례의 수정과 보강을 거쳤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으며, 지도에 나타난 계획안 중 상당수가 일제강점기~1960년대를 거치며 실행에 옮겨졌다는 점에서 인천 도시계획 역사를 살펴 볼 수 있는 자료로서 가치가 큰 지도입니다.

 


글 _ 배성수(인천시립박물관 유물관리부)


첨부1. 인천시가지계획 인천지구도


지도 한 장에 담긴 ‘인천 도시 계획’의 첫 걸음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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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의처 032-440-6768
  • 최종업데이트 202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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